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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9) AS 로마 울트라스의 열차 원정 - 울트라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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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스?


19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으로 ‘서포터’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상당히 낯선 문화로 여겨졌습니다. 클럽 축구 문화도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로 유니폼을 입고 90 분간 자리에서 일어서서 조직적으로 팀을 지지하는 서포터들이 등장하자 축구장은 일종의 문화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국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외국 문화 추종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축구가 J리그 출범을 배경으로 급성장하면서 일본 대표팀 서포터인 울트라 니폰도 집중 조명을 받았기에, 서포터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는 국내 서포터가 일본 문화를 무분별하게 추종한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죠. 일본 서포터 문화도 어차피 유럽과 남미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란 사실을 잘 몰랐기에 생겼던 해프닝이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서포터 문화는 월드컵 길거리 응원과 K리그 발전을 거치면서 점차 우리나라 축구장에 정착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관중 징계나 올스타전 보이콧 등으로 인해 축구장에서 서포터가 사라지면 뭔가 허전한 느낌까지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K 리그에서는 서포터 중에서도 “울트라스(Ultras)”를 표방하는 그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거나, 군복과 비슷한 카키색 외투를 유니폼 위에 걸친 그들은 경기장 안은 물론 밖에서도 각종 코르테오(Corteo, 장외행진) 및 코레오그라피(Choreography, 대형 연출) 같은 화려한 응원을 펼쳐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울트라스란 과연 뭘까요? 사실 이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유럽의 유명한 울트라스 웹사이트인 유러피언 울트라스 포럼(European Ultras Forum)에 의하면 울트라스란 “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조직적 단체, 특히 유럽과 남미 축구팀과 관련된 단체)”라고 정의됩니다. 그리고 울트라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네 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 중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2. 경기 중 자리에 앉지 않는다.
3. 거리 및 비용에 상관없이 가능한 많은 경기에 참여한다.
4. 꾸르바(Curva, 울트라스가 위치한 구역)에 대한 충성심

위 핵심 가치만 놓고 본다면 사실상 울트라스와 서포터는 같은 의미의 용어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국이 아닌 유럽 대륙, 특히 동유럽과 지중해 지역에서는 울트라스와 서포터를 사실상 혼용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울트라스는 평균적인 서포터들에 비해서 좀 더 열정적인 극렬 서포터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울트라스를 “광신적이고 정교한 축구 서포터로서, 화염과 대형 깃발을 사용하며 큰 무리를 지어 목소리로 응원하는 팬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전관중이 자연스럽게 시작된 노래를 부르며 머플러를 사용하는 영국식 응원이 아닌, 소규모 그룹으로 경기장에 모여 조직적으로 구호를 외치고 화려한 연출을 펼치는 그룹들이 “울트라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런 점을 본다면 울트라스는 서포터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그룹이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유럽 울트라스 문화의 고향은 이탈리아입니다. 비록 브라질의 토르치다(Torcida) 문화가 동유럽의 하유크 스플리트(Hadjuk Split) 서포터를 통해 이탈리아에 받아들여진 게 울트라스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머리 속에 떠올리는 울트라스의 화려한 응원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기원했죠. 당연히 울트라스를 그린 이탈리아 영화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울트라(Ultra’)> 입니다.

삼각 관계에 빠진 두 울트라, 토리노 열차 원정을 가다

이탈리아의 수도를 대표하는 축구팀 AS 로마의 어느 울트라스 그룹. 이 곳에는 그룹을 리드하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프린스(Prince)라 불리는 루카(Luca)와 레드(Red)입니다. 프린스와 레드는 수많은 축구 경기 동안 꾸르바라 불리는 구역을 지켜왔고, 타 팀 울트라스와의 충돌에서 생사를 같이 한 친구죠.

그러나 어느 날, 프린스는 절도 사건에 연루되어 2년 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동안 레드는 프린스의 여자친구인 신지아(Cinzia)와 사랑에 빠집니다. 프린스와의 우정을 중요시하지만, 매력적인 신지아에게 자기도 모르게 끌리게 된 레드. 이런 사정도 모르는 프린스는 출소하자마자 신지아를 찾아갑니다. 레드와 신지아는 프린스에 대한 죄책감에 그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지 못합니다.

프린스가 출소한 뒤, 프린스와 레드는 유벤투스와의 원정 경기를 치르기 위해 토리노로 떠나게 됩니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깃발과 머플러를 들고 기차에 오른 수많은 로마 팬들. 기차 안에서 홍염이 터지고 마치 기차역인지 축구장인지 모를 장관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친구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레드는 기차 안에서도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결국 레드는 프린스에게 자신과 신지아와의 관계를 고백합니다. 하지만 프린스는 차가운 태도로 축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신지아와 레드 모두를 무시합니다. 이에 화가 난 레드는 신지아와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AS로마를 떠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주변의 동료들은 이런 레드를 경멸하게 되죠.

마침내 유벤투스의 연고지인 토리노에 도착한 로마 팬들. 하지만 그들은 기차역과 경기장에서 잠복해 있던 유벤투스 팬들에게 기습을 당합니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주변에는 경찰의 진압용 최루탄 가스가 자욱합니다. 과연 로마 팬들은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레드는 프린스와의 우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울트라, 또 하나의 축구장 서브 컬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유벤투스 울트라 그룹과의 충돌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축구의 이름으로 폭력이 옹호되어서도 안되고 미화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 면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우리는 이탈리아 울트라스만의 독특한 문화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다같이 모여서 경기장에 걸 대형 배너의 디자인을 상의하고 페인트로 직접 만드는 장면, 자신들이 탄 열차에서 노래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며 응원하는 장면, 경기장까지 대형 배너를 들고 행진하는 장면 등이 그렇습니다.

사실 유럽의 울트라 문화는 축구장 응원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도 울트라를 표방하는 K리스 서포터 그룹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축구장에 처음 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룹을 지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홍염을 터뜨리는 울트라스를 보며 두려움을 갖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K리그 울트라스 그룹들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폭력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제는 대형 깃발을 흔들고 홍염을 터뜨리며 응원을 주도하는 울트라스의 모습이 K리그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게다가 밴드를 중심으로 한 남미 인차다스(Hinchadas) 스타일까지 흡수하고, 유럽 기원이 아닌 우리 상황에 맞는 응원가와 깃발 등을 개발함으로써 서포터 문화의 토착화에도 기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영화, <울트라>를 통해, 우리는 열정적이지만 폭력의 어두운 그늘도 갖고 있는 이탈리아 울트라스의 빛과 그림자를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노하우를 도입하되 폭력은 멀리하고 축구장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국내 울트라스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죠. 붉은 악마가 모범적인 서포터로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줬듯이, 한국의 울트라스들이 창의성과 열정으로 세계에 어필할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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