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금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한국으로부터 현재보다 무려 9배 가깝게 돈을 더 받겠다고 사실상 공약했다. 트럼프 발언이 자국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해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해도 우리로선 그의 재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우선은 한미동맹 전선에서 우리의 방위 기여도에 대해 트럼프측의 인식을 올바로 바꿀 수 있도록 정부는 대미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트럼프는 15일(현지시간)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이뤄진 블룸버그통신 편집국장과의 대담에서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부유한 나라)”이라며 자신이 재임 중이라면 한국이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약 13조원)를 지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양국 정부가 합의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으로 트럼프가 주장한 액수는 이 돈의 8.5배다. 트럼프가 집권 1기(2017~2020년)에 한국의 부담을 대폭 늘리려 했고, 연임에 성공했다면 그만큼 더 많이 받아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집권 1기부터 거듭하고 있는 방위비 인상 압박이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번 부풀린 주한미군 수를 근거로 내세웠고, 한국은 부자나라임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번 대담에서도 실제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규모를 4만명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한국인들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한다”며 “(그럼에도)한국은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이것은 미친 일”이라고 했다.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가이드라인인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는 2.5%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고, 주한미군 주둔비용도 한미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고, 한국은 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변함없는 인식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 가능성을 언급하며 한국에 분담금 증액을 요구해왔고, 재집권시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방위비 협상 문제가 한국의 재정적 부담 뿐 아니라 안보 불안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하는 등 연일 대남 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 오판 여지를 줄 수 있다. 관세 등 한미간 교역에 미 정부가 방위비 문제를 지렛대 삼을 수 있다. 트럼프 뿐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미 보수 진영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