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뛰어넘는 감동은
녹슬지 않은 탄탄한 실력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환갑을 훌쩍 넘은 아저씨들이 대한민국 대중음악판을 흔들고 있다. 70~80년대를 풍미했던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 조영남 등이 그들로, 이른바 세시봉 멤버들이다. 아스라한 기억의 저 편에 있던 그들이 어느 날 기타 한 자루 둘러메고 불쑥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변함없는 탄탄한 음악적 깊이와 아름다운 하모니, 끈끈한 우정, 그리고 세월과 함께 더 단단해진 내공…. 여전한 그들의 건재가 오랜 벗처럼 반갑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몰고 온 열기다. 얼마 전 이들의 부산 공연에서는 3000명을 수용하는 공연장이 복도까지 꽉 차는 바람에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지역 공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연일 매진 행진이란다. 공연 입장을 기다리던 50대 중년 여인은 “가슴이 떨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랬을 것이다. 꿈 많은 10대 소녀, 20대 처녀 시절 감미로운 목소리와 선율로 심금을 촉촉히 적셔주던 세시봉 멤버들이 아닌가. 그 시절 우리에게도 열광할 아이돌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흐뭇하다.
세시봉 바람은 대중문화 시장 판도마저 단숨에 바꿔버릴 기세다. 이들이 주로 활동했던 70~80년대 음악을 모은 특별 음반이 출시되고, 관련 매장에는 ‘세시봉 코너’가 따로 마련됐다. 인터넷 음반 사이트에선 일부 품목 구매를 제한할 정도로 주문이 몰린다고 한다. 한산하던 낙원동 악기상가에는 나무통에서 울려나오는 기타 소리를 듣고 구입하려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세시봉 음악이 이 시대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반증들이다. 아이돌 일색의 대중음악 시장이 다양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출현이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
도대체 이들의 음악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잔잔히 퍼지는 감동의 하모니는 그 실체가 무엇일까.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중문화계의 충격에 숱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그 해답은 의외로 단순 명료해 보인다. ‘세시봉 신드롬’의 바닥에 자리한 것은 풍부한 연습으로 쌓은 탄탄한 실력이다. 세월이 흘러도 녹슬지 않은 가창력과 화음, 오롯이 살아 있는 호소력은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송창식 씨는 한 인터뷰에서 “내 연습량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세상 모든 가수들을 다 불러놓고 따져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질에 충실할 때 비로소 생명력은 살아 숨쉰다. 세시봉 열기가 결코 일시적 바람이 아님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노래에 추억과 향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세상을 향한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의미가 있다. 세시봉 세대는 곧 베이비부머 세대들이다. 먹고살기 위해, 자식들을 위해, 조국의 산업화를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우리의 문화’를 챙기기 힘들었던 세대들이다. 그 사이 대중음악 시장은 경제적으로 한결 윤택해진 2세들의 몫이 됐고, 아이돌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악이 장악했다. 이제 그 공간의 일부를 다시 돌려달라는 소리 없는 7080세대들의 요구가 세시봉을 통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있다. 세시봉의 음악에 젊은이들이 함께 환호하는 것은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 한 구절 한 구절을 이으면 고스란히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별의 편지와 함께 전해온 하얀 손수건의 애틋한 사랑이, 이 밤이 지나면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가야 하는 슬픈 현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가 거기에 있다. 때로는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떠나가야 하는 시대의 애환과 아픔이 그들의 음악에는 녹아 있다. 세대를 넘나드는 ‘포크 음악’의 안착에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