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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잇 수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세상에 지친 이들을 향한 '가벼운' 위로

  • 2017-07-14 11:05|문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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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우리가 사는 세계의 자유란 실질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추억 속에 자리한 빨강머리 앤은 늘 행복할 것 같았다. 사과나무길을 지나가며 행복해하던 모습 그대로, 늘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누구나 자란다. 슬픔을 겪고, 좌절을 경험하며 성장해간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세상 그 어떤 일에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마치 앤 셜리 같았다. 세상 누가 건드려도, 슬프게 해도 “됐다. 나는 내 삶의 방식대로 가련다” 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 술을 한잔 기울이던 밤 그는 펑펑 울었다. 한 자리에 있던 지인이 스치듯 건넨 말 한 마디가 자신이 속으로 곪아가며 걱정하고 우려해왔던 일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깨부술 수 없었다고.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그에게 나는 그저 “울지 말라”고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밖으론 그 어느 태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건네고 싶다. 사실 그들은 태풍우에는 끄떡 없지만 살랑이는 바람결에도 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알아보고 조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생채기들을 혼자서 감내하고 살아내야 한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인생 전반을 말하지만 그 인생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대해, 소소한 것들에 상처받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조금씩 너그럽고 상냥하게 키운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거울을 보며 어느 날 당신도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 정말 좋다! 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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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그렇게 심각한 책이 아니다. 슬쩍 보면 어디서나 나올 법한 글귀들로 장식돼 있는 듯하다. 작가의 글에는 한결같이 사랑이 넘쳐나고 따뜻한 온기가 있다. 그저 그것이 부러울 뿐으로 여겨지는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띈다. 작가의 표현대로 한낱 사막일 뿐 오아시스는 없는 황량한 사막처럼, 마음이 텅 비어버린 이들에겐 별다른 자극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대신 외로움에 절어 틀어놓는 라디오와 같은 힘이 있다. 초반엔 지루하기까지 했고 천편일률적인 ‘좋은 말 퍼레이드’ 같았던 이 책은 오히려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그렇기에 점점 귀를 기울이며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마법을 시전한다. 외로움과 슬픔, 사랑, 죽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차분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써내려 가는 백영옥의 글에서는 끌어 안아주는 다독임 대신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위로가 담겼다. 때로는 너무 진한 위로보다 적정한 거리에 선 이가 전하는 따스함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적정한 거리에 있는 듯한 그런 책이다. 그래서 덜 상처받고, 더 치유 받을 수 있다.

“꿈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이 세상에 ‘삶’보다 강한 ‘꿈’은 없다. 인간은 꿈을 이룰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꿈꿀 수 있을 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앤 셜리를 모르는 세대는 배제한 듯한 아쉬움이 있다. 앤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즐겁게 앤의 이야기와 백영옥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내려 갈 수 있다. 곳곳에 ‘훅-’하고 두서 없는 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앤을 아는 이들이라면 기억이 나지 않는 에피소드라도 ‘그랬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흐드러지는 꽃나무가 떠오르는 오프닝을 모르는 젊은 세대라면 듬성듬성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껏 살아보니’ 어린 시절 바라보던 세상과 퍽 달라졌다고 백영옥 작가가 말하는 삶은 중장년층이 견뎌온 무게를 담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책은 ‘주근깨 빼빼머리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란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만 가장 큰 가치와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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