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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 (14) 사람냄새 나는 센스장이 -개그맨 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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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던 개그맨 서경석 씨를 알게 된 지는 15년 정도 된 것 같다. 골프방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고, 명문대 출신임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겸손한 성품에 반하여 함께 레슨 DVD까지 낼 정도로 가까워졌다.

서경석의 골프와 관련해 깜짝 놀란 것은 바로 ‘센스’였다. 일본에서 레슨 프로그램을 촬영하는데 서경석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레슨의 핵심을 그 자리에서 다 받아들였다. 워낙 똑똑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전에도 수많은 브레인들을 만나봤지만 서경석은 그들과 확실히 달랐다. 중요한 것은 이해력 말고도 센스를 타고났다는 점이다.

한 번은 필드레슨 도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1, 2번 홀을 지나 파5홀인 3번홀에 도착했는데 앞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프로님, 이렇게 앞바람이 세게 불 때는 낮은 탄도의 드라이버샷을 쳐야 된다고 하셨죠? 어떻게 하면 쉽게 칠 수 있을까요?”

라운드 도중인 까닭에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어드레스 때 볼 위치를 중앙에 놓으세요. 머리를 볼보다 10cm 정도 앞에 놓는 느낌이죠. 대신 스탠스를 살짝 왼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백스윙 가파르게 들어서 그냥 치면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필자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이어 티박스로 들어선 서경석도 필자가 가르쳐 준 그대로, 조금 전 필자의 스윙과 같은 모습으로 호쾌한 샷을 구사했다. 낮은 탄도의 샷은 기술적으로 아마추어들이 치기 어렵다. 이걸 한 번에 원 샷으로 해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서경석 스스로도 놀라 자지러졌다.

퍼트도 그렇다. 당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오르막 후 내리막 경사로 이어지는 롱 퍼팅이었다. 이런 퍼팅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보면 경사가 보이죠. 프로선수들은 한 곳을 보고 치고 거기부터는 경사를 타고 내려가도록 만듭니다”라고 설명한 후 그 ‘한 곳’에 티를 꽂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서경석은 필자가 꽂은 티를 살짝 스치면서 거기서부터 힘을 죽여 경사를 타고 홀에 붙이는 명품 퍼팅을 선보였다. ‘아! 이 친구가 골프를 제대로 했으면 프로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서경석은 정말 ‘잘 배우는 아마추어 골퍼’다. 아무리 가르쳐도 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운동 감각이 둔한 것이다. 서경석은 필자가 가르친 아마추어 중 가장 센스가 좋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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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왼쪽) 씨와의 즐거운 라운드 도중 잠깐 한 컷. 오른쪽이 필자.


개그맨들이 골프를 잘 치는 이유

앞선 칼럼에서 밝혔듯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 골프를 그르치는 일이 많다. 머리가 좋은 것이 골프에서 중요한 이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따져 보니 서경석과 같은 개그맨들은 대체로 골프를 잘 친다. 필자가 레슨 방송을 하면서 가수, 연기자 등 수많은 연예인들을 만났는데 확실히 개그맨들의 골프실력이 가장 좋았다. 실제로 이름 석 자를 말하지 않아도 골프 고수인 개그맨들은 즐비하다.

골프 교습가의 입장에서 그 이유는 두 가지인 듯 싶다. 개그맨들은 직업상 남의 흉내를 잘 낸다. 이게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창의적이다. 남을 웃길 수 있는 탁월한 센스가 있는 것이다.

골프는 리듬의 운동이다. 몸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백스윙할 때 몸의 중심이 우측 발로 왔다가, 다운스윙 때 좌측 발로 이동한다. 이게 리드미컬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거리가 나지 않고, 정확한 임팩트도 어려워진다.

당연히 이 리듬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 대목에서 흉내와 센스가 중요하다. 센스가 떨어진다고 해서 골프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발전속도가 느리다. 즉 센스 때문에 골프기술의 발전 속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남을 흉내 내는 것에서도 개그맨들은 유리하다. 개그연기에서 흉내가 기본이 되는 경우가 많고, 몸도 많이 쓴다.

