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일 한국 측에 돌연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지난 1일 신년공동사설 이후 연달아 대화 공세를 전개해오다 우리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의제로 한 남북회담을 역제의하자 침묵 끝에 군사회담 개최로 대꾸해온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끝난 지 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아주 정교한 타이밍을 잡은 셈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이번 제의가 북한의 치밀한 계산하에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남북회담 필요성이 그만큼 다급하고 뭔가 변화를 추구하는 북한 상황이 감지된다. 미ㆍ중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제의라면 중국과도 사전 교감의 유추가 가능하다. 이는 회담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추진할 경우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보다 열린 자세로 대응, 회담 실패의 책임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전 선동술에 능하고 회담으로 국내외 이목을 끈 뒤 무리한 요구로 회담을 걷어차는 일은 북한의 상투적 수법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본회담에 앞선 예비회담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유감 표명을 의제로 분명히 밝히고 한반도 비핵화 조치는 불가변의 원칙임을 강조해둬야 한다. 북한 측 전술에 또 한 번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회담은 상대가 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협과 쌀ㆍ비료ㆍ연료 등의 제공 의사도 확실히 해둬 남북이 윈-윈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욱이 군사적 대결은 가급적 회피해야 한다. 하지만 정도 문제가 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서해북방한계선(NLL)의 재조정이나 천안함 폭침의 자작극 주장으로 일관할 경우 그런 회담은 필요 없다.
다만 미국과 중국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전제로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이 강조됐고 이에 앞서 남북회담 재개를 필수로 희망했다면 여건은 성숙해 있다.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북한의 요즘 상황은 3대 세습과 화폐개혁 실패, 국제 제재에 따른 달러화 고갈 등 경제난 가중으로 뒤숭숭하다. 저들이 남북회담 재개를 거듭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난 집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핵화와 개혁 개방이 바로 북한의 생존하는 길임을 광범위한 경협 제의와 함께 누누이 역설, 이번 회담이 남북한 상생의 길로 가게 주도적 역할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