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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판 로마인 이야기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티포지>(하)

(상)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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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유벤투스의 팀 로고.

유벤투스 vs 파르마

제브로네(Zebrone)는 유벤투스의 극렬 팬입니다. 유벤투스가 피오렌티나에게 패배하자 화가 난 제브로네는 유벤투스의 홈구장인 델레 알피(Stadio delle Alpi)의 전광판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체포되죠. 유벤투스 팬들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제브로네가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재판정으로 몰려갑니다. 그리고 마치 축구장에 있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제브로네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판사는 제브로네에게 경기장 출입금지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제브로네는 그런 건 무시하고 파르마 행 기차를 탑니다. 경찰은 요주의 인물인 제브로네를 추격합니다. 경찰의 추격을 피해 경기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인근 주택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제브로네. 하지만 하필이면 그 건물은 파르마 울트라스의 아지트로군요. 과연 제브로네는 살아날 수 있을까요?

나폴리
게나로(Gennaro)는 나폴리의 빈민가에 사는 좀도둑입니다. 하지만 열렬한 나폴리의 서포터죠. 한때 나폴리에서 뛰었던 마라도나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기 자식 네 명의 이름을 각각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 ‘도나’라고 지을 정도입니다.

좀도둑질로 유치장에 갇힌 게나로. 하지만 유치장은 그에게 천국과도 같습니다. 바로 나폴리 경기 중계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축구의 인기가 높은 이탈리아에서는 세리에 A 중계를 보기 위해 비싼 유료 채널에 가입해야 합니다. 가난한 게나로는 당연히 그럴 돈이 없기에 공짜로 축구 중계를 들을 수 있는 유치장을 절대 빠져나가지 않으려 합니다. 경찰이 이제 그만 나가라고 해도 게나로는 억지를 부리죠.

어쨌든 출소한 게나로. 그는 친구와 함께 다시 도둑질을 시작합니다. 고급 저택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후 호기심에 TV를 틀어보니 나폴리 경기 중계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평소 돈이 없어 나폴리 경기를 못 보던 게나로는 도둑질 하던 것은 잊고 소파에 앉아 축구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 축구를 못 보던 빈민가의 친구들까지 소식을 듣고 모여듭니다. 저택 안은 순식간에 나폴리 서포터들이 들어찬 관중석이 됩니다. 과연 게나로는 도둑질에 성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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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의 표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두상.

로마인 이야기-과거, 티포지-현재
영화를 보다 보면 흔히 ‘오 솔레미오’로 대표되는 낙천적이고 시끌벅적한 이탈리아인들의 기질을 물씬 느끼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관총처럼 난사되는 이탈리아어는 좀 정신없긴 하지만요.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집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축구에 열중해 자기 본분을 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됩니다. 또 인생을 너무 축구에만 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죠. 물론 영화라서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요.

영화 속 비행기 승무원은 비행기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축구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면서도, 경기 스코어를 듣고 자기 팀이 이기고 있다며 흥분합니다. AC 밀란 팬의 택시를 탄 수녀님들은 밀란 경기의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나폴리 팬들이 고급 저택을 무단 점거하고 축구를 시청하자 인근 성당의 신부님도 유니폼을 입고 달려와 나폴리 팬들에게 성수를 뿌립니다.

얼핏 보면 흥분해 서로 다투기만 하고, 낙천성이 지나쳐 게으름으로 비쳐지는 것 같지만 이탈리아 인들은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로 불리는 세리에 A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세계를 지배한 로마 제국을 만들어 냈듯이 말이죠.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명저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 느낌이었습니다. 말 많고, 다투기 좋아하는 그들이 어떻게 로마를 만들어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패자마저도 동화시키는 개방성’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로마와 전쟁을 해서 패하더라도 로마인들은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패자들을 적극적으로 로마 사회에 동화시켰죠. 갈리아인도, 게르만인도, 삼니움 족도,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마저도. 그렇기에 로마 문화는 풍부해졌고, 다양성을 기초로 사회가 건강해졌다고 말합니다.

<티포지>에서도 그런 이탈리아의 개방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팀으로 나뉘어 서로 다투기만 하는 그들. 하지만 한 팀을 이루고 있는 축구팬들의 면면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내 팀’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와 파일럿 같은 전문가부터 택시 기사로 대표되는 노동자는 물론 수녀님과 심지어 좀도둑까지요.

나폴리 팬인 게나로가 도둑질을 하다가 축구를 보는 장면은 그래서 더 상징적입니다. 축구 중계 소리를 듣고 하나 둘 모인 이웃들. 빈민가의 아이들부터 성직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폴리’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 <티포지>를 보면서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함해서 최초의 세계 제국 로마를 건설했던 이탈리아 인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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