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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우올림픽 결산] (9) '흥행 성공' 여자배구, 그러나 고스란히 드러난 '속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태원 기자] 여자배구는 이번 대회 최고의 흥행카드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한일전 시청률이 11.5%로 집계됐을 만큼 국민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조별리그서 3승 2패, 조 3위의 성적으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때만 해도 당초 목표로 세운 메달 획득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한국 여자배구가 마지막으로 메달을 차지한 대회는 무려 40년 전, 몬트리올에서다.

하지만 8강전에서 해볼 만한 상대로 여겼던 네덜란드에 세트스코어 1-3으로 져 대회를 마감했다. 4년 전 런던 대회에서 일본에 져 4위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말끔히 지워내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탓일까. 네티즌은 8강전에서 좋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인 박정아(23 IBK기업은행)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더불어 대한배구협회의 열악한 지원과 무관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한국 여자배구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 이로 인해 선수들의 경기력이 온전치 못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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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연경, 서병문 대한배구협회장, 김해란. 지난 2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선수들과 협회장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뉴시스]


■ 수면 위로 떠오른 대한배구협회의 '부실 지원'

대표팀 선수들과 리우에 동행한 것은 감독과 코치, 트레이너, 전력분석원 등 단 4명뿐이었다. AD카드 부족을 이유로 더 이상의 지원 인력을 파견하지 않았다. 영어가 가능한 김연경이 선수, 주장 외에 통역까지 맡았다.

가뜩이나 '김치찌개' 사건이 알려진 터에 김수지가 귀국 인터뷰에서 "(김)연경이가 통역 역할까지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한 이후 대한배구협회는 십자포화를 맞았다.

부실한 지원에 비난이 쏟아지자 협회는 "보안이 철저한 올림픽 특성상 AD카드가 없으면 대표팀과 경기장 내 접촉과 선수촌 입촌이 안 되기 때문에 지원 인력이 리우에 간다 하더라도 사실상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더불어 "협회 사무국장만 현지에 들렸다가 AD카드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다.

대한축구협회도 대회 전 몇몇 직원이 AD카드를 발급받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았지만, 각 파트의 실무자를 현장에 보내 선수단의 경기 준비를 물심양면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배구협회가 선수단 지원에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배구협회는 현재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다. 협회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배구회관 건물을 무리하게 매입하다 큰 재정적 손실을 입었다. 재정 문제는 당장 좋아질 기미가 없다. 개선 의지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각 소속팀의 간판선수가 뛰는 월드리그도 스폰서 없이 대회를 치렀다. 협회가 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스폰서 유치에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배구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재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배구의 미래를 그리기에 앞서 협회의 안정화가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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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리그 2차전에서 맞닥뜨린 러시아의 높이는 그야말로 철벽이었다. 한국의 공격을 번번이 유효 블로킹으로 연결시켰다. [사진=뉴시스]


■현실의 벽은 높았다

세계 대회 출전 경험이 적은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높이와 서브에 고전했다. 조별리그에서 거둔 3승은 평균 신장이 낮은 일본, 그리고 약체 아르헨티나와 카메룬을 상대로 거둔 결과다.

해결사는 김연경뿐이었다. 한국을 제압한 상대 팀은 공격수 3명 이상이 해결사 노릇을 했다. 8강전 성적표를 살펴보면 한국은 김연경이 27득점을 기록했고, 네덜란드는 슬뢰체스, 부이스, 피테르센이 55득점을 합작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다른 출전국이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서 탐색전을 펼칠 때 한국은 진천선수촌에서 고등학교 남자 배구부와 연습 경기를 했다. 대한배구협회가 "참가비가 없다"는 이유로 2015년 그랑프리대회에 불참을 통보했고, 징계를 받아 2017년까지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생긴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국은 브라질로 가기 직전 네덜란드와 2차례 연습 경기를 치르는 걸로 실전 훈련을 대신했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한국은 일본과 아르헨티나, 카메룬 등 반드시 잡아야 할 팀에는 강했지만, 러시아 브라질 네덜란드 등 강팀과 만나면 기본기가 흔들렸다.

김연경은 한국선수들이 세계무대로 나아가서 시야를 넓히길 바랐다. "올림픽은 큰 대회고, 경험이 많을수록 자기 기량을 다 보여 줄 수 있다. 조금 더 해외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유럽 선수들과 경기를 뛰면 실력이 좋아질 거다. 한국 여자배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렇다. 답은 김연경의 평가에 이미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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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에서 세르비아를 3-1로 꺾고 금메달을 따낸 중국. 그들은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켰다. [사진=AP 뉴시스]


■ 중국 12년 만에 금메달, 마냥 부러워할 수 없는 일


중국 여자배구는 결승전에서 세르비아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포 주팅이 양 팀 최다인 25점을 책임지면서 중국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중국은 B조 4위에 그쳤지만, 8강전에서 올림픽 3연속 우승에 도전한 브라질을 3-2로 꺾으면서 탄력을 받았다.

중국은 2004년 아테네 대회 이후 12년 만에 금메달을 따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20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이룬 결과라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랑핑 중국 감독은 올림픽 배구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선수로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국 주전 선수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다. 팀의 해결사인 주팅은 이제 21살이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무럭무럭 성장한 이들은 세계를 정복했다. 높이는 러시아와 세르비아 등에 밀리지 않았다. 수비 조직력은 일본을 넘어설 정도로 끈끈했고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선수들의 정신력도 뛰어났다.

한국도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뛰어난 수비 집중력을 앞세워 승리를 따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8강전에서 '김연경 원맨팀'으로 전락했다. 반면 중국은 미들 블로커의 속공과 블로킹이 뛰어났고, 간간히 터지는 라이트 공격도 일품이었다.

중국은 풍부한 선수층을 최대한 활용해 막강한 대표팀을 완성했다. 저변이 넓은 중국과 일본은 대표팀을 1진과 상비군으로 나눠서 운영한다. 상비군 선수들은 1진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은 선수층을 두텁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선수들이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협회의 지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우 올림픽에서 나타난 여자배구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런 관심과 응원은 국제 대회 유치로 이어질 수 있고, 국내 리그 흥행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4년 뒤 도쿄에서 한 걸음 도약하기 위해서는 산적해있는 많은 과제들을 차례대로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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