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난산 끝에 결정됐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주인공이다. 우선 삼성, 현대자동차 등 핵심 그룹 회장들이 고사하는 마당에 허 회장이 수락한 것을 무엇보다 평가한다. 그 점에서 당연히 맡았어야 할 이건회 삼성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은 허 회장과 국민들에게 부채를 진 셈이다. 만일 이들이 29대 강신호 회장, 31대 조석래 회장 대신 전경련 회장직을 맡았다면 지금쯤 벌써 임기를 마치고 유유자적할 분위기 아닌가.
나아가 LG그룹의 구본무 회장 역시 부담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전경련 발족 의미가 재계 힘을 모아 당면 애로사항을 정부에 건의하고 산업 발전에 중추가 됨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던가. 초대 이병철 회장, 김용완 회장, 정주영 회장, 구자경 회장 등이 어렵사리 회장직을 맡아 묵묵히 수행한 것도 다 그런 산업보국의 마음에서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계열기업 통폐합 조치가 못마땅해서, 또는 정부 눈치 보기 싫어서, 또는 전경련 운영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지기 싫어서 회장직을 마다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재계 총수에다 전경련 회장단쯤 되면 그들이 오늘날 존재하게 만든 국가와 국민에게 기여한 만큼 치하를 받되 부담도 지는 게 마땅하다.
우여곡절 끝에 모처럼 재계 순위 7위 정도 그룹 총수가 전경련 회장직을 맡게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 보기 좋다. 그보다 상위 순위이면서 회장직을 고사했던 총수들은 새 전경련 회장을 적극 돕는 게 순리다. 자신들이 맞을 매와 영광에 따른 부담을 대신했다는 부채 의식을 갖고 허 회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전경련 새 사옥 완공에서부터 정부의 물가 정책, 환율 정책, 양극화 줄이기 정책 등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동안 힘없는 회장들의 재임 중 전경련 위상은 많이 약화했다. 이를 회복, 전경련 설립 목적에 걸맞은 사업들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 한국의 자본주의는 몹시 비틀대고 있다. 윗목 아랫목 논쟁에서부터 ‘그들만의 성장’이라는 비아냥이 넘친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성장의 이면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88만원 세대의 한숨, 청년 실업, 젊은 노인들의 절규가 도처에 널려 있다. 전경련 새 회장은 이들을 중화시켜 한국에서 시장주의가 온전히 발을 뻗게 할 책임이 있다. 어려운 시대, 어려운 자리를 맡은 허 회장에게 맡은 바 소신을 다해주기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