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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백과사전 60회] 골프장에 선 한 그루 나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골퍼들은 대부분 라운드 한 골프장에서 스코어만을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어느 홀의 한 그루 휘영청 휘어진 멋스러운 나무를 기억한다면 멋을 아는 골퍼의 품격이겠다. 스코어를 방해하는 못된 핸디캡 나무를 기억한다면 코스 공략을 아는 멋진 골퍼의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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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서울 북코스 9번홀의 연리목.


골프장을 기억하게 하는 홀
남녀의 사랑을 비유하는 ‘비익연리(比翼連里)’라는 말이 있다. 비익조(比翼鳥)라는 새와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무를 합친 단어다. 이는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백거이)이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아부하며 읊은 시 ‘장한가’에서 나왔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 : 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 :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비익조는 날개가 한 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결합되어야만 날 수 있는 새이고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이다. 둘이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 온전해지고 완벽해진다는 의미다.

비익조야 상상속의 새지만 골프장에는 연리지가 있다. 경기 광주의 뉴서울 북코스 9번 홀 티잉 그라운드 오른쪽에는 해당화와 꽃사과가 하나의 줄기로 합쳐졌다. 봄여름 꽃 피는 계절이면 해당화는 분홍색으로 꽃사과는 흰색으로 다른 꽃이 제각각 피어나는 장관을 이룬다. 제주도의 롯데스카이힐제주 포레스트 코스 6번 홀을 지나 7번 홀 가는 숲길에도 연리지가 한 그루 자란다. 골프장은 이 나무 밑에 ‘연리지’라는 시를 새긴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곶자왈로 불리는 천연 수림대가 있는 제주도에는 이보다 더한 9곡수라는 나무도 자란다. 제주컨트리클럽 4번 홀은 한라산을 바라보는 완만한 파5, 501m 홀인데 세컨드 샷을 한 뒤 페어웨이 오른쪽 끝에 다소곳한 ‘9곡수’를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다.

9곡수의 의미를 풀자면 나무 9그루가 합쳐서 한 그루를 이뤘다고 해서 9곡수다. 여름엔 이 나무가 9개의 다른 나무인지 구분하기 힘들지만 겨울이 되면 제각기 다른 색을 띤다. 한라산 지령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만들어진 ‘신령수’라고도 불린다. 날아가던 볼도 여기서 힘을 잃고 떨어진다는 마(魔)의 영역이기도 하다. 티샷이 이상하게 페어웨이 왼쪽 연못에 빠지곤 하는데 그건 9곡수 때문이란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니 구곡수를 지날 때면 조심스럽게 돌아 삼가며 코스를 지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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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앞 500년된 남촌의 회화나무.


경기도 광주의 남촌컨트리클럽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회화나무가 클럽하우스 주변에 세 그루 있다. 클럽하우스 양쪽으로 500년, 450년 두 그루가 있고 클럽하우스 옆으로 한그루 더 있다. 최고 25미터까지 자라는 회화나무는 ‘학자나무(Chinese Scholar Tree)’라고 불린다. 늘 푸른빛을 띠고, 나무 모양새가 둥글면서 온화하며 어디서건 탈 없이 잘 자라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선비가 살던 옛집이나 무덤 주위에 즐겨 심었고, 국내에도 향교나 궁궐·사찰 경내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그림과 도자기, 산수화 수집가인 골프장 오너 남승현 마주코통상 회장이 일부러 구해 심었다. 깊이 있는 전통 예술품 컬렉터였던 남 회장은 옛날 양반 귀족들의 놀이터가 오늘날의 골프장인만큼 풍류를 위해 일부러 회화나무를 배치한 것이다. 남촌은 클럽하우스 1층에 미술관을 두고서 조선시대 문인화와 도자기를 1년 내내 상설 전시하기도 한다. 미술관을 들렀다 코스로 나가면 마치 조선시대의 풍류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경기도 용인의 글렌로스골프클럽에는 1번 홀과 클럽하우스 앞마당에 사이에 포곡향(蒲谷香)이란 이름의 진백나무가 쓰러질 듯 줄기를 옆으로 늘이고 있다. 수령 400년인 이 나무엔 전설이 전해진다. 100년 전 낙뢰로 인해 줄기가 끊어지고 흰 줄기만 남았다. 하지만 멋진 그늘이 지는 터라 예로부터 호랑이가 터를 잡고 놀이터로 삼았다고 전해지며, 나무 밑으로 창포가 많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포곡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는 원래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2001년에 현재의 위치에 식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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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파인비치 파3 16번 홀의 꼭대기에 놓인 소나무 한 그루가 이 코스의 상징으로로 활용된다.


