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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시집갈 생각은 안 하고 축구를 하니? - 이준석의 킥 더 무비<슈팅 라이크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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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까지


이 영화는 인도가 아닌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국에 살고 있는 인도인들의 이야기이지요. 과거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전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 그 영국의 수도인 런던은 뉴욕 뺨치는 인종의 집합소입니다. 영화에는 세 종류의 인종이 나옵니다. 런던에서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해 사는 인도인들. 그리고 전형적인 영국 백인 중산층 가정, 그리고 영국과는 껄끄러운 관계에 놓여있는 아일랜드인 코치입니다.

가정적이고 순종적인 요조숙녀를 원하는 인도 전통의 문화 속에서 주인공인 제스는 갈등합니다. 사실 그녀의 우상은 잉글랜드의 축구 스타 베컴이고, 스스로도 무척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합니다. 공원에서 남자들과 축구를 하던 도중,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영국인 소녀 줄리엣의 눈에 띈 제스는 여자 축구팀에 입단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잘생긴 아일랜드인 남자 코치 조를 만나게 되지요. 이들은 같이 노력하며 여자 축구 리그에서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조를 사이에 두고 제스와 줄리엣은 삼각관계에 빠지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제스의 부모님은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지요. 인도인 이웃들도 백인과 어울리는 제스를 못마땅해 합니다. 애정의 삼각관계와 여성에 대한 편견, 인종·문화적 차이까지 뛰어 넘어야 하는 제스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계속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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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화와 보편적 가치의 공존을 꿈꾸다

인도인, 아일랜드인과 영국인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국제화 시대. 하지만 ‘자유, 평등’으로 대표되는 보편적인 가치는 여전히 각 민족의 문화와 충돌하고 있지요.

물론 그 나라의 전통 문화는 어느 정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개인들이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전통이라는 것도 결국 그 민족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바뀔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잣대로 각 나라의 고유문화를 평가 절하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문화를 고수하면서 쓸데없는 불행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각국의 전통문화와 개인의 인권이라는 가치는 충돌하고 있습니다. 비록 축구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런 충돌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지요. 여성들이 다른 남성들에게 맨다리를 내보이며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인도의 전통 문화.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인도인에 대한 인종 차별. 게다가 여성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다가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결혼하는 게 최고라는 성적 편견이 이 영화에는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제스는 화상의 흉터가 남아 있는 다리를 그대로 내보이며 당당하게 여성 축구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멋진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리지요. 프리킥 담을 쌓은 상대방 선수들이 그녀에게 잔소리를 하는 집안 식구들로 바뀌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졌지만 발리우드 영화 식으로 흥겨운 음악이 흐르며 결승골을 넣은 제스가 인도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고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은 꽤나 상징적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꿈, 남녀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인도 전통의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는 세계화, 그리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전통 문화를 보여주며 가치들이 조금씩만 서로를 고려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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