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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함께 듣는 축구 중계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오프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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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화 <오프사이드> 한 장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병사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촌철살인, 단편 영화만의 매력
머리가 좋은 천재들은 짧은 말로도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고 합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 간단한 말로도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얘기지요.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영화가 2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경우에는 3시간짜리도 있습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이 복잡해지면서 이제는 여러 편으로 나누어진 시리즈 영화도 많아지고 있지요. 그렇다고 해도 단 몇 분의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단편영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축구 영화는 이러한 단편 영화입니다. 상영시간이 단 5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단편 영화 <오프사이드(Offside)>입니다.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나라인 이란에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재밌습니다. 이란 영화에서는 축구가 아닌 여성 문제를 다루죠.

오프사이드 반칙은 영화감독들에게 참 많은 영감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 수비수보다 앞서 나가서 공을 받을 수 없는 오프사이드 규정. 이 규정은 마치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막는 악습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장벽이나 경계선을 떠올리게도 하지요. 이 영화도 그러한 장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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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오프사이드>를 만든 이스라엘의 영화 제작자인 줄리아노(Juliano Mer-Khamis). 안타깝게도 팔레스타인에서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병사들, 총부리를 겨누며 축구 중계를 듣다

장소는 사막 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어느 국경 지역입니다.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은 철조망을 돌며 경계를 섭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경계에는 관심이 없고 소형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월드컵 결승전이 중계되고 있거든요. 한창 중계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갑자기 철조망 너머에 적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과 대치중인 팔레스타인 병사 두 명이 나타난 것이지요. 당황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병사들은 황급히 서로에게 총을 겨눕니다. 그 와중에 라디오는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라디오는 계속해서 월드컵 결승전 실황을 중계합니다. 처음엔 잔뜩 긴장해서 서로를 겨누던 양측 병사들은 이윽고 눈은 상대를 향하면서도 축구 중계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며 나오지 않자 팔레스타인 병사들이 눈짓으로 얼른 라디오를 고쳐보라고 이스라엘 병사들을 떠 봅니다. 이스라엘 병사들이 발로 라디오를 툭 건드리자 다시 라디오는 나오고, 양 측의 병사들은 알듯 말듯 한 미소를 짓습니다.

마침내 경기가 끝나고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승리했다는 아나운서의 환호가 들립니다. 총을 겨누면서도 중계를 듣던 네 명의 병사들은 조금씩 미소를 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경기 결과에 흥분한 이스라엘 병사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러자 연쇄적으로 다들 총을 쏘고 결국 네 명 모두 총탄에 쓰러지죠.

비슷한 인간성을 가졌으면서도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상영 시간이 5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참으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는 병사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세계 많은 곳에서 군사적, 정치적으로 대치중인 나라와 민족을 상징합니다.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상대방을 죽여야 할 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전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책을 읽던 중 충격적인 구절을 읽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폭탄테러로 자식을 잃은 이스라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그 사람들이 이걸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기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근 아랍 국가를 향한 강경책을 지지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 이스라엘 아버지의 말을 듣다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 하네요.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이스라엘인들을 마냥 거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영화 제작자인 줄리아노(Juliano Mer-Khamis)는 팔레스타인 마을에 살면서 극장을 짓고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2011년 4월 안타깝게도 암살을 당했지요. 이스라엘인임에도 그를 존경하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의 관을 어깨에 메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이처럼 서로 극한대립만을 한다고 알려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축구’가 그 공통분모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 번 끔찍한 비극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세계 여론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테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워낙에 복잡하게 얽힌 문제라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가 난감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 <오프사이드>는 소박하면서도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이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아는 것에서부터 평화의 해결책이 나온다는 거죠. 두 나라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기원합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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