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 증시가 계속 하락하고 원화 가치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8일 이후 사흘 연속 하락해 급기야 12일 2500선마저 내줬다. 원화 가치도 이날 ‘트럼프발 슈퍼달러(달러 강세)’ 태풍에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꼽은 1400원 선을 2년 만에 뚫고 미끄러졌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발 고금리 충격 이후 네 번째 보는 1400원대 환율이다. 반면 나라 밖은 딴판이다.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수혜자산 투자)’의 총아인 비트코인은 12일 장중 한때 9만달러 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로 치닫고 있다. 뉴욕증시는 물론 중국, 일본, 유럽 증시도 미국 대선 후 상승했는데 한국만 역주행이다.
이는 트럼프노믹스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특히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정적 관측 때문이다. 트럼프가 내세운 고관세와 감세, 이민정책 등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고환율·고물가가 다시 한국 경제를 뒤흔들 것이란 예측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2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하향조정하고, 내년 성장률은 기존 대비 0.1%포인트 낮은 2.0%로 내린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이 5년 전보다 0.4%포인트 낮은 2.0%인데 트럼프 2기가 시작되는 내년에는 이마저도 간당간당한 것이다.
KDI는 ‘2024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에는 민간 소비가 회복되는 등 내수 부진에서 점차 벗어나지만 수출 둔화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봤다. 올해 7.0%에 달한 수출 증가율(물량 기준)이 내년엔 2.1%로 꺾일 것으로 전망에 따른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보편관세 20%를 물리면 한국 전체 수출액은 448억달러(약 63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KDI는 이 같은 관세 인상 조치가 2026년부터 적용될 것으로 가정했는데 시행시기가 내년으로 앞당겨지면 내년 성장률은 잠재성장률(2%)에 못 미치는 1%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미국 공화당의 ‘레드 스위프(대선과 의회선거에서 모두 승리)’ 로 고관세 공세가 예상보다 이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트럼프식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유지가 급선무다. 정부는 자금 조달 문턱을 낮춰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불필요한 규제로 인한 비용낭비도 감축해야 한다. 물가 안정 기조로 추가 금리인하 여력이 생긴 만큼 기업의 금융비용을 줄여주는 선제적 통화정책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