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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④입양봉사 ‘유.행.사.’ 현장을 찾아가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논쟁이 있다. 가령 동물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 동물원의 가혹성과 동물실험부터 시작해 개고기 섭취, 길고양이 밥 주기, 덩치 큰 동물의 산책 등 파생된 갑론을박은 셀 수 없다. 그런데 이 중 답을 내릴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반려동물 인구 천만시대, 이와 함께 넓어지지 말아야 할 시장인 유기동물의 세계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찬반이 없다. 처절한 민낯과 차가운 외면, 그리고 이를 감싸 안으려는 희미한 온기뿐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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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사 현장(사진=이소희 기자)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2018년 첫 번째 주말인 지난 6일 토요일. 추위마저 한층 누그러진 날씨에 이태원 거리는 놀러 나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으로 향하는 길, 천천히 걷다보니 노란 지붕 천막이 보인다. 그곳에는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유기동물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유기동물 현장중심 입양 캠페인 현장이다. 일명 ‘유행사’라고 불리는 이 단체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태원 거리에서 자원봉사들과 함께 입양 캠페인을 펼친다.

■ 인스타그램으로 신청하는 자원봉사

운영진은 노란 조끼, 봉사자는 초록 조끼를 입어 서로를 구분한다. 운영진은 이리저리 오가며 동물들을 살피고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에게 아이의 사연과 입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왼쪽 고양이 천막의 봉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천막에서 개를 돌보는 봉사자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가슴줄을 채워 산책을 시키고 있었다.

유행사는 카페 등을 비롯한 공식 SNS에서 매주 봉사자를 모집한다. 4명의 운영진도 평일에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봉사자들이다. 운영진은 “봉사자들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유행사의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약 2만 명에 달한다. 그만큼 유기동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봉사활동 현장에 나서기까지 발걸음은 무겁기만 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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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노란 조끼를 입은 운영진과 초록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아래) 입양을 기다리는 개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사진=이소희 기자)



익명을 요구한 한 봉사자는 “원래 어린이나 노인 분들이 계시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하려고 했지만 대부분 서울 외곽에 있기 때문에 차가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봉사자가 현장에 나오기 시작한지는 약 3개월. 현재는 고양이 3마리를 임보(임시보호)하며 매주 현장출석을 하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유행사의 위탁보호소로 왔다. 안타깝게 그 아이는 목숨을 잃었지만, 마침 나도 이쪽(이태원)으로 이사를 오게 돼서 봉사를 하게 됐다”고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다른 동물도 아니고 유기동물을 대하는 것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똑같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고 아파하지 않냐”면서 “오히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까지도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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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의 다른 특성상 서로 다른 공간에 모여 있다(사진=이소희 기자)



■ “엄지와 처음 마주치던 순간, 가슴이 뜨거웠죠”

현장에 나온 아이들 대부분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봉사자에게 “생각보다 아이들이 순하네요?”라고 말했더니 “대부분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아이들이 사람의 품에 안겨 떨어질 줄을 몰랐다. ‘피치’는 한 시도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사람의 손길을 반겼다. ‘또치’는 계속해서 안아달라며 울타리를 넘으려(?) 시도했다. 1살도 채 안 된 ‘설이’는 봉사자의 등에 업히려 애썼다.

물론 아직 낯선 환경을 무서워하고 경계심이 많은 아이들도 있었다. ‘순자’는 그런 면에서 눈에 띄었다. 올해 7살이 된 순자는 활기찬 아이들 속에서 혼자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오거나 사람들의 손길이 닿으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 있는 폼이 엉성하다 싶었는데, 발견 당시 뒷다리가 좋지 않았고 현재는 슬개골탈구 수술을 마쳐 회복 상태란다.

