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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수가 된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 이준석의 킥 더 무비<그들만의 월드컵>

롱기스트 야드, 그들만의 월드컵

원래 이 영화는 1974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식축구 영화 <롱기스트 야드(the longest yard)>를 2001년에 축구를 소재로 하여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2005년 미국에서도 유명한 아담 샌들러(Adam Sandler)를 주연으로 내세워 다시 리메이크를 했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에 교도소 월드컵이라는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영화 간의 사촌 관계를 알고 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범죄를 저질러 자유를 제한당한 재소자들이 자유를 상징하는 스포츠를 한다는 설정은 꽤나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전직 스타 선수가 교도소에 들어가 교도관(속칭 ‘간수’라고 불리는)들과 시합을 벌인다는 설정도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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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것들을 내팽개친 축구 스타


영화는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전 주장이었던 대니 미헌이 음주 운전과 폭행으로 감옥에 가면서 시작됩니다. 사실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축구선수였지요. 하지만 잉글랜드와 독일 간의 대표팀 경기 당시 승부조작을 하면서 축구계에서 퇴출된 신세입니다. 방황하던 그가 잘못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다니! 설상가상으로 교도소의 죄수들은 그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그를 따돌리기 시작합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누군가 대니에게 말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야. 그런데 너는 우리가 동경하는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그걸 내팽개쳐 버렸어.”

이렇게 대니가 수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다른 음모가 진행됩니다. 교도소의 총책임자인 주지사가 대니에게 축구 감독직을 제안한 것이지요. 축구광이자 스포츠 도박에 심취한 주지사는 교도관들로 구성된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팀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주지사는 대니를 감독에 앉혀 좋은 성적을 내려고 한 것이지요.

하지만 죄수에게 축구 지도를 받을 수 없다며 교도관들은 반발합니다. 결국 대니는 교도관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재소자와 교도관 팀 사이의 축구 경기를 제안하게 됩니다. 재소자들을 이끌게 되는 대니. 그는 과연 교도관과의 축구 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자유’를 상징하며 사회갈등을 해소시키는 축구의 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마라도나에 열광한 것은 군사 독재에 시달리던 시절, 마라도나가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그라운드를 휘젓는 마라도나 개인의 모습은 자유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더 크게는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삭막한 현실에서 도피해 상대적으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스포츠의 속성을 조금 극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생리적 욕구를 제외하고는 어떤 행동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교도소. 그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수감자들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는 축구 시합입니다. 경기 전에 대니가 교도소장에게 “필드에서의 일은 필드에서 끝내는 거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지요.

사회와 교도소를 비교하는 건 좀 무리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에도 다양한 계층이 서로 갈등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에 정치적, 경제적 힘의 논리가 작용하곤 하지요.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에 있어서 만큼은 어느 정도의 공정성을 보장받으며 경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자유’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물론 스포츠에도 어느 정도 힘의 논리가 통하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경기가 진행 중일 때 그런 일들이 세상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긴 힘들지 않을까요?).

영화 속 축구 경기에는 재미있는 광경이 관찰됩니다. 평소에 서로 사이가 안 좋던 교도관과 재소자들은 경기 중에 심판이 보지 않을 때를 틈타 상대팀 선수들을 마구 가격하고 폭행합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이후에는 “좋은 게임이었다”고 말하며 뒤끝 없이 헤어지지요.

예전에 FIFA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후보에 오른 이유가 재미있었죠. ‘축구는 사이가 안 좋은 나라 간의 국민감정을 해소시켜 더 큰 무력 충돌을 방지한 공로가 있다.’

우리가 한일전에 열광하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독일과의 경기에 열광하며,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과의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즉, 축구는 나라와 나라 간에, 혹은 나라 안에서도 여러 계층 간에 존재하는 악감정을 평화롭게 발산시키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지요.

대표팀 경기 전에 군악대가 양국의 국가를 연주하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전쟁 대신 축구로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메시지 말이죠. FIFA가 ‘세계 평화’를 외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지요.

이처럼 축구는 단순한 운동 경기를 넘어서 오늘날 사회에서 여러 순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기능이 정도를 넘어서 경기장 폭력으로 번져서는 안 되겠지만요. 적절히 통제된다면 축구는 사회적 갈등의 배출구이자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그들만의 월드컵>에서는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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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배우 비니 존스(좌)와 그의 부인.

덧붙여: 이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비니 존스(Vinnie Johns)는 실제로 1999년까지 셰필드 유나이티드(Sheffield United F.C.)와 첼시(Chelsea F.C.)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어쩐지 경기 장면에서 볼을 차는 폼이 남다르다고 했어요. 게다가 비니 존스는 유명한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과 함께 유명한 축구 고전 영화인 <승리의 탈출(Victory)>의 리메이크작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승리의 탈출>은 1981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실베스타 스텔론과 펠레가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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