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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 시카고 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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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월드시리즈의 마지막 날이었다면...

[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1908년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과 1945년 마지막 월드시리즈 진출. 올해도 시카고 컵스 팬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됐다. 73승 89패로 5년 연속 5할 승률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2년 연속 지구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0년대 기록하고 있는 .427의 승률은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29위의 성적으로, 컵스 밑에는 휴스턴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올해는 ‘암흑기’라는 단어와 딱 들어맞았던 지난 수년과는 달리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드디어 잠재력을 꽃 피운 앤서니 리조를 필두로 타자 유망주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마운드에서는 제이크 아리에타와 카일 헨드릭스라는 보석을 발견해냈다. 이에 옙스타인은 시즌 종료와 동시에 내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비쳤다. 그리고 지난주 템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을 영입하는 것으로 스토브리그의 첫 발을 뗐다.

무궁무진한 가능성
컵스의 올 시즌 팀 타율은 .239로 내셔널리그 12위에 그쳤다. 경기 당 득점 역시 3.8점으로 같은 위치였다. 아직 컨텐더 팀으로 발돋움하기에는 분명 부족한 숫자들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요소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일단 앤서니 리조가 라인업의 중심에 섰다. 지난 시즌 초반 일찌감치 7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그는 올 시즌 팀이 원하던 모습에 완벽히 부응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2년간 정확도와 장타력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으나 올 시즌 커리어 하이인 32개의 홈런을 기록함과 동시에 .286의 타율을 기록하며 숙제의 한 페이지를 풀어냈다. 올 시즌 극심한 투고 타저 속에 내셔널리그에서 30홈런 고지를 밟은 선수는 리조를 포함해 단 세 명 뿐이었다. 리조는 출루율(.386)과 장타율(.527) 그리고 OPS(.913)에서도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을 작성해냈다. 지역 사회 봉사와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는 등 이미 경기장 안팎에서 팀의 리더로 자리 잡고 있는 리조의 내년 시즌 활약은 완성형 단계로 접어든 타선의 리빌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스탈린 카스트로도 지난해의 부진을 뒤로하고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해 데뷔 이후 가장 낮은 .245의 타율에 그쳤으며, 유격수 수비마저 흔들리며 실망스런 시즌을 보냈던 그는 올 시즌 .292의 타율과 14홈런 65타점으로 2년 만에 올스타전에 나서기도 했다. 실책 역시 지난 4년간 평균 개수인 26개보다 10개 이상 적은 15개로 줄이는 등 한층 농익은 활약을 펼쳤다. 팀 내에서 100타석 이상 들어선 17명의 타자 가운데 가장 높은 .286의 득점권 타율을 기록하며 올 시즌 처음 중용된 4번 타순에도 곧잘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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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푸이그? 호르헤 솔레르.


컵스는 지난 시즌 이후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유망주 TOP 100에 30개 팀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7명의 이름을 올렸다. 이 중 5명이 야수였으며, 그 가운데 호르헤 솔레르, 하비에르 바에즈 그리고 아리스멘디 알칸트라 3명이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 중 가장 돋보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솔레르였다. 쿠바 출신으로 지난 2012년 컵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 땅을 밟은 솔레르는 마이너리그 통산 .307의 타율을 기록하고 2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8월 말 데뷔 이후 첫 5경기에서 10개의 안타를 몰아치는 등 24경기에 출전해 타율 .292와 5홈런 20타점으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냈다. 파워만큼은 푸이그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며, 기대대로 성장한다면 빅리그에서 30홈런 이상도 가능할 전망이다.

바에즈와 알칸타라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바에즈는 2년 연속 팀 내 유망주 순위 1위에 올랐던 선수. 8월 초 콜로라도와의 데뷔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연장 11회 결승 솔로 홈런으로 때려내는 등 첫 3경기에서 3개의 홈런을 기록한 바에즈는 이후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169의 타율에 그쳤다. 특히 239타석에서 무려 95개의 삼진을 당하며 정확성에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드러냈다. 하지만 빠른 배트 스피드로 52경기에서 9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파워에서 가능성을 보인 점은 위안거리다. 메이저리그 연착륙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이너 시절부터 지적받아온 선구안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10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205의 타율과 93개의 삼진에서 알 수 있듯이 알칸타라 역시 바에즈와 비슷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하지만 수비진의 교통정리를 위해 본인의 주요 포지션인 2루나 유격수가 아닌 중견수로 주로 나섰음에도 수비에서는 이미 합격점을 받은 상황이다.

또한 현재 컵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마이너리그 유망주인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내년 시즌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컵스에 지명된 뒤 상위 싱글 A에서 시즌을 마감한 브라이언트는 올해 더블 A를 거쳐 트리플 A까지 오르는 고속 승격을 거듭하고 있다. 올 시즌 마이너리그 138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타율 .325와 43홈런 110타점으로, 더블 A(68경기, .355 22홈런 58타점)를 폭격한 데 이어 그 기세가 트리플 A(70경기, .295 21홈런 52타점)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컵스 입장에서는 카스트로외에 바에즈와 알칸타라 그리고 올 시즌 중반 오클랜드와의 트레이드로 데려온 에디슨 러셀의 포지션 중복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어떤 팀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라인업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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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아리에타.


