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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스포츠’답지 않은 스포츠토토 사업자 선정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지극히 사회참여형이었던 한 후배가 대학졸업 후 스포츠기자를 직업으로 택했다. 종합일간지의 사회부나, 정치부도 아니고 사회의 큰 수레바퀴와는 상관없는 스포츠전문지에서 프로야구를 취재했다. 뭐 스포츠야말로 가장 자본주의적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피해갈 방도가 없겠지만 어쨌든 그는 그 어색한 선택의 이유로 ‘스포츠의 공정함’을 들었다. 보수든 진보든, 성장이든 평등이든 인간사회는 세부영역으로 들어갈수록 명쾌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고민이었다. 그에게 ‘닥치고 정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맞다. 스포츠는 합의된 룰에 따라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그래서 ‘승자는 있지만 패자는 없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황금알 깨질라
최근 체육진흥투표권사업이 차기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큰 파행을 겪고 있다. 사연이 워낙 구구하고, 심지어 정부기관인 조달청과 사법부의 판단이 정반대로 나오는 등 복잡다난하기만 하다.

약술하면 지난 5월 13일 치열한 경합 끝에 A업체가 조달청심사에서 1위, 즉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이 불쑥 ‘자금조달 계획과 위탁운영비 산정’에 문제가 있다며 우선협상자 지위박탈을 조달청에 주문했다.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 공개입찰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단이 조달청에 위탁한 일이었으니, 모양새가 우스웠다. 조달청의 설명이 있고, 이를 공단이 받아들이면서 첫 번째 혼선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런데 6월 26일 이번에는 간발의 차로 2위에 그친 B업체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민국(조달청)을 상대로 스포츠토토 입찰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사유는 공단이 조달청에 이의를 제기했던 것과 사실상 같았다. 업계에서는 이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예상했으나 7월 15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고유의 업무를 법원에 의해 부정당한 조달청이 이의제기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는 A업체가 보조참가자로 합류했다.

사정이 이러니 온갖 의혹과 음모론까지 퍼졌다. 공단이 특정업체를 봐준다느니, 최대 특수기간인 월드컵 때 사업인수를 진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느니, 심지어 정권실세가 개입했다느니 실체가 없는 애기들이 난무했다.

예상보다 깐깐한 '룰'
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관계자로부터 익명을 전제로 많은 얘기를 들었다.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확실한 것은 3조 원짜리 사업의 수탁운영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후보 업체들은 제안서에만 수 십억 원을 써가며 최선을 다했고, 공단과 조달청은 혹시라도 빈틈이 없을 정도로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제법 경쟁력이 높았던 C업체가 심사위원을 사전 접촉했다가 탈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2002년에는 공개입찰을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공단이 구설에 오르는 것 자체를 없애기 위해 아예 조달청에 모든 업무를 위임한 것, 조달청도 로또사업자 선정 때 워낙 말이 많았기에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는 점 등이 대한민국이 이제 ‘룰(공정성)’에 관한 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당사자들의 입장을 최종 정리하면 현재 가처분을 신청한 B업체 외에 입찰에 참가한 타업체를 포함한 모두가 입찰결과를 뒤집을 하자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단이 처음 A업체의 우선협상자 자격박탈을 조달청에 주문한 것도 사실 해프닝에 가깝다. 공단 스스로 해당 사유가 자격박탈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단 확실히 하기 위해 질의를 하고자 했는데, 공식질의를 하려면 조달청의 최종결정에 이의를 다는 방식밖에 없다고 해 ‘자격박탈’을 제목으로 단 것이다. 그래서 당시 공단의 공문 자체가 제목은 ‘자격박탈, 내용은 질의’ 식으로 엉성하게 돼 있다.

스포츠답지 않은 스포츠토토
어찌됐건 일은 참 우습게 됐다. 공정성을 위해 오랜 시간과 엄청난 비용, 그리고 국내 최고의 전문가와 국가기관까지 합류해 진행한 공개입찰은 의미가 퇴색됐다.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권이 걸리다 보니 투명성 자체에 문제가 있든, 아니면 절차상의 실수이든 입찰과 관련한 소송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러니 대한민국이 ‘소송공화국’으로 불리는 것이다. 하루에 접수되는 소송이 평균 3000건이 넘으니 우리 국민 8명 가운데 1명이 1년에 한 번 송사를 겪는 셈이다.

이번 스포츠토토 사업자 입찰과 관련해서도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사법부는 나름 소신을 갖고 판단한다. 그런데 가끔 법원이 계약을 잘 모르니 엉뚱한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있으면 우리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이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정부기관 및 전문가들이 만전을 기해 진행한 일의 경우 정말 문제가 있는지의 여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파행이 빚어지고 사회적 손실이 커진다.

사업자선정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매달 45억 원이라는 돈이 국민체육진흥을 위해 더 쓰일 수 있었는데, 관계기관들의 미숙한 일처리와 무소신으로 엉뚱한 결과를 낳은 현실이 안타깝다.

다시 스포츠로 돌아가자. '합의된 룰에 따라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고 결과에 승복한다.' 물론 때로는 편파판정 논란이나 오심도 발생한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같은 제3자가 경기결과를 뒤집지는 않는다. 그게 스포츠다.

이번 ‘스포츠’토토 사태와 관련해서는 편파판정, 아니 심지어 작은 오심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서 경기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우리네 문화가 영 ‘스포츠’답지 않아 마뜩잖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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