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내 유통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유니콘 기업이었던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선택을 하였다. 2014년에는 당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였던 알리바바도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미국 증시 상장을 택했다.
한편, 세계적 기업 엑소르는 2022년 자국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상장폐지를 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증시에서 재상장하였다.
이들 기업은 왜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의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인가? 바로 ‘차등의결권’을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기업은 우호적인 규제 환경을 찾아 얼마든지 이동한다. 즉, 규제 역시 글로벌 경쟁의 시대인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2018년부터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는 자본시장의 투명성 제고 및 기업 밸류업의 일환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논의되는 내용을 보면,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그리고 최대주주 측의 의결권 3% 제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국가는 우수기업을 육성하고 다른 나라의 우량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1주 1의결권의 예외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도 허용하고 확대하고 있다. 2024년 3월, 이탈리아가 차등의결권 관련 법을 개정하여 기존의 2년 보유시 최대 2개 의결권 부여에서, 10년 보유시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반면, 우리는 일부 나쁜 선례들에 경도되어 지나치게 창업자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기업하기 어려운 국가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글로벌 경쟁 시대의 규제는 글로벌 정합성은 물론이고 그 효과성 검증 등 치밀하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수반되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나쁜 대주주에 대한 견제만을 생각하여 자칫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근원적으로 훼손하고, 더 나아가 창업할 동인이 사라지는 경제가 된다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최근 논의되는 지배구조 규제 강화 방안들은 근본적으로 대주주가 한국 증시에 기업을 상장하거나 상장을 유지할 유인을 지나치게 약화시킨다. 지배구조 강화 법안으로 인해 우리 좋은 기업들의 한국 엑소더스로 이어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유니콘 기업, 수익성 좋은 알짜 기업들이 한국 증시를 떠난다면, 결국 보호하고자 하는 소수주주들의 피해만 더 커질 수 있음에 주의하여야 한다. 한국 증시를 찾던 외국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아 한국 자본시장의 고립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한국 기업의 성장, 자본시장의 발전, 국가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많은 좋은 기업들이 우리 증시를 통해 자본을 조달하고 기업을 키워갈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주주 견제 목적의 지배구조 강화 법안이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 확보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심도 있는 분석과 사회적 논의가 수반되길 기대한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에서 낙오되어 갈라파고스 제도로 향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류혁선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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