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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년의 침묵, 기지개를 켜는 시애틀 매리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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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을 노리는 시애틀 매리너스 (사진=OSEN)


2001년 시애틀에는 랜디 존슨도 켄 그리피 주니어도 없었다. FA가 된 알렉스 로드리게즈는 오프시즌 동안 천문학적인 액수를 받고 텍사스로 향했다. 하지만 그 해 시애틀은 116승이라는 단일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을 만들어냈다. 당시 불혹을 바라보던 제이미 모이어가 데뷔 첫 20승을 따냈으며, 존슨의 유산인 프레디 가르시아가 뒤를 받쳤다. 신인왕과 MVP 동시 수상에 성공한 이치로가 등장한 가운데,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샘솟는 에드가 마르티네즈, 존 올러루드, 브렛 분은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축했다. 2001년은 시애틀 팬들에게 최고의 한 해였다.

이후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애틀 팬들의 환호는 여전히 2001년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듬해부터 2년 연속 93승을 따냈으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시애틀은 2004년 최악의 단장으로 손꼽히는 빌 바바시의 등장과 주전들의 노쇠화가 본격화되며 63승에 그쳤고, 이는 시애틀 암흑기의 시작이 됐다. 지금의 쥬렌식 단장 부임 첫 해인 2009년, 시애틀은 85승을 올리며 반등을 기대케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젊은 타자 유망주들은 세이프코 필드를 넘지 못했고, 마운드에서는 펠릭스 에르난데스만이 고군분투 할 뿐이었다.

지난 2010년 오프시즌, 쥬렌식은 클리프 리와 숀 피긴스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피긴스의 영입은 재앙이 됐으며, 빈약한 타선에는 마운드를 지탱할 원동력이 없었다. 3개월 만에 리를 텍사스로 보내며 일찌감치 실패를 인정한 쥬렌식은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카노를 영입하는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올 시즌 정규시즌의 마지막 날. 세이프코 필드에는 포스트시즌에서나 볼 수 있는 손수건 응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날 시애틀 승리와 오클랜드의 패배가 교차될 경우 와일드카드 단판승부를 위한 타이브레이커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킹 펠릭스를 내세운 시애틀은 2회 손더스의 1타점 적시타와 4회 손더스, 주니노의 연속 적시타로 4점을 앞서나갔다. 하지만 시애틀보다 한 시간 먼저 경기를 시작한 오클랜드가 소니 그레이의 완봉 역투로 승리를 거두면서 13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향한 시애틀의 질주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마운드의 안정
2001년 이후 첫 가을 야구에는 실패했지만, 시애틀은 충분히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마운드의 안정은 시애틀이 지닌 가장 큰 강점. 에르난데스는 다시 한 번 사이영상급 시즌을 보냈으며, 시즌 막판 평균자책점이 폭등했지만 8월까지의 이와쿠마는 원투펀치로서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크리스 영은 샌디에이고 시절인 2006년 이후 8년 만의 두자리수 승수로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했으며, 엘리아스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향후 시애틀의 선발진이 더욱 큰 기대를 불러 모으는 것은 제임스 팩스턴과 타이후안 워커의 존재 때문. 개막 후 선발 2경기 만에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팩스턴은 8월초 마운드에 복귀해 6승 4패 3.05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선발로 나선 13경기 중 12경기에서 3실점 이하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으며, 8자책점을 기록한 토론토전 한 경기를 제외하면 그의 평균자책점은 2.14였다. 스프링캠프에서 어깨 염증이 발견된 워커는 6월말 메이저리그에 복귀했으나, 수정된 투구폼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9월 재 승격이후 5경기에서 1.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내년을 기대케 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고질병인 제구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내년 시즌 팩스턴과 워커가 자신들의 로테이션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시애틀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선발진을 구축할 수 있을 전망이다.