나무 한 그루가 코스에서 가장 잘 어우러지는 멋진 배열은 어떤 나무를 심었느냐가 아니라 어느 위치에 심어져 있느냐일 것이다. 그 점에서 최고를 겨루는 나무는 제주도의 클럽나인브릿지 18번 홀 소나무와 전남 해남의 파인비치링크스 15번 홀의 해송(海松)일 것이다. 나인브릿지의 18번 홀은 코스의 피날레인 아일랜드 그린을 향하는 골퍼에게는 지향점 같은 의미다. 밤에 클럽하우스 창가에서 야간 조명 속에 비치는 소나무를 볼 때면 멋지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파인비치의 파인(Pine)이라던지 소나무를 형상화한 골프장 로고는 모두 이 15번 홀 해송에서 나왔다. 15번 홀은 바다를 건너 쳐야 하는 이 코스의 대표적인 시그니처 홀이고, 그 그린 옆으로 마치 망부석처럼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소나무가 바로 해송 한 그루다. 다행히 지금껏 이 코스로는 심한 태풍이 지나거나 비바람으로 나무가 쓰러진 적은 없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절벽 위에 홀로 솟아 있는 소나무 한 그루는 라운드를 마쳐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는다.

그 나무 참 고약하더라
나무와 관련된 좋은 기억이 있는가 하면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도 있다. 제주도의 신설 코스인 스프링데일 골프장 데일 7번 홀에는 티잉그라운드 지나 100야드 지점에 연못을 건너자마자 바로 앞에 편백나무 한 그루와 또 다른 이름 모를 나무 2그루가 5미터 정도 높이로 서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나무가 있는 방향이 페어웨이 가운데인지라 똑바로 잘 치면 오히려 나무를 맞고 튕겨서 물에 빠질 수 있다. 아예 볼을 높이 치거나 아니면 옆으로 보내야만 한다. 그래서 참으로 고약한 심보를 가진 나무다. 수많은 골퍼들이 이 나무를 맞힌 듯 줄기에는 철망을 둘러놓았다.

경기도 안성의 파인크리크 골프장 파인 4번 홀 참나무에 욕 한 소리 하지 않고 지나간 골퍼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린 입구에 마치 성문을 지키는 사나운 수문장처럼 지켜 서서 날아가는 볼을 떨어뜨려버리기 때문이다. 이 홀이 가장 어려운 건 참나무 뒤에 핀이 꽂혀 있는 경우다. 정확하게 잘 치면 버디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나무 맞고 해저드에 빠져서 1벌타에다 그 앞에서 다시 쳐야 하는 불행이 닥칠 수 있다. 그래서 나무에 맞히는 일이 걱정되면 나무를 피해 그린 가장자리를 겨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도 역시 볼이 정확한 방향을 날아갈지 장담할 수 없으니 이래저래 난감한 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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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원 상주 마지막 홀에는 특이하게 생긴 나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경북 상주에 위치한 블루원 상주(구 오렌지) 18번 홀에는 티박스에서 200미터 지점 페어웨이 오른쪽 끝에 높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숲의 괴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핸디캡을 가진 장애물 나무다. 이 나무를 피해 페어웨이 왼쪽으로 샷을 하자니 그린까지 길이가 더 멀어진다. 더구나 한국인의 평균 비거리가 214야드 정도이니 나무가 있는 지점이 딱 보통 비거리의 골퍼가 드라이버샷 한 볼이 떨어지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렇 해도 나무를 잘라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 페어웨이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샷을 잘만 한다면 그 나무는 플레이에 아무 상관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고의 프라이빗 코스로 꼽히는 오거스타내셔널 17번 홀에는 아이젠하워 나무가 있다. 골프광이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코스에서 자주 라운드했는데 티샷이 이 홀 페어웨이 왼쪽에 서 있는 나무를 종종 맞히자 분통이 터져 골프장에 ‘나무를 잘라버리라’고 강하게 건의했었다. 하지만 클럽 측은 대통령의 말에 아랑곳 않고 이 나무를 지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신 이 나무는 아이젠하워의 애칭인 ‘아이크’가 붙은 ‘아이크의 나무’로 불리고 있으니 이 정도면 나무 중에서는 가장 출세한 나무가 아닐까 싶다.

스프링데일이건, 파인크리크이건 블루원 상주이건 내 샷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나무를 잘라버릴 수는 없다. 골퍼의 샷 정확성을 시험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어 속상하지만 골프장은 골퍼에게 이렇게 말하면 할 말 없다. ‘나무도 핸디캡의 하나이니 이를 피해서 치는 것도 골퍼의 능력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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