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심리, 시장과 엇박자를 낸 정부의 정책금융이 맞물리면서 가계 빚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이 1896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분기 말보다 13조8000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가 처음 공표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가구당 8340만 원의 빚을 지고 연간 300만 원 넘게 이자를 내는 꼴이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부채’를 말한다. 가계 부채는 지난해 말까지 계속 늘다가 올해 1분기 들어서는 깜짝 3조1000억원이 줄었으나 불과 한 분기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는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른바 ‘영끌’·‘빚투’가 되살아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이 확대된 영향이 크다.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카드대금)을 뺀 순수 가계 대출은 1780조원으로 전 분기보다 13조5000억원 늘었다. 이 중 주담대 잔액이 같은 기간 16조원 급증한 1092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 증가폭(12조4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부동산 시장 폭등기의 망령인 ‘영끌’·‘빚투’가 되살아난 것은 공급부족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올 상반기 아파트 분양 예정 가운데 실제 공급된 물량은 전국 27%, 서울 13%에 그쳤다. 원자재비와 인건비, 금리가 치솟고 택지 확보도 어려워 주택 건설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판단 미스는 상황을 더 꼬이게 했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한다면서 디딤돌대출,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자금 대출을 장려하고 당초 7월 시행 예정이던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갑자기 두 달 연기했다. 이에 대출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빚을 최대한 받아두자는 수요가 몰려면서 가계 빚이 더 쌓였다.
화들짝 놀란 금융당국이 20일 “은행권의 수도권 주담대에는 2단계 DSR에 적용되는 가산금리를 0.75%포인트 대신 1.2%포인트 적용할 것”이라며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섰다. 이것만으로 ‘빚투’를 잡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부동산 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면서 필요하면 LTV(담보인정비율) 강화 등 추가 조치도 강구해야 한다. 다음달 미국이 예고대로 기준금리를 내리면 한국도 금리 인하를 피할 수 없어 집값 불안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8·8 공급대책의 빠른 실행이 중요하다. 좋은 입지에 충분한 물량이 나올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야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