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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희의 현장에서] “위기 아닌 위기대비”...SK 행보에 거는 기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일 오후 미국 출장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로 귀국하고 있다. [연합]

지난 6월 한 달은 ‘SK의 달’이었다. ‘세기의 이혼’ 판결에서부터 SK그룹을 둘러싼 각종 매각설, 합병설, 구조조정설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각종 ‘설(說)’들이 쏟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계열사 어디를 판다더라’, ‘이곳과 저곳을 합친다더라’ 등의 설들이 난무하며 누굴 만나든 SK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서든데스(돌연사)라더니 SK가 정말 위기이긴 한가 보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SK가 올해 초부터 진행한 사업구조 재조정(리밸런싱)은 오히려 ‘SK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얼마나 심각하면 자발적으로 저러겠냐’는 시선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대대적인 사업 매각과 계열사 재편 작업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며 농담 반 진담 반 ‘투자은행(IB) 업계만 노났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다.

위기설의 절정이자 마침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달 28~29일 진행된 경영전략회의(옛 확대경영회의)가 찍었다. SK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1박2일 끝장토론을 벌인 결과는 ‘역대 최대 규모 투자’였다. 비상경영에 준하는 구조조정안이 주로 논의될 것이란 관측을 뒤집었다.

SK 최고경영진들은 오는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해 인공지능(AI), 반도체에 투자키로 했다. SK하이닉스는 향후 5년간 103조원, SK텔레콤·SK브로드밴드는 AI데이터센터에 5년간 3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중복 사업들은 과감하게 통합하고 ‘질적 성장’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최태원 회장도 지난 18일 간의 미국 출장에서 ‘분 단위’ 스케줄을 소화하며 글로벌 빅테크와 ‘AI 동맹’ 강화에 주력했다. 전날 귀국한 최 회장은 본지 기자가 출장 소감을 묻자 “잘 다녀왔다”고 했다. AI 협력 성과 질문에는 밝은 표정으로 “네”라고 하며 긍정적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SK는 지난해까지 부진했던 캐시카우(수익창출원)들이 상승세다. 적자에 시달리던 SK하이닉스는 세계시장 1위의 고대역폭메모리(HBM)에 힘입어 지난 1분기 영업이익 2조8800억원을 달성했다. SK이노베이션도 1분기 영업이익으로 6247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66.6% 늘었다. 올해 SK그룹 전체의 세전이익은 약 20조원 수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전기차 배터리 등 일부 사업이 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룹 전체가 위기라고 단언하기에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는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된다. 편안할 때도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한다. ‘거안사위(居安思危)’다. 이미 우리는 한 때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 코닥의 몰락에서 이것을 배웠다.

“현재 잘나가는 사업들이 몇 년 후에도 계속 잘 나간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느냐”는 SK 관계자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는 만큼,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소위 ‘잘 나갈 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힘을 비축해 기회를 준비하는 것이 진짜 ‘위기대응 DNA’다.

SK가 AI 리더십을 확보하며 글로벌 톱 티어 기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AI로 대변되는 변혁의 흐름에 대한 대비에 들어간 것은 분명한 만큼, SK의 발 빠른 대응이 다시 한 번 그룹을 도약 시킬 지 주목된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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