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좋아진다고 강조할수록 친일 대 반일 논쟁은 더 시끄러워진다. 퇴임이 한 달도 안 남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6~7일 1박 2일 간 방한했다. 퇴임 직전 외국정상의 방한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한국은 뉴라이트 세력의 친일행태 문제로 광복회가 광복절 기념식을 정부와 따로 개최하고, 사도광산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외교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던 시기였다.
일본 측은 한국이 먼저 초청했다고 하지만 지지율이 20%도 안 되는 일본 총리를 한국이 초청해 얻을 것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기시다 총리 개인이 원했다고 본다. 기시다 총리는 퇴임 후 영향력을 위해서도 자신이 만든 유리한 한일관계에 ‘불가역적 대못’을 박는 연출이 필요했다.
일본은 노회한데 한국은 순진해서 거절을 못한다. 일본은 속임수를 써도 한국이 따지지 않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 간 지배·피지배 관계라는 근대사의 트라우마와 관련 있다. 오늘날 한일갈등의 근원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의 성격과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 합의가 모호할수록 일본에게는 유리하다. 어떤 외교행위든 일본의 해석은 한국이 손해 보며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한국의 희망대로 해석하면 그저 ‘국뽕’ 정도로 간주된다. 그만큼 국내 친일·반일 정치논쟁도 심해진다. 일본이 한국에 작은 불씨 하나만 던져도 한국이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지는 이유다. 일본의 후임 총리는 한국에 새로운 불씨를 던지는 공세적인 외교를 계속할 것이다. 한국에게 기시다 시대보다 더 좋을 가능성은 없다.
한국은 미국에게 등 떠밀려가며 일본과도 협력 해야 한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 한미일 군사협력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미국은 아시아정책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한국의 그것보다 더 중시한다. 미일동맹은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의 핵심이며 한일안보협력은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론은 일본과 안보협력을 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친일 대 반일 대립은 더 선명하고 치열하게 된다.
사실 친일이나 반일 모두 19세기적 기억과 관점에 몰입돼 있다. 일본이 씌워놓은 프레임을 못 벗어난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외교적 약점을 임기 마지막까지 이용했다. 사실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대일외교는 한국외교의 기준점이다. 일본에게 따질 것은 따지면서도 우호협력을 할 수 있다. 그래야 미국과 중국으로부터도 존중받는다. 외교에는 설득만이 아니라 따지고 교환할 수 있는 등가물도 필요하다. 상대방이 원하는 이익이나 피하고 싶은 불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대일외교도 공세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게 역사교과서 수정을 요구하기만 할 게 아니라 일본도 한국에게 고치라고 요구해야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기득권세력의 세습적 지배구조인 ‘사이비 민주주의’(일명 ‘다이묘(大名)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나와야 한다. 일본의 민권운동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일본의 역사 반성을 촉구하고,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고, 국제사회에 한국의 피해를 알리는 외교에 주력했다.
그것은 사실 수세적인 것이다. 국내·국제적으로 좀 더 공감성 있는 프로파간다 능력이 필요하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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