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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리뷰] ‘안시성’ 이젠 영웅 아닌 주인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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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스틸컷 (사진=NEW)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동민 기자] 전쟁은 국가가 주도하는 살인 행위다. 승리를 위해 기꺼이 적을 죽이고 이 과정에서 아군의 죽음을 무릅쓴다. 흔히 전장에 나서는 강인한 용기와 숭고한 애국심으로 포장되는 건 전쟁의 실체가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딜레마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쪽은 주로 전쟁을 거는 편이 아니라 이에 맞서는 편이다. 영토와 주권, 그리고 ‘국민’이란 이름의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많은 군주들은 외부의 공격에 대항해 싸워 왔다.

영화 ‘안시성’이 그리는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바로 이같은 딜레마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을 공격하자 그는 고작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여기에 맞선다. 상식적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싸움에서 그는 결코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영화는 이러한 양만춘의 용맹함과 그를 따르는 성민(城民)들의 투지를 조명하며 치열한 드라마를 완성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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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스틸컷 (사진=NEW)



조인성이란 배우를 통해 그려지는 극중 양만춘은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라는 구호로 정의할 수 있다. 애초부터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이세민의 군대에 맞서 양만춘은 죽음을 각오한 채 전투에 임한다. 사물(남주혁)에게 “너는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느냐”라고 묻는 그의 대사는 무모함 그 자체로 비친다. 그리고 실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길 수 있는 싸움’으로 변화시켜가는 양만춘의 리더십은 전쟁물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다. 바로 양만춘의 가치관과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지 사이의 괴리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는 분명한 해피엔딩에 의존하면서 정작 인간 양만춘의 고뇌와 갈등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는 서투르다. “성에 사는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지금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구호가 자신의 백성들을 사지로 내모는 거나 다름없는 그의 선택과 좀처럼 맞닿지 못하는 셈이다. 영화는 양만춘을 줄곧 인간미 넘치고 권위적이지 않은 리더로 그리지만 동시에 맞서 싸우는 것 말고 다른 해법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인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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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스틸컷 (사진=NEW)



이는 일견 양만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 속 시선의 주체와 대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으로도 여겨진다. 영화는 초반부 연개소문의 명을 받아 안시성을 향하는 사물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어느 순간 안시성의 패망을 예언하는 신녀 시미(정은채)에게 공을 넘긴다. 그러다가 돌연 이들의 소신을 간단히 정리하고는 양만춘의 정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죽을 각오로 싸우는’ 태도야말로 최선의 정의라고 역설한다. 이 과정에서 양만춘은 고구려의 충신도, 그렇다고 이타심으로 무장한 현명한 리더도 되지 못한다. 그저 막다른 골목에서 고군분투하는 전사로 남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몇 줄 안 되는 기록에 의지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에 얽매여 캐릭터의 ‘빈칸’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도 사극 영화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안시성’이 이세민에 맞선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를 강렬하고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단 점은 인정할 만하지만 인간 ‘양만춘’의 모습이 그저 익숙한 영웅의 모습으로 다뤄진 점이 못내 아쉬운 이유다. ‘영웅’이 아니어도 좋으니 가끔은 특별할 것 없이도 사랑스런 사극의 주인공을 볼 수는 없을까.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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