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증시에서 ‘랩 어카운트’가 단연 화두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랩을 팔고 있으며 자산운용사는 랩 때문에 펀드가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다. 자문형 랩 잔고는 지난해 말 5조원으로 7개월 만에 10배 성장세를 보였고, 올해 1월 말 현재 무려 7조원을 돌파하는 등 자산관리시장에서의 새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일각에서는 랩 시장이 파죽지세로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과거 한껏 팽창하다 일거에 거품이 꺼져버린 펀드시장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펀드시장 열기가 식어버린 이유는 무엇보다 증권 등 판매사들이 맹목적으로 팔기에만 급급하고 사후 서비스는 부실했던 탓이 크다. 이른바 금융사와 믿고 돈을 맡긴 투자자 간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현재 증시도 펀드시장의 버블이 낀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변동성이 있지만 2000선을 넘어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를 놓칠세라 증권사들은 너도나도 랩 상품을 내놓고 있다. 랩 어카운트란 당초 고액자산가들의 돈을 증권사가 맡아 관리해주는 상품인데, 요즘엔 일반 개미들도 소액으로 투자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부자들이야 얼마간 손실이 나도 견딜 수 있지만 생계자금을 쪼개 투자하는 개미들의 경우 랩 상품의 속성이나 위험성을 정확히 알고 돈을 맡겨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쏠림현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사들도 할 말은 있다. 투자자들에게 금융상품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헤지펀드 도입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로 랩 상품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증시도 단계적으로 상승해 과거처럼 일거에 거품이 빠지는 그런 상황은 아니란 것이다.
이와 함께 펀드보다 랩 수수료가 높기 때문에 이 참에 증권사 새 수익원으로 한몫 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없지 않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시장이라는 것은 절대 수익이 있는 반면 절대 위험도 항상 가정해야 한다. 특히 랩은 투자종목이 10개 내외로 적은 만큼 장세에 크게 좌우되는 취약한 리스크 관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위험성은 고지하지 않은 채 투자자들의 고수익 환상이나 쏠림을 이용해 금융사들의 배를 불린다고 할 경우 자칫 또다시 시장의 신뢰가 깨질 수 있다. 금융은 일반 제조업같이 설립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인가 사업이다. 국민들의 금쪽 같은 돈이 오가는 사업으로 그만큼 시장의 신뢰 형성이 전제조건이다.
140년 역사로 미국 IB 상징인 골드먼삭스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금융권의 극심한 수익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스크 높은 파생상품에 손을 댔고, 일부 파생상품을 팔면서 정작 자신들은 이 상품의 가치가 하락하면 수익을 내는 데 베팅을 해오는 등 투자자들을 기만한 데 있다. 그 사이 시장도 쑥대밭이 됐다.
금융사는 투자자들을 유리그릇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받들어야 한다.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쏠림과 금융사들의 탐욕이 만나면 자본시장이란 틀(신뢰관계)이 깨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라도 랩 상품에 대한 사전 위험 고지, 보다 높은 수준의 사후 서비스,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정부도 랩 운용 자문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보다 더 촘촘하게 해야 한다. 크게 보고 시장을 키워나가야지 눈앞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면 자칫 ‘황금알 낳는 거위를 죽이는 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