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년간 국내 상장사 임직원들의 횡령·배임 액수가 무려 5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횡령·배임은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경영 투명성을 훼손하는 중대 경제범죄로,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를 저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기업 저평가)의 원인이다. 거래정지·상장폐지로 이어져 투자자들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다. 가뜩이나 정부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관련 대책 개선과 강화가 절실하다.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코스피(유가증권시장)와 코스닥 시장을 합쳐 상장사가 공시한 횡령·배임 건수는 164건, 규모는 4조6234억원에 달한다. 코스피 시장에선 53건에 1조8585억원이었고, 코스닥 시장에선 111건 2조7649억원이었다. 올들어서만도 코스피선 6건(507억원), 코스닥 시장에선 12건(1036억원)의 횡령·배임 건이 공시됐다. 이로 인한 거래 정지 상장사는 코스피 19개, 코스닥 103개에 이르렀다. 평균 거래정지 일수는 코스피 498.1일, 코스닥 470.4일로 집계됐다. 코스닥에선 37개사가 횡령·배임을 포함한 사유로 상장폐지됐다.
자본잠식이나 매출액 미달 등 부실 경영 뿐 아니라 횡령·배임 같은 중대범죄가 거래정지·상장폐지로 이어지면 투자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보유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거래정지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업에도 증시 퇴출 전 충분한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나, 국내의 경우 그 과정이 복잡하고 기간이 길어서 우리 증시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상장폐지 실질 심사는 코스피에선 2심제, 코스닥에선 3심제인데,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기간이 최장 4년까지 걸릴 수 있다. 반면 미국 나스닥에선 1개월 이상 주가가 1달러 미만이면 경고를 받고 이후 540일 내에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거래소에서 퇴출된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올해 8월말까지 미 나스닥 상장사는 334개가 주는 동안 코스닥에선 137개가 늘었다.
상장기업수는 미국이 총 5600여개, 한국은 약 2600여개다. 경제와 시장 규모에 비해 우리 증시 상장사가 많다. 증시 진입은 쉽고 퇴출은 어려워 자격 미달이나 부실한 기업으로부터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많다는 얘기다. 횡령·배임은 지난 수년간 상장폐지의 주요 사유가 돼 왔다. 우리 증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기업 내부 통제 시스템이 필수다. 증시 상장 적격·폐지 요건도 강화하고 심사는 신속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