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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뷰] 결코 그들의 것만이 아닌 연극 ‘사랑의 끝’, 지독한 현실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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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란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연극 ‘사랑의 끝’은 보통의 공연장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입장 전 ‘공연장 내부가 어두우니 휴대폰의 프레스를 켜고 입장하라’는 안내를 받는다. 실제로 관객석은 조명하나 없이 시커먼 삼면의 벽에 둘러싸여 있다. 분명 공연 시작 한참 전이지만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도 옆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겨우 내뱉는다.

관객석의 맞은편에 유일한 불빛이 존재했다. 그 공간은 대기실로, 몸을 풀고 있는 배우가 있다.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관객들의 시선이 머문다. 공연이 시작되고 지현준이 등장해 대기실에서 몸을 풀던 문소리를 향해 벌컥 소리를 친다. 문소리가 대기실을 박차고 나와 연습실로 설정된 무대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다.

지현준과 문소리는 연출가와 여배우이자 사랑하는 연인이다. 아니 정확히는 연인이‘었’다. 이미 그들의 몸속은 서로를 할퀼 이별의 언어들로 가득 차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싸늘했던 공기는 공연이 시작되면서 더욱 차갑게 식는다.

무대의 한편에는 마사초의 벽화 ‘낙원에서의 추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 속 아담과 하와는 곧 무대에서 현실이 된다. 사랑의 끝은 그야 말로 처참했다. 사랑했던 연인의 낙원이 되었던 연습실은 이별의 순간, 서로에게 가하는 모욕적인 언어로부터 오는 수치심으로 가득 찬다.

지현준과 문소리는 함께 무대에 서 있지만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일은 없다. 지현준이 먼저 50분 동안 지독한 말들을 배설해내고난 후에야 ‘끝났니?’라는 말로 문소리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녀 역시 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잔인하고 파괴적인 말들로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을 주저앉힌다.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는 동시에 이별의 혼란스러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관객들은 이 이별의 순간을 결코 연극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서로를 무너뜨리는 언어의 무게는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상대의 가시 돋친 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무겁고 차가운 공간에 함께 자리한 관객들도 이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 무대 위의 이별이 실제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끝’은 2011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돼 전 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안된 작품이다. 프랑스의 극작가 겸 연출가인 파스칼 랑베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아낸 냉혹한 헤어짐의 순간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프랑스의 연인들이 내뱉는 이별의 언어들이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언어를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다. 이별의 민낯을 그린 만큼 그들이 내뱉는 단어들도 매우 노골적인데, 이 것에서 오는 불편함 역시 관객들이 이겨내야 할 숙제다.

연극 ‘사랑의 끝’은 오는 27일까지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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