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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정책대출 금단현상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집값이 다소 주춤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의 올 여름 만큼이나 뜨거웠던 서울의 주택거래량이 확연히 줄고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런 흐름은 공교롭게도 작년과 유사하다. 아직 연말까지의 집값 흐름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작년처럼 올해도 상고하저의 사이클을 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내렸음에도, 금리 인하가 집값 상승의 촉매제가 되기보다는 안정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다수인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탠다.

이쯤이면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집값 등락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집값을 좌우하는 변수는 수요와 공급, 교육, 교통, 인프라 등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유동성의 총량과 집값의 흐름이 비례한다는 점에서 대출 집행 실적을 주목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와 올해 모두 정책대출의 영향력이 막강했다는 점에 시선이 쏠린다.

금리가 폭등하며 2022년 말부터 가파르게 떨어지던 집값을 지난해 극적으로 반전시킨 동력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꼽는데 주저하는 이는 없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해에만 총 44조원이 공급된 바 있다. 급기야 이 대출이 집값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정부는 9월 부랴부랴 6억∼9억원 이하 ‘일반형’ 대출을 중단하고, 6억원 이하 ‘우대형’ 대출만 축소 운영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집값은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는 시즌1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시즌2가 나왔다 신생아 특례대출이다. 여기에 기존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 등의 공급 재개도 겹쳤다. 정책금융의 힘은 한층 배가됐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 “(신생아 특례대출의) 지난 실적을 보니 주택시장 영향을 줄 만큼 그렇게 많이 나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등을 더한 전체 정책대출로 확장해 생각하면 얘기가 다르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가운데 정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혹자는 정책 대출 대상이 저가 아파트에 국한된다는 반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정책 대출 자금이 서울 저가 지역의 아파트 매수 원천으로 활용되고, 이 집을 매도한 이가 또 다른 대출을 더해 다른 상급지 매수의 종자돈으로 활용한 게 올해 주택시장의 트렌드였다. 정책대출의 연쇄 효과다.

무주택자, 그리고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한 선의에서 시작된 정책 대출을 악(惡)으로 치환하는 건 곤란하다. 다만 정책대출이 시장에 키운 내성이 우려될 뿐이다. 2년째 정책대출은 집값을 뒷받침하는 마중물이 되어버렸다. 항생제에 내성을 키운 세균은 더욱 강력한 항생제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한 취재원은 이를 비유해 내년엔 어떤 명분의 정책 대출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고 했다.

극심한 자산 양극화,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는 내수 부진의 뒤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가계부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자를 내느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난맥에 빠진 우리 경제에 집값 안정을 위한 대출 유동성 공급은 분명 딜레마다. 이쯤에서 정책대출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곧 가시화할 대출 금단현상에 대응할 내년 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정순식 건설부동산부장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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