여기서 오늘의 레슨 포인트가 나온다. 골프훈련은 3가지 종류가 있다. 연습장이나 필드에서 채를 잡고 하는 트레이닝은 첫 번째다. 그리고 영상(사진)이나 글을 보면서 올바른 스윙 폼을 흉내내는 것이 두 번째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예컨대 내일 남서울CC를 간다고 하면 주요 홀에서 티샷을 어디로 보내고, 세컨드 샷은 어떻게 치고 하는 식으로 혼자 ‘상상 라운드’를 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연습장, 두 번째는 사무실이나 집, 그리고 세 번째는 앉거나 누워서 어디서든 가능하다. 골프 연습은 채를 잡고 공만 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골프스윙을 교정하는 데는 두 번째 훈련법이 가장 좋다. 채 없이 몸으로 흉내를 잘 내면 느낌이 쉽게 온다.

달인의 골프정복기

이런 까닭에 서경석과 같은 개그맨들이 골프를 잘 치는 것이다. ‘달인’으로 유명하고, 최근에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병만도 좋은 예이다.

함께 라운드를 한 적이 있는데 그가 골프를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됐다고 했다. 그런데 공을 놀랄 만큼 잘 쳤다. 쳤다 하면 레귤러 온이었다. 퍼트가 안 돼서 그렇지 거의 노핸디 수준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골프를 잘 칠 수 있습니까?”
“제가 달인 아닙니까? 남들이 시작한 것을 다 아는데 골프는 못하면 어떡합니까? 죽도록 연습했습니다. 24시간 공을 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체형이 비슷한 프로들의 폼을 집중적으로 흉내 냈습니다. 그러자 폼도 좋다는 얘기를 듣고, 잘 치게 됐죠.”

빙고! 센스가 있고, 올바른 방법(흉내)으로 열심히 하니 골프가 안 될 리 없다. 참고로 김병만과 서경석은 스크린골프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냄새 나는 센스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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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마니아인 서경석은 SBS골프채널의 <환상의 콤비>에서 사회를 맡았다. 맨 오른쪽이 서경석. 사진=SBS골프


다시 서경석 얘기로 돌아가자. 서로 바빠서 한 동안 보지 못 하다가 1년 전 가평베네스트골프장에서 한 번 라운드를 가졌다. <진짜 사나이>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골프 칠 여유가 없어서 거의 채를 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센스가 워낙 좋은 까닭에 몇 가지 포인트를 알려주니 후반에 가서는 연달아 버디도 기록하는 등 금세 좋아졌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서경석의 변하지 않는 겸손한 성품이었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신인시절이었다. 나이도 어렸고 방송 경험도 그리 많지 않았을 때였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그 후 2, 3년에 한 번 꼴로 만났고 최근 15년이 지나 만났을 때도 그의 겸손한 성품은 여전했다. 오히려 갈수록 더 겸손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특유의 서글서글함으로 필자 쪽에서 모시고 간 동반자와도 금세 친해져 즐거운 라운드를 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그에게는 누구라도 동반 라운드를 권하고 싶은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서경석과 같은 ‘스펀지 스타일’은 참 즐거운 제자다. 여기에 유머감각까지 탁월하니 더욱 그렇다.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와 라운드를 하면 언제 웃음이 터질지 모른다. 그때 그때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그와 처음 레슨 방송을 할 때 나인 홀을 함께 돌았는데 첫 홀이 기억에 남는다. 서경석은 적당히 티샷을 하고, 세컨드샷에서 그린을 놓쳤다. 그런데 어프로치가 쑥 들어갔다. 그러자 바로 90도로 큰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로님, 더 이상 배울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집에 가겠습니다.”

즐거우려고 치는 골프를 불편한 사람과 함께 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처음 본 사람과도 금방 융화할 수 있는 서글서글함에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람, 게다가 센스까지 넘쳐 중간중간 멋진 샷을 보여주는 사람, 서경석과 같은 사람은 제법 괜찮은 골퍼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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