불펜의 안정화도 빼 놓을 수 없는 수확이다. 마무리로 영입한 로드니는 2012년의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초반 부진을 딛고 리그 세이브 부문 1위에 오르며 어느 정도 뒷문 단속에 성공한 모습이었다. 마무리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윌헬름슨과 파쿠아 그리고 메디나의 중간 연결 고리 3인방은 모두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3년 시애틀은 13번의 끝내기 패배와 15번의 연장전 패배를 당하는 등 불펜 평균자책점 29위에 머물렀던 팀. 하지만 올 시즌은 2.59의 평균자책점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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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유니폼을 입게 된 넬슨 크루즈 (사진=시애틀 매리너스 트위터)


넬슨 크루즈
아직 9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지만 카노의 첫 시즌은 대성공이었다. 규정 타석을 채운 시애틀 타자가 3할 타율로 시즌을 마감한 것은 2010년의 이치로 이후 카노가 처음으로, 세이프코필드로 이동하며 홈런 개수가 반 토막 났지만 이는 시애틀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타선 리빌딩의 중심인 카일 시거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진 모습. .268의 타율과 25홈런 96타점 모두는 본인의 통산 최고 기록이며,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 출전과 골드글러브 수상에도 성공했다. 시애틀은 내년부터 7년간 1억 달러의 연장 계약을 안겨주는 것으로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타선의 침묵은 여전히 시애틀이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다. 22위의 팀 평균 득점은 19위로 미약하게 오르는데 그쳤으며, 펜스를 앞당기며 효과를 본 홈런 숫자는 188개(2위)에서 136개(15위)로 크게 뒷걸음질 쳤다. 마이크 주니노는 정확성에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보였으며, 이제는 2루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더스틴 애클리는 올해도 터지지 않았다. 코리 하트의 영입은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시즌 중반 트레이도로 영입한 오스틴 잭슨은 실망 그 자체였다.

타선의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쥬렌식 단장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4년간 5700만 달러에 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왕 넬슨 크루즈를 영입한 것이다. 우타 빅뱃은 시애틀의 오랜 숙원으로, 시애틀 우타자가 25개의 홈런을 때려낸 것은 2009년의 호세 로페즈가 마지막이었다. 특히 올 시즌 시애틀 우타자들의 도합 OPS는 불과 .604로, 에 따르면 이는 1988년의 피츠버그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일각에서는 캠든야즈에서 뛴 크루즈가 세이프코 필드에서도 같은 파괴력을 선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나, 그는 올 시즌 홈(15개)보다 원정(25개)에서 더 많은 홈런을 기록했으며, OPS 역시 원정에서 훨씬 높았다.(홈 .783 / 원정 .930) 이에 카노-크루즈-시거의 좌-우-좌 클린업트리오는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한 근래 시애틀이 보유한 최고의 중심타선을 형성할 전망이다.

스모크를 웨이버로 풀고 단장과의 불화설 속에 토론토로 손더스를 보낸 시애틀은 타선 보강을 위해 추가 영입도 고려하고 있는 상황. 크루즈를 지명타자로 기용할 예정인 시애틀은 최근 맷 켐프의 영입을 위해 다저스와 논의를 주고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다저스가 팩스턴과 워커 중 한 명을 원하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양 팀간의 트레이드는 성사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상황이다. 트레이드 시장에 나와있는 저스틴 업튼은 FA를 1년 앞두고 있어 유망주를 내주고 데려오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이에 타겟은 FA 시장에 나와 있는 멜키 카브레라와 알렉스 리오스에게 향하고 있다. 시애틀은 내년 시즌 끝나는 중계권 계약으로 돈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는 상태다. 게다가 올 8월 연장 계약을 했지만 정확한 계약 기간을 공표하지 않았을 만큼 쥬렌식 단장의 입지도 확실치는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시애틀의 스토브리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유망주, 터져야 산다
팩스턴과 워커의 경험이 변수이긴 하나, 시애틀의 마운드는 내년 시즌 리그 정상권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타선으로 크루즈의 영입은 분명 팀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의 영입만으로 현재 팀이 짊어지고 있는 고민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잭슨이 디트로이트 시절의 폼을 되찾아 이치로 이후 명맥이 끊긴 리드오프 자리에 안착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관건은 시애틀이 수년째 기다리고 있는 유망주들의 활약 여부다. 주니노, 애클리, 밀러의 성장세는 아직까지 실망스러운 수준. 하지만 아직 20대 초,중반에 불과한 이들의 성장 한계점을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이들이 클린업트리오를 뒷받침하는 활약을 펼칠 수만 있다면, ‘외부 FA 영입과 팀 내 유망주의 조화’라는 최근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어느 팀에게나 그러하듯 시애틀의 다음 시즌도 'If'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수 년 사이 시애틀이 가장 안정적인 전력으로 내년 시즌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2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피츠버그, 올 시즌 29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나선 캔자스시티처럼, 내년 시즌 메이저리그 판도를 뒤흔들 신데렐라가 나타난다면 그 주인공은 시애틀이 될 것이다.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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