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좀 생뚱맞지만 스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많은 골퍼들이 겨울에는 스키장을 찾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골프장과 스키장을 같이 하는 리조트가 많지 않은가?

스키장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이 아마도 리프트를 탈 때일 것이다. 눈발이 흩날리는 리프트에 연인 혹은 가족과 같이 앉아 있는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 최근 들어 리프트의 역주행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고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고공에서 뒤로 리프트가 돌진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실 스키장만큼은 아니지만, 골프장에서도 역주행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골프 대회 중 일부 갤러리들이 선수들의 동선과 반대로 움직여서 플레이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포츠 시설은 물론 스포츠 규칙에서도 일정한 방향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부분의 경주 종목들은 트랙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다. 스키 활강에서도 정해진 깃대를 벗어나면 실격이나 감점 처리를 받는다. 축구에서 부상으로 경기를 중단시킨 선수는 일단 그라운드 밖으로 벗어난 후에 심판의 허락을 받고 들어와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몸의 성기에도 이런 방향성을 상실해서 병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고환 혈관에 생기는 '정계 정맥류'라는 병이다.

정계 정맥류는 특히 남성 불임 환자들에서 문제가 되곤 한다. 고환 주변의 정맥 혈관들이 팽창하는 병인데, 이로 인해 뜨거운 혈액이 고환 주변의 온도를 높이게 된다. 고환이 몸 밖으로 돌출된 이유가 사실은 원활한 정자 생산을 위해서이다. 체온보다 낮은 온도가 정자 생성에 최적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환 주변의 혈관이 팽창하게 되면 정자 생성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불임의 한 원인이 된다.

그런데 고환의 혈관이 팽창하게 된 이유가 바로 혈액의 역주행 때문이다. 원래 고환의 정맥혈은 고환에서 몸 안으로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있다. 혈압이 피를 밀어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펌프인 심장에서 멀다 보니 그 압력이 높지가 않다. 그래서 정맥 내에는 혈관의 역주행을 막기 위한 밸브가 발달해 있다. 스포츠에서 심판이 선수들의 역주행을 막고, 골프 대회에서 운영 요원들이 갤러리들의 흐름을 통제하듯이, 정맥의 밸브는 중력 때문에 자꾸 역주행하려는 혈액을 차단해준다.

이 정맥 밸브에 문제가 생기면, 위에서는 올라가지 못하는 혈액이 쌓이고 아래에서는 올라오는 피가 누적되어서 결국 혈관이 팽창하게 된다. 이것이 정계정맥류이다.

정계정맥류가 일으키는 문제는 불임뿐만이 아니다. 가끔 목욕탕에 가 보면, 고환 주변에 마치 담쟁이 덩굴이나 벌레 덩어리가 뭉친 것처럼 혈관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사람들을 보곤 한다. 이것 역시 정계정맥류가 원인이다. 즉 미용적인 문제도 일으키게 된다. 또한 만성적인 고환과 사타구니의 통증도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불임, 미용, 통증의 문제가 심할 경우 수술을 고려하게 된다.

정계 정맥류는 수술적 치료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미세 수술을 통해 커진 정맥 혈관들을 묶고 자르는 수술을 하는 것이다.

스포츠든 인체든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규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방향성'이다. 몸의 방향성을 상실하는 것이 결국 병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스포츠 팬이나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준석(비뇨기과 전문의)

*'글쓰는 의사'로 알려진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자,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다수의 스포츠 관련 단행본을 저술했는데 이중 《킥 더 무비》는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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