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1-0으로 앞선 연장후반 13분경, 30대 중반의 민머리 선수는 하프라인 아래부터 무서운 속도로 질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수는 자신보다 먼저 뛰기 시작한 상대선수를 가뿐히 제친다. 이번에는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풀백이라는 데니소프가 앞을 가로막지만 개의치 않다는 듯이 가랑이 사이로 공을 통과시킨 후 그저 다시 달린다.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우즈벡 골문 앞까지 다다랐고, 시드니행(4강)을 확정 짓는 골을 도왔다.
“압도적이에요. 압도적입니다.” -박문성 해설위원-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 -배성재 캐스터-
한국의 두 번째 골이 터진 뒤 SBS해설진의 반응이다. 이 두 마디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경기장을 찾은 2만 3,000명의 관중은 물론이고, TV앞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5,000만 국민 모두 환호했다.
■ 간과해서는 안 될 차두리의 또 다른 능력: 수비력
그러나 이제는 모두 과거의 얘기일 뿐이다. 오히려 수비력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후반전 들어서 한국은 득점을 하기위해 라인을 끌어올렸다.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 우리의 공격력이 업그레이드되는 동시에 상대방의 역습찬스도 덩달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좌우 풀백들의 오버래핑 이후 수비전환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 역할에서 차두리는 완벽했다. 딱 필요한 만큼의 오버래핑 시도를 했고, 역습에 대비한 수비에 철저했다. 지키는 수비와 달려드는 수비를 때에 따라서 적절히 사용했다. 윙어에게 가는 패스 길목을 사전에 차단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앙으로 들어오는 커버플레이도 능숙한 모습이었다. 36세(한국나이)의 나이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차두리였다.
■ 팬들은 차두리를 보내지 못하옵니다
사진=AFC
하지만 미룬 은퇴시기도 어느새 다가오고 있다. 두 경기만을 남겨둔 시점이다. 여전히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차두리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축구팬들은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각종 SNS와 포털 사이트 댓글을 통해 ‘차두리 옛날엔 너무 빨라서 공을 지나쳤는데 요즘 늙어서 공이랑 같이 달리니까 더 잘한다’, ‘차두리의 은퇴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차두리의 은퇴선언이 아쉬운 또 다른 이유는 그를 대체할 선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같은 포지션의 김창수는 런던 올림픽 때의 기량을 되찾는 듯 보였지만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30대에 접어든 나이도 후계자라고 하기엔 너무 많다. 아시안게임에서 맹활약한 임창우의 경우도 아직 A대표팀에서 경기를 해본 적이 없다.
분명히 차두리는 한국축구 최고의 ‘아이콘’ 박지성만큼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아니다. 한 팀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보다는 이 팀 저 팀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친근한 이미지와 더불어 나날이 성장해가는 모습으로 많은 인기를 얻으며 한국축구에 한 획을 그은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선수 본인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구팬들은 조금만이라도 더 그를 피치 위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헤럴드스포츠=임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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