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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이제껏 없었던 ‘풀뿌리 체육혁명’ - 금천구 탁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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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명계남이 쓴 <봉하로 간다> 표지.


# 최초의_의미
‘(전략) ID 늙은여우가 최초로 이런 제안글을 올렸다. “우리 노무현 이 사람 정치인 팬클럽 만듭시다. 노사모 만듭시다.”’ 초대 노사모 회장인 영화배우 명계남이 2012년 펴낸 <봉하로 간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상황은 이렇다. 2000년 4월 13일 제16대 총선에서 현직 국회의원 노무현은 당선가능성이 높은 종로 지역구를 포기하고, 부산 북강서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패했다. 당사자(노무현)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역감정을 개탄하는 이들이 뜻이 모여지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 ‘유김추이’의_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의 탁구 금메달리스트(남자복식)인 추교성(46 금천구청 감독)은 현역시절 유남규(49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 김택수(48 대우증권 감독), 이철승(45 삼성생명 남자팀 감독)과 함께 4인방으로 유명했다. 한국남자 탁구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이 ‘유-김-추-이’ 4명은 지독하게 운동을 하면서도, 역대급으로 놀기도 잘 논 것으로 유명하다. 1995년 탁구 월드컵에서는 오후 결승경기를 앞두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전 내내 화투놀이를 하고도 공링후이가 이끄는 세계 최강 중국을 3-0으로 완파한 것은 탁구계의 전설로 내려온다. 4인방 중 한 명인 추교성 감독은 지금 서울 금천구에서 이제껏 없었던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모 실업팀의 제법 괜찮은 스카우트 제의도 뿌리치고 풀뿌리 탁구혁명을 개척 중이다.

# 다운톱_방식
대부분의 메카가 그렇듯 ‘금천의 탁구혁명’은 시작은 작았다. 미성초등학교에서 운동을 하던 탁구동호인들이 어린 선수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2009년 금천구를 중심으로 서울 남서권에서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금빛나래탁구후원회(이하 금빛나래)가 결성했다. 이어 2011년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탁구선수들이 마땅히 갈 중학교가 없자 금빛나래는 문성중학교 탁구팀 창단을 주도했다. 또 3년이 흘러 이제는 중학교 졸업반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2014년 독산고등학교 탁구팀이 창단했다. 마침내 2017년 1월 23일 고교졸업을 앞둔 선수들을 위해 금천구청 탁구팀이 만들어지 것이다. 독산고 4명에 2명을 더해 6명이 창단멤버가 됐다. 고교감독 추교성도 자연히 금천구청 감독을 맡았다. 이번 3월에는 관내 영남초등학교에 탁구부를 창단하고, 오는 9월 독산고에 탁구전용체육관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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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3일 열린 금천구청 탁구단의 창단식 모습. '탁구의 메카 금천구!'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은 류희복 금천구생활체육협의회장.


# 풀뿌리_체육
금빛나래는 현재 정기후원 회원이 500명을 돌파했다. 이들이 조건 없이 내는 후원금만 연간 1억 원이 넘는다. 지난 1월 금천구청 창단 때도 후원회가 차량구매비용으로 5,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렇게 동호인들이 물심양면으로 금천구의 탁구를 후원하니 관(금천구청)도 동참에 나섰다. 차성수 구청장이 서울시 보조금을 포함해 7억 8,000여 만 원을 들여 실업팀을 창단했고, 보통 구청장이 겸임하는 구생활체육협회장마저 류희복(E좋은치과 원장) 금빛나래 회장에게 넘겼다. 동호인들의 열정에 감동한 까닭에, 선출직으로 선거에 도움이 되는 체육조직의 수장을 지자체장이 양보한 것이다. 모두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 장래걱정이_없는_선수들
우리네 현실에서 생활체육과 학교 및 엘리트체육은 분리돼 있다. 지난해 통합대한체육회가 출범하며 상생을 추구하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 그런데 이를 금천구 탁구가 마치 모범답안처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효과는 엄청나다. 초-중-고-실업 등 금천구에서 탁구를 하는 엘리트선수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다. 하고 싶은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다. 실력이 빼어나면 많은 스카우트금을 받고 다른 명문 실업팀으로 가도록 배려한다. 그러다 갈 곳이 없어지면 금천구가 다시 받을 계획이다. 또 엘리트로 성공할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해 공부할 길을 터주거나, 엘리트나 생활체육 지도자로 진로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 성적까지_좋다
경쟁이 없으면 성적이 나쁘지 않느냐고? 기우일 뿐이다. 먼저 문성중은 이미 전국적으로 여중부 신흥강호가 됐다. 지난해 전국남녀종별탁구대회 여자중등부 단체, 단식, 복식에서 1위에 올랐다. 숱한 전국대회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추교성 감독-석은미 코치가 이끈 독산고도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다크호스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7년 석은미 감독의 독산고, 추교성 감독의 금천구청이 얼마나 호성적을 낼지도 올해 국내 탁구계의 관심사다. 추교성 감독은 “제가 국가대표를 했고, 또 여러 주요 실업팀에서 지도자도 역임했죠. 그런데 금천구의 탁구시스템은 당사자인 제가 신기하게 느낄 정도로 훌륭합니다. 이게 바로 선진국형 지역 및 클럽스포츠인 듯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금천구청 팀의 주장 이은섭(19)은 “지금까지 창단을 네 번 겪었어요(웃음). 창단 팀이라 부담도 되지만 정말 즐겁게 운동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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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의 탁구혁명을 이끌고 있는 추교성 감독.


# 금천식 모델

다시 정치 얘기 잠깐. 요즘 촛불집회에 대항하는 친박집회는 ‘박사모’가 주도한다. 확실한 것은 ‘0사모’의 출발은 노사모라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일반화가 됐다. 숱한 정치인 팬클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기대선정국에서도 문팬(문재인), 안지사(안희정을 지지하는 사람들 *명계남 포함), 심크러쉬(심상정+crush), 국민희망(안철수), 유심초(유승민), 손가혁(손가락혁명군, 이재명), 황대만(황교안 대통령만들기) 등이 활동하고 있으니 ‘필수’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면 금천구의 탁구혁명은 가까운 미래에 전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열정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 풀뿌리 조직으로 시작했고, 엘리트-생활체육의 이상적인 결합, 민관협동, 올바른 선수육성, 호성적 등 다양한 장점을 갖춘 채 아래에서 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정책을 다루는 위정자들이라면 꼭 금천의 탁구혁명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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