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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담장의 편파야구 V3는 백신이 아닙니다] 팬심으로부터의 '자가 격리'
18일 경기 결과: 롯데 자이언츠 0-6 넥센 히어로즈

지난 5월 27일 문학 SK전 이후 시즌 두 번째 영봉패였다. 무기력한 공격과 불펜투수의 난조 탓에 속수무책으로 경기를 내줬다. 그리고 18일, 롯데 팬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단순히 18일 경기의 패배 때문이 아니다.

"하도 뭐라고 해서 난 내일 모레 시즌이 끝나는 줄 알았다."

18일 목동 넥센전을 앞둔 이종운 감독이 던진 이야기다. 이 감독의 말이 향한 대상, 즉 '하도 뭐라고 한 사람'은 바로 롯데 팬들이다. 아직 절반도 채 마치지 않은 시즌, 반등의 여지가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그러나 방식이 틀렸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이 감독의 의도야 어찌 됐든, 팬들 입장에서는 '제발 비판 좀 그만해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리고 이종운 감독의 발언이 전해진 후 롯데 자이언츠 공식 SNS 계정은 그야말로 마비상태다. 롯데 팬들은 댓글과 메시지 등 사용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이 발언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구단 홈페이지 내 게시판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이종운 감독의 발언에 대해 경솔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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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열정적인 롯데 팬들. 사진은 만원관중이 모인 사직구장 모습.


롯데 팬들의 열정이야 익히 유명하다. 성적이 좋을 때 롯데 감독은 부산 시내에서 영웅이 된다. 반대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택시를 타도 야구 얘기에 시달려야 한다. 롯데 감독을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는 단어 그대로 '직업'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과 언사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이번 시즌 초, 이종운 감독은 댓글 등 팬들의 여론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자신의 야구철학을 굳건히 다진 채 흔들림 없이 팀을 운영하는 것은 감독의 덕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팬의 이야기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양승호 롯데 전 감독은 '소통의 대명사'로 불렸다. 양 전 감독은 취임 첫해였던 2011시즌 좌익수 홍성흔-유격수 황재균-3루수 전준우 카드를 꺼냈다. 결과적으로 세 명 모두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고 이들은 수비와 공격 모두 부진했다. 팬들의 비판이 들끓는 건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4월이 끝날 즈음, 양 전 감독은 자신의 카드를 포기한다. 홍성흔은 내내 지명타자로 뛰었으며, 전준우는 외야로, 황재균은 3루에 향했다. 그리고 반등에 성공한 롯데는 결국 그해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팬들의 근거 있는 비판

지금 롯데는 8위로 떨어졌다. 6월 들어 3승에 그치고 있다. 그 세 번의 승리를 얻기 위해 치른 패배만 11개다. 승률 0.214로 월간 순위 최하위다. 월간 순위 공동 8위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승률 0.429라는 것을 감안하면 격차가 크다. 이러한 부진에는 5월 내내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팀 타선의 침묵이 한몫한다. 롯데의 6월 팀 OPS는 0.689로 리그 꼴찌다. 흔히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침체를 겪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긴다.

그렇다고 롯데의 월간 승률 꼴찌를 단순히 타선 탓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종운 감독의 순리에 어긋나는 선발로테이션 운영 또한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지난 주 kt 위즈와의 시리즈에서 선발투수 조쉬 린드블럼과 브룩스 레일리를 당겨썼다. 그리고 이 둘은 여지없이 부진했고 팀은 패했다. 대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 1군 엔트리에는 선발 자원 이상화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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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이상화. 이종운 감독의 과한 배려로 팬들 사이 '도련님'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6월 2일 포항 삼성전에 선발등판했던 이상화는 12일 문학 SK 전에 선발등판해 패전투수가 됐다. 2일 경기에서는 4⅓이닝 6실점을 기록하며 92구를 던졌다. 그리고 10일을 쉰 12일 경기에서 4이닝 4실점에 88구를 던졌다. 이상화는 두 번의 등판 사이 10일의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출장도 없이 1군에 남아 있었다. 만일 이상화의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로테이션 한 번 거르는 게 목적이었다면 1군 명단에서 제외하고 다른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는 NC나 KIA 타이거즈가 노장투수 손민한과 서재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쓰는 전략 중 하나다. 특히나 1할대 초반의 낮은 대타 타율에 허덕이는 롯데라면, 구원진의 난조로 경기 막판까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롯데라면 엔트리 한 자리의 가치는 더욱 높다.

이종운 감독은 이에 대해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음 날 선발투수를 예고할 때마다 이상화는 호명되지 않았고 팬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이종운 감독에게는 팬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팬이 있기에 존재하는 프로야구

프로야구 인기의 가장 큰 힘은 팬이다. '팬들의 성원'이라는 강력한 동력이 없었다면, 야구가 이처럼 30년 넘게 범국민적 사랑을 받기란 쉽지 않았을 터. 자신의 여가 비용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해 야구장을 찾는 팬들은 팀의 '주인'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간 팬을 소홀히 대한다고 평가받던 롯데 프런트는 지난 겨울 홍역을 치렀다. 그리고 이창원 신임 대표이사와 이윤원 신임 단장은 팬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축하받아야 할 취임식에서 사과문을 발표한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난 팬심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강수였다. 사과문의 골자는 '프로답지 못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롯데 프런트는 이 같은 취임 일성을 지키고자 분골쇄신 중이다. 변화는 개막전부터 감지됐다. 개막전 시구자로 롯데의 상징 고(故) 최동원 선수 어머니 김정자 여사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라이언 사도스키를 선정한 것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다. 이윤원 단장은 항상 MVG룸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전임 수뇌부와 달리 관중석으로 내려갔다. 개막전 하루의 퍼포먼스가 아니다. 이 단장은 수도권 원정 경기에도 동행하며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다. 팬의 시선에서 경기를 봐야 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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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팬이게 아이스크림을 전달하는 이윤원 단장(왼쪽)과 이창원 대표이사(오른쪽).

지난 어린이날에는 이창원 대표이사가 피터 팬으로, 이윤원 단장이 쾌걸 조로로 분장한 채 어린이 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줬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팀을 떠난 후 사라졌던 '패밀리 데이'도 올해 부활했다. 가정의 달을 맞아 팀 구성원 가족들의 사기 진작과 더불어 소속감, 자부심을 고취시키고자 진행된 '패밀리 데이' 행사를 위해 선수단 및 임직원 가족들이 사직구장에 초청됐다.

이종운 감독의 18일 발언은 프런트의 이러한 노력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팬이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으며, 존재 이유도 없는 게 바로 프로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애정 어린 비판을 보낼 자격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종운 감독은 스스로를 팬심으로부터 '자가 격리' 하고 있다.

이종운 감독은 귀를 열어야 한다. 이종운 감독이 이끄는 팀은 더 이상 아마추어 팀 경남고등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종운 감독은 프로야구 팀 롯데 자이언츠의 사령탑이다.

그 무엇보다 팬들을 중시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프로다웠으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의 말로 글을 맺는다.

"내 모든 관심사는 이 팀이 조금 더 강해지게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이 팀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팬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게끔 하는 일뿐이다."

*좌측담장: 결정적 순간. '바깥쪽' 공을 받아쳐 사직구장의 '좌측담장'을 쭉쭉 넘어갈 때의 짜릿함을 맛본 뒤, 야구와 롯데 자이언츠에 빠진 젊은 기자.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야구가 좋고, 그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 목표 아래 매일 저녁 6시반 야구와 함께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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