갑자기 현장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며 소란스러워졌다. 여러 명의 봉사자, 운영진이 개 한 마리를 얼싸안고 있었다. 그 개는 사람들에 얼굴을 부비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엄지. 노란 천막에 출석하다가 지난해 11월 따뜻한 새 가족의 품에 안겼다. 일산에 거주하고 있는 정향례 씨는 지난해 9월 유행사와 인연을 맺었고, 11월 11일 엄지를 입양했다. “엄지와 처음 마주치던 순간 가슴이 너무 뜨겁고 아팠다”고. 그렇게 기존 키우던 요크셔테리어 모녀와 5년 전 한 할아버지가 길가에 내놓은 걸 보고 데려온 시츄 한 마리까지, 총 네 식구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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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족을 찾은 엄지(사진=이소희 기자)


정향례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엄지의 근황을 공유하긴 했는데, 다들 엄지를 너무 예뻐해 주셔서 새해 인사도 할 겸 놀러왔다”고 말했다.

이어 “유기동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잘 모르기도 하고 용기도 부족해서 마음만 가득했다. 그렇게 기부만 해오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유행사를 알게 돼 현장에 나오게 됐다”면서 “입양에 대한 걱정은 안 했다. 어차피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아이들이다.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을 주고 다독여 주면 마음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행사는 현장에서 입양이 결정되면 필요 서류를 작성한 뒤, 당일 연계동물병원에서 동물의 중성화수술 및 혈액검사 백신접종 등을 진행한다. 입양 후에는 1년 동안 유행사의 관리를 받는다. 한 달에 두 번 입양동물의 소식을 전해야 하며, 만약 약속과 다르게 보호하거나 혹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는 파양조치 된다. 이미 상처 입은 동물에 더 이상의 책임감 부재는 있어서 안 되기에 꼭 필요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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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아직 사람을 경계하는 순자/(오른쪽 위) 유난히 사람을 따르던 피치(사진=이소희 기자)



■ 차라리 보호소가 편하다는 말의 무게

가족, 연인, 친구 등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귀여운 동물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발길을 멈춘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한 어린 아이가 “얘네들 언제 죽어요?”라고 걱정스레 물었다. 이를 들은 한 봉사자가 “여기 있는 친구들은 입양될 때까지 안락사 되지 않아요~”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유기동물 보호소는 일정 기간 지나면 안락사를 택한다. 한 봉사자는 “이런 말도 그렇지만, 솔직히 이곳에 있는 아이들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거다”라며 통감했다.

유행사의 환경이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약 40마리가 넘는 노란 천막의 아이들은 병원, 위탁처, 임보처(가정집) 등에서 지내고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 이곳으로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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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사 캠페인에 호기심을 보이는 시민들(사진=이소희 기자)



이 봉사자는 “유흥의 거리인 이태원에 이런 유기동물 입양현장이 있다는 걸 누가 알겠냐. 사람들이 몰려 복잡하다고 민원도 들어온다. 게다가 이 동물의 털로 무얼 만들 수 있냐고 묻거나, 기르고 있는 동물이 새끼를 낳으면 여기에 팔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개 시장’이 들어섰냐고 묻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이 기사도 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볼 게 아니냐. 유기동물에 관심이 없거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볼 수 있게끔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쳐다봤다.

엄지를 입양한 정향례 씨는 “엄지를 케이지에 넣으니 30분 동안 불안해하더라. 계속 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다들 동물을 볼 때 무슨 종인지를 따지거나 외형적으로 예쁘게 생긴 아이들만 좋아한다. 편견이 심하다”면서 “우리나라에는 길에 돌아다니거나 학대당하는 동물이 너무 많다. 우리 세대에 해결이 되진 않겠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입양된 아이들은 볼트와 루시, 로또까지 총 3마리. 여전히 사람을 반기는 아이들이지만 매주 거처를 옮기며 불안을 겪는다. 현장에 가득하던 밝은 웃음소리 한편에는 안타까운 심정이 서려있다. 여전히 ‘차라리 보호소에 있는 애들은 행복한 거다’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무겁기만 하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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