정치인들의 험구ㆍ악구가 갈수록 태산이다.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이면서도 국민이 싫어하는 언행만 골라 하는 인상이다. 야당 의원이 정당한 사유로 여당 의원을 공격하는 것이야 문제 될 게 없다. 이왕이면 그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계산한다 해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공격은 이해의 한계를 훨씬 벗어났다. 폭로의 상대가 안 대표였다면 그나마 변명의 여지가 있다. 이 의원은 안 대표의 아들을 정치적 폭로의 제물로 삼았다. 너무 치졸했다.
안 대표의 아들이 부당하게 서울대 로스쿨에 합격됐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나이도 들 만큼 든 비중 있는 정치인이 전도가 창창한 한 젊은이를 가장 불명예스러운 혐의로 매도한 것이다. 당 소속 의원들에게 모범이 돼야 할 박지원 원내대표까지 “제보는 정확하다”며 거들고 나섰다. 안 대표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를 사퇴시킨 공을 생각해서 알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투의 말도 보탰다.
안 대표는 이 의원과 박 원내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 의원이 곧 사과 성명을 냈고 손학규 당 대표도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경우는 되레 ‘정치공세’라고 반발하면서 ‘진검승부’를 공언했다. 일단 큰 상처를 입었을 젊은이에게 진정을 다한 사과와 위로의 말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외국인들에게 우리 정치인들의 언행은 우리 국민의 수준으로 각인된다. 그 점에서 험한 언행을 일삼는 정치인들은 국민 명예의 훼손자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정치권, 특히 국회는 차제에 자정 능력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국회윤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런 일이 되풀이될 리 없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서로가 감싸주는 바람에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정당체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중앙당들이 저마다 권력기관 행세를 하고 있는 정치구조가 정당정치, 의회정치의 천박화를 부추긴다. 국회의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심, 경쟁 정당에 대한 투쟁력을 과시함으로써 그 권력기관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굳히려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 특히 정당과 국회의 리더들은 겸허한 자기 성찰과 함께 정당제도 쇄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