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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칸 반도의 축구 전쟁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몬테비디오, 갓 블레스 유>

1930년, 제 1회 월드컵 출전권을 사수하라!

이번 영화는 세르비아에서 만든<몬테비디오: 갓 블레스 유(Montevideo: God bless you)>입니다.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의 수도인데 왜 세르비아 영화의 제목이냐고 궁금해 하는 분도 있겠네요. 맞습니다. 몬테비데오는 우루과이의 수도이며, 역사적인 첫 번째 월드컵이 열렸던 도시이지요.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 이 위대한 대회는 우루과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루과이가 배경이 아닙니다. 바로 역사적인 1회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한 세르비아 축구선수들의 이야기입니다. 배경은 당연히 세르비아, 그것도 수도인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입니다.

우리가 흔히 축구하면 떠오르는 나라들은 어떤 나라일까요? 종주국 잉글랜드, 아트사커 프랑스, 전차군단 독일, 삼바축구 브라질, 마라도나와 메시의 아르헨티나 등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세르비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 축구는 꾸준한 성적을 보여 준 강팀입니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이하 유고) 대표팀으로 출전하였습니다. 이 기록까지 모두 더한다면 세르비아 대표팀의 성적은 가공할 정도입니다. 우루과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4위를 기록하였고, 16강 1회, 8강 3회를 기록한 강팀이지요. 또한 유럽 선수권에서는 두 번이나 준우승(1960년, 1976년)을 차지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직적이고 터프한 동구권 축구의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르비아 축구는 세계 축구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팀입니다. 그런 세르비아 대표팀의 초창기 모습이 이 영화에서는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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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전쟁


본격적으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말씀드리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세르비아는 1992년 전까지만 해도 유고 연방에 소속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왜 분리가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슬프고 참혹한 전쟁과 민족 갈등의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르비아가 속해 있는 발칸 반도를 ‘화약고’라고 부르곤 합니다. 여러 민족과 여러 종교가 얽혀 있는데다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해서 언제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지요. 원래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유고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이루어진 왕국이었습니다.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이지요. 그러나 이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의 침공으로 유고 왕국은 사라졌죠. 전쟁 후에는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까지 포함하여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공산주의 유고 연방이 세워졌습니다. 공산주의의 철저한 통제 하에 통합되었지만 정작 인종과 종교가 모두 제각각이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죠.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유고를 이루던 가장 큰 나라였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서로 다른 민족으로 예전부터 뿌리 깊은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힘으로 나라가 유지되다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연방 이탈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벌어집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근 10년간 이어진 참혹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종교와 민족의 이름으로 인종 청소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이 전쟁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하 유고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의 결과로 결국 구 유고 연방을 이루고 있던 나라들은 수많은 피 값을 치르고 독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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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 전쟁 당시 축구 훌리건들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은 사이먼 쿠퍼(Simon Kupfer)의 『축구 전쟁의 역사』나 『축구는 세계를 어떻게 지배했는가?』에도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정치 지도자인 프라뇨 투지만(Franjo Tuđman)은 크로아티아 수도의 축구팀인 디나모 자그레브(NK Dinamo Zagreb)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반대편인 세르비아에서는 전쟁 중에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하며 악명을 떨친 아르칸(Arkan)이 역시 세르비아의 수도 축구팀인 레드스타 베오그라드(Фудбалски клуб Црвена звезда)의 서포터들을 민병대로 모집하여 전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참혹한 유고 전쟁에 축구 클럽과 서포터들이 깊이 관여했다는 점은 훌리건들의 폭력이 조직화되고 정치색을 띄게 될 경우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로는 이들 나라와 민족에게 있어 축구가 꽤나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반증하지요. 이 영화 <몬테비데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고 연방의 복잡한 역사와 함께, 축구가 그들에게 갖는 민족적 의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르비아인들, 유고슬라비아의 이름으로 초대 월드컵에 나가다

영화는 1920년대 후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무대로 합니다. 빈민가에서는 아이들이 구두를 닦고, 젊은이들은 공장에 다닙니다. 부유층들은 화려한 도심에서 파티를 즐깁니다. 주인공인 티르케는 동네에서 공을 차다가 BSC(Beograd Sports Club) 관계자의 눈에 듭니다. 티르케는 그 곳에서 유명한 축구선수 모샤를 만납니다. 둘은 여자 문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경기장에서는 찰떡궁합을 과시하죠.

한편, 결성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조직이었던 FIFA는 전 세계 축구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만 해도 지역 예선 같은 것도 없이 참가를 원하는 팀은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생각해 보세요. 지금은 월드컵에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나라들이 170개가 넘는데 월드컵이 처음 생겼던 당시만 해도 신청서만 접수하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다니요!

하지만 유고 정부에서는 월드컵 대표팀을 위한 예산 지원을 거부합니다. 당시만 해도 유고 왕국이었는데요, 유고의 국왕은 세르비아 선수들로만 구성된 대표팀에 불만을 가집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한 나라로 지배하고 싶은 유고의 국왕은 정치적인 이유로 세르비아인들로만 구성된 대표팀을 거부한 거죠. 결국 인접국 불가리아가 월드컵에 나가게 되고, 유고 선수들은 불가리아 선수들과 연습 시합이나 하는 처지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가리아와의 연습 시합에서 유고 선수들은 뛰어난 조직력을 발휘해 그들을 대파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
이 월드컵 출전을 위한 기부금을 내기 시작합니다. 정치권도 마음을 돌려 그들의 월드컵 행을 승인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유고 대표팀이 출전했던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유고는 4위를 기록했습니다.

지금도 아물지 않은 발칸 반도의 민족 갈등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지금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입니다. 엄청난 피를 흘린 결과지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아직도 두 나라 간의 갈등이 아물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왕을 설득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선수들을 초청하지만 그들은 오지 않습니다. 세르비아 선수들로만 구성된 대표팀 선수들은 불가리아를 이기고 세르비아의 국가를 부릅니다. 일반 서민들 역시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세 나라가 억지로 통합되었던 당시,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세르비아냐 유고냐의 문제로 다툽니다. 경기장에서는 억지 통합을 추진하는 국왕을 비난하고 세르비아 독립을 외치던 관중들이 경찰에게 연행됩니다.

이런 장면들은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 그것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에는 크로아티아에 대한 은근한 불만과 세르비아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간의 갈등이 미봉합된 채로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세르비아에서 제작되었기에 세르비아에 좀 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축구팬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 세계적인 강팀으로 평가받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축구팀의 뿌리에는 과거 유고 대표팀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유고를 구성하던 각 민족 간의 경쟁심이 오히려 축구 기량 향상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거사 갈등으로 유발된 치열한 한일전 축구가 양국의 축구 실력 향상에 기여했듯이 말이지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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