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지사는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등에 따라 도지사직 사퇴는 물론 앞으로 10년 동안 어떠한 공직 선거에도 나갈 수 없다.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민주당 서갑원 의원 역시 벌금 1200만원과 추징금 5000만원이 확정돼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이 지사는 뛰어난 기획과 판단력으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 출세가도를 달린 386세대 대표 정치인이다. 30대에 이미 청와대 핵심요직을 차지했고, 이를 토대로 국회의원과 도지사에 잇따라 당선됐다. 그러나 도덕성을 내세워 정권 핵심에 올랐지만 참여정부 시절 비리 사건이 불거지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거론됐다. 썬앤문그룹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할린 유전개발 사건, 삼성그룹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 국세청장 인사 청탁 로비, 강원랜드 비리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때마다 용케 사법 처리를 피해가다가 결국 ‘박연차 게이트’ 덫에 걸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겉으로는 정의와 도덕성을 내세우고 뒤로는 검은돈의 단맛에 탐닉했던 야누스적 정치인의 이중행태를 단죄한 것이다. 고약한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자신들은 깨끗한 척 오만함과 정치적 해결에 대한 허망한 믿음을 깨버린,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셈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정치적 해법 모색을 위해 그는 1심 유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도지사 출마를 강행했다. 그러나 정치적 입지가 달라졌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평범한 사실을 대법원 판결이 말해주고 있다.
정치권이 이번 사안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민주당은 “MB정부의 야당 죽이기”, 또는 “보복 수사에 의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반발하나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도전과 월권의 냄새만 풍긴다. 심지어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의 향후 거취를 주목하겠다”는 저급한 반응은 상식 이하로 보인다. 민주당은 먼저 자격 미달자를 공천해 강원도정의 공백과 혼란, 국고 낭비에 따른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과 강원도민에게 사과하는 게 도리다. 한나라당 역시 ‘환영’ 운운하는 논평이나 내놓을 계제가 아니다. 아직 천신일이 걸려 있고, 박진 의원도 겨우 의원직을 유지했을 뿐이다. 이번 판결로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얄팍한 생각 대신 다시는 정치권이 검은돈에 오염되지 않도록 자정을 결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