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슈퍼땅콩’ 여오현, 변하는 강산에도 끄떡없다
이미지중앙

여오현(가운데)은 한국을 대표하는 리베로다. 서른여섯의 나이에도 올 시즌 디그 전체 3위, 리시브 전체 6위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10년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비껴갈 수 없는 변화를 건네주기 마련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수반되어야 하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는 세월을 이겨내는 것이 한층 힘들다.

여오현(36 현대캐피탈)은 강산이 변해가는 와중에도 혼자 그대로다. 2000년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입단한 이후 14년이 흘렀지만 겉모습이 변했을 뿐, 수비 능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배구를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지켜봐 온 팬이라면 ‘여오현’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은퇴 생각하던 여오현에게 찾아온 기회
“나를 배구계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오현이 직접 한 말이다. 여오현은 홍익대 2년 때까지 레프트로 뛰었다. 하지만 레프트로 뛰기에 175cm의 신장은 또래 선수들과 견줬을 때 너무 작은 키였다. 신체 조건이 개인 기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배구에서 여오현이 레프트 자리에서 살아남기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여오현이 선수 생활을 지속한 결정적 이유가 있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리베로 제도’를 1998년 도입한 것. 공격은 하지 않고 수비만 전문으로 하는 ‘리베로’를 둠으로써 경기의 박진감을 높였다. 상대적으로 단신인 선수들이 리베로로 전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포지션에서 수 년째 활약하고 있는 동갑내기 최부식(36 대한항공)도 레프트 출신이다.

여오현은 리베로 포지션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다는 말에 “리베로는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또 가장 체구가 작기 때문에 많이 부각되는 편이다”며 재치 있게 응수했다. 실제로 여오현의 디그(상대의 스파이크나 후위공격을 받아내는 리시브)와 서브 리시브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프로통산 4,365개의 디그 성공과 6,509개의 리시브 정확(2014년 12월 2일 기준) 수치만 봐도 그가 왜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리베로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리베로 제도의 도입은 배구계를 떠나려던 선수들에게 제2의 배구 인생을 안겨주었다.

리베로는 무엇인가?
리베로는 이탈리아어로 ‘자유’를 의미한다. 원래 축구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로 알고 있지만 배구에서 리베로가 갖는 의미는 크다. 날아오는 공을 리시브하고 디그하는 수비적인 역할만 할 수 있는 리베로가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것일까?

공격을 하지 못하는 리베로에게는 다른 ‘자유’가 있다. 배구는 원래 한 세트 당 최대 6번의 선수 교대를 규정으로 하지만 리베로만큼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교대를 할 수 있다. 이같이 선수교대 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배구에서 리베로는 ‘자유인’으로도 불린다(FIVB룰 제6장).

최고의 리베로가 되다
배구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는 득점이다. 결국 많은 득점을 올리는 선수가 빛이 날 수밖에 없다. 반면 득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크게 각광받지 못한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플레이를 주로 도맡는 포지션이 리베로다. 여오현은 서브리시브, 디그, 2단 연결과 같은 ‘리베로 플레이’에 능숙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여오현이 2012-2013시즌까지 몸 담았던 삼성화재는 프로출범 이후 V리그 7연패(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통합우승(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3연패 등 대기록을 남겼다. 사실 삼성화재는 걸출한 외국인 공격수 덕을 많이 봤다. 레안드로, 안젤코, 가빈에 이어 현재 레오에 이르기까지 리그를 주름잡은 공격수는 웬만하면 삼성화재 소속이었다.

여오현은 이들이 공격을 마음껏 할 수 있게끔 공을 정확히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 아무리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친다. 결국 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오현은 “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공격과 수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격수들에게 숟가락만 잘 얹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여오현은 국가대표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 2001년 창원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이후 12년간 부동의 리베로로 활약했다. 특히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따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여오현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2012년 이후 한국은 아직까지 대체자원을 정하지 못했다. 부용찬(25 LIG손해보험)과 정민수(23 우리카드)가 차세대 주자로 뽑히지만 여오현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다.

이미지중앙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이끈 여오현. 올 시즌 그가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서른여섯, 멈추지 않는다
삼성화재의 전성기를 책임진 여오현은 2013-2014시즌부터 현대캐피탈에서 뛰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의 영원한 맞수. 2012-2013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게 되어 적을 옮겼지만 여오현의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내건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다. 현대캐피탈에 합류한 첫 시즌 정규리그 2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지만 마지막 능선을 넘지 못하고 삼성화재에 우승을 내줬다. '우승 DNA'를 가지고 있는 여오현으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터.

여오현은 올 시즌 우승을 자신했다. 그는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 범실을 자주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면서 기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훈련을 통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올 시즌은 다를 것이다. 넘어져서라도 공을 하나 더 받아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비록 현재 팀이 5승7패로 5위에 처져있지만 아직 시즌이 많은 까닭에 챔프전에 진출해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주목 받기가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야 하는 포지션 특성상 리베로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어린 선수들은 리베로 포지션 맡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헌신적으로 몸을 날리며 공을 살려내는 리베로의 플레이에 관중들은 아낌없는 환호를 보낸다. 여오현은 “많은 후배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좀 더 열정을 갖고 헌신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배구는 팀워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종목이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은퇴 이후 한국배구의 발전을 위해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여오현은 오늘도 어김없이 땀을 흘린다.[헤럴드스포츠=유태원 기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