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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조적인 두 남자, 이들의 얄궂은 한 사연
너무나 대조적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잘나갔다. 사장의 전담 통역관으로 시작해 착실히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리고 풍족한 회사의 리더가 됐다. 매출도 좋았다. 지난 분기 업계 1위. 각종 상도 휩쓸었다. 능력 있는 사원도 계속 스카웃했다. 하지만 이번 분기 매출은 업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업체가 마이너 시장으로 추락하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업체 리더로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새로운 회장 부임이후 자리를 빼앗겼다. 바로 다른 한 사람에게 말이다. 그는 다른 회사로 이직한 후 자리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새로운 업체의 리더로 부임했다. 이 업체는 업계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지만 그의 부임 이후 이번 분기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예상했겠지만 한 사람은 첼시의 감독 조세 무리뉴(52)고, 다른 한 사람은 레스터시티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4)다. 레스터시티는 15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레스터 킹파워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2016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홈경기에서 리야드 마레즈의 1골 1도움에 힘입어 첼시를 2-1로 격파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복수에 성공했다. 대조적인 이들 둘 사이에는 얄궂은 사연이 하나 있다.

라니에리의 첼시, 그리고 새로운 젊은 감독
이탈리아 출신 라니에리는 1997년부터 2000년 초까지 스페인 발렌시아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지도했다. 그리고 이 기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팀을 4년간 이끌면서 팀 컬러를 바꿔놓았다. ‘라니에리의 첼시’는 2003-2004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고, 그 해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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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사진=레스터시티FC]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 로만 아브라모비치(48) 구단주가 첼시를 새로 인수 하며 팀내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라니에리를 내쳤다.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 감독이 바로 조세 무리뉴다. 무리뉴는 당시 2003-2004 챔피언스리그서 FC포르투를 우승으로 이끈 ‘화제의 인물’이었다. 무리뉴는 그 전에도(2002-2003시즌) 리그, 리그 컵, UEFA컵(현 유로파리그)를 모두 휩쓸며 ‘미니 트레블’을 달성한 바 있었다. 아브라모비치는 무리뉴에게 크게 감명 받았고, 구단주가 되자마자 그를 감독 자리에 앉혔다.

바뀐 팀, 더 좋아진 팀 성적, 그 속에서 씁쓸한 라니에리
젊은 감독에게 자리를 내준 라니에리는 자신이 맡은 과거의 팀과 후임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첼시는 2004-2005시즌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리그 우승은 첼시가 오랜 기간 부침을 겪고 일궈낸 50년 만의 쾌거였다. 무리뉴의 성공가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05-2006시즌 리그 우승과 리그컵을 석권하며 또 다시 2연패를 달성했다. 2006-2007시즌에는 FA컵과 리그컵을 제패하며 세 번째 ‘더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첼시는 무리뉴가 떠난 후에도 각종대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왔고, 2011-2012시즌엔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무리뉴도 첼시를 떠난 후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다시 첼시로 부임했다. 그리고 지난 2014-2015시즌 리그 우승컵은 첼시가 들어올렸다. 38경기 26승 9승 3패 승점 87점. 2위 팀과의 승점 차는 8점이나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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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시즌을 앞두고 다시 첼시로 부임한 조세 무리뉴는 지난 2014-2015시즌에서 38경기 26승 9승 3패, 승점 87점으로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사진=첼시FC]



반면 라니에리의 행보는 무미건조했다. 그는 첼시를 떠난 후 발렌시아, 파르마를 거쳐 유벤투스에 둥지를 틀었다. 그곳에서 무리뉴와의 악연을 이어갔다. 2009-10시즌, 당시 인터 밀란의 사령탑이던 무리뉴는 팀을 이탈리아 클럽 사상 최초 트레블 우승으로 이끌었다. 무리뉴의 인터 밀란이 모든 대회에서 우승한 사이, 라니에리가 이끌었던 로마는 인터밀란에 발목이 잡혀 준우승에 머물렀다. 로마는 리그뿐만 아니라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인터밀란에 밀렸다.

이후 라니에리 감독은 AS 로마, 인터밀란, AS모나코 등 수많은 팀들을 오갔다. 모나코에서 잠시 부활하나 했지만, 이어 지휘봉을 잡은 그리스 대표팀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레스터시티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과거를 딛고 일어선 라니에리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시즌이 절반도 소화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 둘의 상황은 뒤바뀌었다. 첼시는 거듭된 부진으로 상위권 입성은커녕 오히려 강등권에 가깝다. 16경기 4승3무9패. 15라운드에서는 ‘승격팀’ 본머스를 상대로 1점 차 패배를 거뒀다. 부진한 성적과 더불어 선수 및 코칭스태프들과의 구설수로 도마에 오른 무리뉴와 달리 라니에리는 묵묵히 레스터의 리그 선두를 이끌고 있다. 시즌 개막 전만 해도 라니에리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레스터는 돌풍의 주역이 됐다.

EPL 출범 이후 기존의 소위 ‘빅4팀(혹은 빅7팀)’이 아닌, 중위권 팀이 16라운드까지 1위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지난 시즌 중위권이었던 레스터시티는 리그 3분의 1이 지난 현재까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16경기 10승 5무 1패. 특히 리그 득점 순위 1위 제이미 바디와 그의 파트너 리야드 마레즈는 올 시즌 30득점을 합작했다. 레스터시티의 하락세는 좀처럼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만년 약팀의 깜짝 반란이고 축소하기에는 매우 탄탄한 모습이다. 때문에 라니에리는 이제 연일 여론의 칭찬세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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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1월의 감독'과 '선수'로 각각 선정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사진 왼쪽)와 제이미 바디. [사진=EPL]



라니에리의 레스터는 이날 첼시와의 경기서 이를 입증했다. 레스터는 경기 초반 점유율에서 첼시에 밀렸지만 전반 31분 에당 아자르가 부상으로 빠져나간 틈을 타 34분 선제골을 넣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리야드 마레즈가 올린 크로스를 문전으로 파고든 바디가 발을 갖다 대며 득점에 성공한 것.

레스터의 득점포는 후반에도 계속됐다. 후반 3분 만에 선제골을 도운 마레즈가 박스 오른쪽에서 세사스 아스필리쿠에타를 앞에 두고 왼발 슈팅을 시도해 골망을 흔들었다. 첼시는 후반 32분 왼쪽 측면에서 페드로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킨 로익 레미의 만회골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별다른 상황 없이 종료 휘슬이 울렸고 라니에리는 잊고 싶은 추억이 있는 친정 팀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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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한국시간) 16라운드 경기 중에 찍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왼쪽) 레스터시티 감독과 조세 무리뉴 첼시 감독. 표정에서 양 팀 감독의 현 성적을 가늠할 수 있다. [사진=EPL]



라니에리가 팀을 떠난 2004년 이후로 11년 6개월이 흘렀다. 이젠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첼시는 강등을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라니에리는 ‘명장’ 평가를 받으며 리그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그간 라니에리는 소방수 역할이 강했다. 위태로운 팀에 부임해 단기간에 분위기를 수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급한 불만 끄고 있진 않다. 과거·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레스터시티, 그리고 그 팀의 리더 라니에리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 @jirrard92]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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