강력한 1선발 부재, FA 큰 손 될까
사마자와 해멀을 오클랜드로 넘긴 가운데 컵스의 올해 최대 수확 중 하나는 선발진의 제이크 아리에타와 카일 헨드릭스의 발견이었다. 지난 시즌 중반 볼티모어에서 컵스로 둥지를 옮긴 아리에타는 올 시즌 25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승 5패 2.53이라는 생애 최고 성적을 만들어냈다. 비록 9이닝 당 3.91점의 빈약한 득점 지원 속에 10승에 그쳤으나, 세 차례의 6이닝 노히트 포함 마지막 19경기 중 17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꾸준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헨드릭스는 사마자와 해멀이 팀을 떠난 이후 로테이션에 합류한 선수. 애당초 크게 주목받는 유망주는 아니었으나 1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7승 2패 2.46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압도적인 구위는 아니나 몸 쪽 승부를 즐기는 과감함과 안정된 제구력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상대 타이밍을 빼앗는 두뇌 피칭에 능해 올 시즌 성적을 유지하기는 힘들지라도 크게 무너질 유형의 투수는 결코 아니라는 평가다.

이밖에 올 시즌 다소 부진했던 트래비스 우드는 다시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며, 츠요시 와다도 긴 공백을 딛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문제는 이들을 이끌어나갈 압도적인 1선발의 부재로, 옙스타인의 눈은 올 시즌 FA 시장에 나올 레스터와 슈어저를 향하고 있다.

옙스타인이 내년 시즌 컨텐더 팀으로서의 목표를 명확히 한 상황에서 대어급 FA 선발 투수를 노릴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특히 레스터는 보스턴으로의 복귀와 더불어 옙스타인과의 인연으로 컵스행 가능성도 상당히 높게 점쳐지고 있다. 현재 컵스 불펜은 페드로 스트롭이 볼티모어 시절의 폼을 회복하고, 헥터 론돈이라는 신예가 마무리 자리에 연착륙한 상황. 이에 당초 타선의 리빌딩에 보다 심혈을 기울인 컵스가 FA 투수의 영입으로 선발진 보강에 성공한다면 옙스타인의 포스트시즌 도전 선언은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조 매든
조 매든 감독의 역량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최약체 팀인 템파베이를 2006년부터 지휘한 매든 감독은 9년간 두 차례의 지구 우승 포함 총 네 차례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 놓았으며, 2008년 팀의 유일한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부족한 재정 탓에 선수 구성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특유의 형님 리더십과 수비 시프트의 신봉자라는 별명 답게 치밀한 전력 분석과 때로는 파격적인 작전으로 한 없이 약팀으로만 분류될 것 같았던 템파베이에게 강자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매든 감독이 컵스 감독에 더욱 적합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값에 결코 치우치지 않는 그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노장 대신 젊은 선수들을 투입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또한 성실함을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그의 성향은 컵스의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올 2월 60번째 생일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선수들이 함께 하고 싶은 감독 중에 하나로 손꼽 힐만큼 젊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에도 크게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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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스에게 2015시즌은 또 다른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기다림

‘유망주가 터져준다면’. 어쩌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부질 없는 가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 싸움일 뿐 이 같은 인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점점 강팀의 대열에 합류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올 시즌 월드시리즈에서 맞대결을 벌인 샌프란시스코와 캔자스시티 현재 전력의 중심은 팜 시스템에서 구축된 것들이다. 세인트루이스가 매년 가을만 되면 좀비 근성을 발휘하는 것도 단순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올 시즌 다저스를 바라보며 국내 팬들이 느꼈을 2%의 공허함 역시 같은 연유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이미 돈으로 승리를 사는 시대와는 작별을 고했다. 이제 탄탄한 팜 시스템과 효율적인 FA 투자의 조화로 승리 방정식의 무게 중심은 이동하고 있다.

물론 내년 시즌 당장 컵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는 견고한 전력의 팀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는 지구다. 또한 어린 선수들의 미천한 경험은 162경기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숨겨진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부질 없는 가정. 유망주들이 내년 시즌 곧바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여간 예측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컵스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팀이다. 암흑기를 견디는 동안 유망주들이 성장했고, 올 시즌 정규시즌의 마지막 날 컵스 로스터의 평균 나이는 27세 50일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젊은 팀이었다.

이제 컵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절한 투자와 기다림이다. 캔자스시티 팬들이 알렉스 고든, 에릭 호스머 그리고 마이크 무스타카스가 함께 포스트시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보기까지는 수년간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했다. 물론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그칠지 올 시즌 캔자스시티와 같은 돌풍으로 승화될지는 순전히 젊은 선수들과 옙스타인 그리고 매든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어줄 만한 희미한 불빛이 리글리 필드를 향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으로, 지금 지닌 자원을 잘 활용해 가까운 수 년내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컵스 팬들에게 내년 시즌은 100년이 넘는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의 여부가 달린 첫 번째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컵스 팬들은 이제 또 다른 기다림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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