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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고산자, 대동여지도’ 그리고 ‘아빠 혹은 배우’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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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왜 그였을까. 조금만 더 들어가면 그는 왜 그걸 잡았을까. 이 두 가지 의문은 사실 맞닿아 있는 지점이었다. 거장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고 원조 흥행 감독이란 영광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옛일이다. 강우석 감독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통해 재기를 꿈꿨는지 아니면 아직도 건재하단 무언가를 증명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사극이며 역사 속 실존 인물이지만 가상에 가까울 정도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지도꾼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얘기를 하려 했을까. 진짜 의문은 실상 다른 지점이었다. 앞선 모든 의문에 일언반구의 의심도 않고 그것을 잡아버린 차승원의 선택이다. 그는 왜 조선 말기 그 혼란했던 시절 속 미친 인간으로 풀이된 한 남자의 삶에 고개를 돌렸을까. 궁금했다.

영화 개봉 하루 전인 6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차승원은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키는 좀 큰(?) 좀 많이 멋진 아저씨이지만 말이다. 조금 힘든 모습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김정호’의 고단했던 삶과는 좀 다른 ‘삼시세끼’의 ‘차줌마’가 그리운 살가운 정의 느낌과는 좀 다른 설명 불가능한 묘한 거리감과 친근감이 공존했다. 영화에 대한 태도와 고민 그리고 애정의 다른 느낌일 것이다.

“사실 많이 걱정이 되요. 그게 그렇게 보이는 걸 수 있겠네요(웃음). 함께 하는 영화(밀정)가 워낙 쎈 작품이라. 하하하. 흥행 적인 면도 있지만 진짜는 우리 영화를 보고 느낄 청소년들의 감정이 어떻까에 있어요. ‘저렇게 역사가 만들어 졌구나’라고 느낄텐데. 실제 김정호 선생님에 대한 얘기는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아요. 영화가 ‘그럴 수도 있지 않아?’란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이 얘기는 엄연한 사실이잖아요. 그 갭이 터무니없이 벌어지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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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는 첫 번째이지만 배우 인생에선 두 번째 사극이다. 과거 영화 ‘하이힐’을 찍으면서 느낀 어떤 해야만 했었던 감정이 이 작품에서 전해져 왔었다. 그리고 욕심도 생겼다. 배우 인생에서 역사 속 인물 실제 했던 인물을 연기하며 그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하이힐’이 처음이었죠. 그냥 막연하게 ‘뭔가 의미가 있겠다’란 감정?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어요. 사실 뭔가 어울리는 게 오면 해야 하는데 선뜻 손이 안가고. 반대로 누가 봐도 어울릴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동 떨어지는데 욕심이 생기고. 내가 어울릴까? 이런 생각보단 그저 인연이라고 생각했어요. 참 말이 어려운데 그래요(웃음). 어차피 감독님이 장르를 부여한 가상의 인물이 살아가는 삶을 내가 연기하는 거니깐. 현장에서 모든 걸 느끼고 가자는 생각이었어요.”

그의 이 대답에서 ‘고산자, 대동여지도’ 현장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차승원의 이미 다 알고 있는 모델 출신이다. 전문 연기자 출신이 아니기에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결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를 높게 평가는 감독들은 하나 같이 극찬을 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발군의 감각이다. 배울 수도 없고 배워지지도 않는 지점이다.

“감각은 무슨(웃음). 그냥 먹고 살라고 하는 거죠. 하하하. 김정호 선생님을 연기해야 되요. 뭔가 참고를 해야 하잖아요. 영화가 거짓말이라지만 어찌됐든 실존하셨던 분이니. 그런데 남아 있는 게 없어요(웃음). 아니 있기는 하지. 아마 기자님도 반나절이면 그 분의 삶을 통째로 알 수 있을 정도? 결국에는 뭔가를 참고하자는 생각을 버렸어요. 아니 그럴 수가 없었죠. 남은 게 없으니. 그냥 현장에서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 두자. 그게 정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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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은 뭔가 수치화 될 수 있는 이미지를 원했다. 일례로 ‘변호사’라면 정형화된 골격이 있지 않나. 하지만 ‘지도꾼’ 혹은 ‘미친 인간’ ‘광인’으로 불렸던 김정호의 모습은 그 수치화에서 벗어난 지점이었다. 강우석 감독과 차승원은 그 인물이 집착했던 지점 그리고 그 지점에서 사회적 분위기 그 안에서 풍겨져 나오는 해학을 덧입혔다. 그렇게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아 왔던 김정호가 그려졌다.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보면 알겠지만 ‘이걸 사람이?’란 느낌이 들어요. 이걸 만든 사람이 과연 온전한 삶을 살아온 인간일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관계 또는 일상은 허술하지 않았을까. 그런 굴곡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허술하면서도 허허실실한 이면을 부각하면 후반부 감정이 휘몰아치는 부분이 극대화될 수 있겠더라구요. 사실 그래서 애드리브도 조심스러웠죠. 후반부 감정이 훼손될까봐.”

