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사랑을 꿈꿨던 한 여자는 인생의 추락을 맛본 뒤 다시 일어서면서 이 책을 읽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언젠가 자신도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사랑처럼, 일생을 거는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철썩같이 믿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고교 시절의 풋사랑에도 모든 걸 걸었던 사랑꾼이었다. 다정한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그녀는 꿈꾸는 로맨티스트가 아닌 밟으면 부서지는 가을 낙엽 같은 심장을 갖게 됐다. 그녀의 남편은 외도를 저질렀고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품고 있을 때도, 낳았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소설 같은 사랑을 자신이 겪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다만 그녀가 동경하던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추잡한 인생의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막장드라마 같은 소설이었다. 사랑한다 믿어왔던 남자와 함께 써내려 가려던 인생은 한 줌 재처럼 허망해졌고, 텅 빈 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녀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멍하니 중고서점에 들어갔어. 평소 좋아했던 작가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난생 처음 보는 책이 있더라고. 집어 들고 읽었는데 말도 안 되는 사랑 이야기가 적혀 있더라. 세상에 절대 없을 것 같은 사랑. 진짜 소설 같은 사랑이야기. 그런데 말도 안 되게도 위안을 받았어. 내 인생은, 사랑은 엉망진창이라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화가 나고 눈물이 쏟아졌는데 글쎄 이 책 주인공들은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하고 있더라고. 묘하게도 그게 위안이 되더라. 나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사랑. 나만 세상의 패배자가 아니라는 느낌…. 더 웃긴 건 이렇게 아내로 배신당했고, 여자로 멸시 받았단 사실에 미치게 괴로운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다시 뛰었어. 정말 웃기지.”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할 사랑이라 좋았단다. 그런 사랑이었지만 바스라진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단다. 그 책 이름은 ‘라이온하트’였다. 미스터리, 판타지, SF, 호러의 대가 온다 리쿠는 언젠가 꼭 한번 쓰고 싶었던 러브스토리를 우연히 듣게 된 노래, 박물관에서 본 한 장의 명화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했다.



“나는 당신이어서 좋았어요. 당신을 발견할 때마다, 아아!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가! 라고 생각하죠. 항상 그랬어요. 만난 순간, 세상이 온통 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은 환희를 느끼는 걸요.”

런던 근교의 비행장.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여류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를 환영하기 위해 모여든 군중 속에서 청년 에드워드는 열두 살 소녀 엘리자베스와 만난다. 처음 만나는 사이가 분명한데도, 엘리자베스의 입에서는 열두 살 소녀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격한 사랑의 언어들이 터져나온다. 황당해 하는 에드워드를 불의의 사고에서 구하고 죽게 된 엘리자베스는 자신들은 이미 여러 차례 만났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거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45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사랑을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만나고 싶었어요. 당신도 그렇죠? 우리는 몇 번이나 만났지만 맺어진 적은 없어요. 하지만 헤어진 순간부터, 다시 만날 순간을 한없이 기다려요…….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이유 같은 건 몰라요. 하지만 만나고 싶었어요. 안 그런가요?”

1932년, 그렇게 허망하게 끝난 만남은 계속 반복된다. 이별 역시 반복된다. 환생을 거듭하면서 그들은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어 만나지만 만나자마자 이별을 겪게 된다. 그들은 늘 한 번의 생에서 오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그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늘, 일생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짧은 만남에도 일생을 함께 한 것 같은 충족감을 느낀다. 거듭되는 윤회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영혼의 만남. 숙명적인 사랑의 결말이 독자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나락에 빠져 있던 그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