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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 해외상장 1호 현대차…인도법인 시총 본사 추월할 수도[홍길용의 화식열전]
현대차 인도에 ‘글로벌EV 허브’ 구축
현지상장으로 투자자금 대부분 조달
인도증시 美 버금가는 가치 인정받아
中과 달리 자본시장 활용한 접근가능
LG·CJ 등도 준비…새로운 전략 부상
정부 40억 달러 EDCF ‘마중물’ 될수

증권거래소에 자국 기업만 상장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많은 돈을 조달할 수 있으면 그 뿐이다. 가장 많은 돈이 모이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글로벌 기업이 많은 이유다. 사업을 확장하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한 나라인데 마침 증시가 발달해 현지에서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금상첨화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 대기업이 해외증시에 단독으로 상장한 사례는 없다. 쿠팡이 있다지만 창업자의 국적이 미국이다. 그런데 드디어 첫 사례가 등장할 모양이다.

현대차그룹이 마침내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상장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인도증권거래위원회(SEBI)에 기업공개(IPO) 관련 예비 서류인 DRHP(Draft Red Herring Prospectus)을 제출하면서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기업가치다. 2023년말 기준 현대자동차인도법인(HMI)의 순자산은 3조1000억원, 매출액은 10조6000억원, 순이익은 9211억원이다. 주당순이익(EPS) 11만3363원, 주당순자산(BPS) 37만8824원이다. 현재 예상되는 기업가치는 약 24~40조원이다.

HMI는 신주 발행 없이 구주 매출로만 4조원 이상을 조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증시 역사상 최대 기록이 유력하다. 예상 기업가치가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면 주가순이익비율(PER) 25.7~37.5배, 주가순자산비율(PBR) 7.7~11.2배 수준이다. HMI의 현재 발행주식은 812만5411주다. 현재 주식수로는 주가가 너무 높아져 개인투자자들의 거래가 어렵다. 1주를 100주로 나누는 액면분할이 예상된다. 액면분할 이후 주가는 2만9000~4만2000원 가량이 될 듯하다.

한국거래소에서 현대차의 2023년 연결기준 순자산은 102조원,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162조원, 13조원으로 HMI 보다 10배 이상 크다. 그럼에도 시가총액은 약 59조원으로 HMI의 2배 안팎이다. 2023년 기준으로 PER 4.5배, PBR 0.58배다.

인도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7.6배로 신흥국(15.2배)과 선진국(20.9배)는 물론 한국(21.2배), 미국(24.6배)까지 추월한 상태다. 현재 인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41%로 1위인 마루티스즈키의 시가총액은 약 67조원, PER은 약 30배다. 2003년 상장 당시 마루티스즈키는 약 2억 달러(2748억원)를 조달했다. 인도의 국채 금리는 10년 만기 기준 7% 중반이다.

보통 증시 밸류에이션, 즉 PER 값은 금리와 반비례한다. 채권금리가 낮을 수록 주식과의 기대수익률 차이(yield gap)이 커지기 때문이다. 인도는 연평균 7%대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즉 채권금리 만으로는 화폐의 실질가치를 지키기 어렵다. 경제가 고성장을 하는 만큼 기업들의 성장도 빠르고 가파르다는 뜻이다.

최근 인도에서는 주식투자 열기가 뜨겁다. 인도 증시 시가총액은 5조2000억달러로, 아시아 금융허브인 홍콩(5조1700억달러)을 넘어섰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삼일 PwC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증시에서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66억 달러(약 8조9000억 원)로 전 세계 시장에서 3위에 올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도법인 총 운용자산(AUM)은 최근 30조원을 돌파했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자동치 시장이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빅3’ 반열에 올랐다. 현재 자동차 글로벌 ‘빅3’인 토요타, 폴크스바겐, 현대차의 공통점은 미국, 유럽, 중국, 신흥시장 등 전세계에 걸친 높은 점유율이다. 한때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해외시장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빅3 지위를 잃었다.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3위인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HMI와 기아인도법인(KIN)이 각각 15% 6% 가량으로 각각 2위, 5위다. 두 회사를 합쳐도 인도와 일본 합작기업인 마루티스즈키의 절반 가량이지만 단독 기업으로는 최대다. 마루티스즈키가 점유율은 두 배 이상 높지만 매출액(FY2022~2023)은 18조6000억원으로 HMI와 KIN의 합계(16조5000)와 큰 차이가 없다. 그만큼 현대차와 기아가 고부가 제품을 많이 판다는 뜻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인도를 방문해 전기차 글로벌 생산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인도 자동차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 가운데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부문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가진 곳은 단연 현대차그룹이다. 정 회장의 비전이 현실이 된다면 HMI 시가총액이 코스피에 상장된 현대차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모디 총리는 최근 총선에서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연정을 통해 재집권에는 성공했지만 개헌 의석수 확보라는 목표를 생각하면 초라한 성과다. 여러가지 패인이 있지만 두드러진 것이 빈부 격차와 고물가다. 인도 경제는 암바니(Ambani) 가문의 릴라이언스(Reliance), 아다니(Adani)그룹, 타타(TaTa)그룹 등 소수의 초거대 기업집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상위 1%가 전체 부의 20%를 가질 정도다. 글로벌 기업인 현대차그룹의 투자로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전기차 산업이 크게 부흥한다면 경제 전반의 균형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도 정치권과 정부 모두에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예전 중국이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할 때에는 국내 자본을 가져가 현지 기업과 반강제로 합작을 해야했다. 우리 돈으로 투자해 키웠지만 투자금 회수는 쉽지 않았다. 인도는 다른 모습이다. 초기 투자는 필요하지만 기술력만 있다면 추가 투자자금은 현지에서 충분히 조달이 가능하다.

CJ대한통운이 지난 2017년 인도 물류기업 다슬의 지분 50%를 인수해 사명을 'CJ다슬(Darcl)'로 바꿨다. 이 회사는 올 3월에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 조만간 증시에 데뷔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인도법인도 최근 JP모건과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인도 증시 상장을 최종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들은 LG전자 인도법인이 상장할 경우 최소 5억 달러(약 7000억원) 이상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정부는 인도에 40억달러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지원하는 신규 약정을 추진 중이다. 성사되면 일본, 독일에 이어 3위 공여 국가가 된다.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차관인 만큼 우리 기업의 인도 진출 시 요긴하게 활용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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