후반부 급격하게 톤이 올라가는 감정의 굴곡은 아마도 관객들이 원했던 감정의 흔들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흔들림이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영화 시작 후 20여분 동안 이어지는 전국 팔도의 자연 경관이었다. CG를 의심케 하는 자연 경관은 자연스럽게 눈을 비비게 만들었다. 이 장면은 강우석 감독의 뚝심이 만들어 낸 실제 촬영본이다.

“실제로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어요. 계절 변화까지 모두 담아냈으니까요. 전체 촬영 기간을 따지면 한 9개월이 넘죠. 힘들지 않았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너무 즐거웠어요. 그냥 여행이잖아요. 그리고 너무 신기했어요.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이게 대한민국 맞아? 이런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에요. 정말 놀라워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나중에는 김정호 선생님이 모두 발로 걸어다닌 곳이란 생각이 드니 묘한 떨림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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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최고의 백미는 아마도 백두산 천지 경관을 담아낸 모습일 것이다. 전국 팔도를 모두 담아내야 한다는 강우석 감독의 고집이 만들어 낸 걸작의 다른 이름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당초 강 감독은 북한을 통과해 백두산에 오르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장면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고.

“감독님 애착 대단하셨죠(웃음). 그런데 올라가보니 알겠더라구요. 왜 그렇게 백두산 천지에 애착을 갖고 계셨는지. 내가 눈으로 보고 있어요. 그런데도 CG라고 착각이 들어요. 그냥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뭐랄까. 하늘 바로 아래 내가 서 있는 느낌? 천지를 보고 있는데 보고 있는 중간에 천지 한 가운데서 용이 튀어 나와 하늘로 승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그 정도 신비로워요. 죽기 전에 무조건 한 번씩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전 강추입니다.”

지도꾼 김정호가 지도 하나에 미쳐서 평생을 길 위에서 보냈듯이 차승원도 배우로서 무언가에 미칠 수 있을까. 배우도 미치지 않으면 하지 못하는 어쩌면 광인의 삶과도 비슷한 느낌 아닐까. 그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 속에서 그는 김정호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느낀 점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만족을 위해서 그렇게 미쳐가는 거 아닐까요. 배우도 그렇고 어떤 직업이라도 미쳐야 하는 것은 맞죠. 어떤 직업이든 상상하고 그 상상에 집중하고 또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 문제를 파악하고. 그 모든 과정에 접근하려는 것이 맞는 것이고 온전한 믿음이 아닐까요. 좋아하기 때문에 미치는 거죠. 하지만 부족하다고 느끼면 집착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만족이 어떤 지점에 왔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동문서답인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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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 없이 자신의 무언가를 쌓아온 차승원은 당분간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홍보와 나머지 몫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 쉼표를 찍을 생각이란다. 시청자들에겐 힐링의 시간이었지만 정작 본인에겐 그것도 쉼 없는 달림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삼시세끼’도 또 다시 휴식에 들어간다. 드라마나 영화도 차기작 선정보단 잠시 머무르겠단다.

“아마도 올해는 좀 쉬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고 싶어요. 하하하. 혹시라도 속 좋은 소리라고 하실 텐데. 그래도 각자가 느끼는 부담의 강도는 분명 다르니깐. 전 지금은 좀 쉬어야 할 타이밍 같아요. 애들하고 놀면서 아빠 차승원으로 아주 짧겠지만 좀 살아야 할 듯해요. 제가 그러고 싶어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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