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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위대한 볼 스트라이커’ 모 노먼 (1)

미PGA 투어의 캐나다 오픈을 맞이해 특별한 골프선수 한 명에게 오마주를 표하고 싶다. 바로 캐나다 최고의 골프영웅 모 노먼(1929~2004)이다.

“골프공을 완벽하게 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다. 하나는 벤 호건이고 다른 하나는 골프의 신이다.” 벤 호건을 골프의 신과 비교한 말인데, 그 골프의 신이 모 노먼이 아닌가 싶다. 이는 필자 혼자만의 과한 생각이 아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나름 근거가 있다.

어쨌든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볼 스트라이커로 인정받는 두 명은 벤 호건과 모 노먼인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인 벤 호건에 비해 모 노먼의 스토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잊혀진 천재’로 불렸던 모 노먼은 믿기 어려운 숱한 일화들을 남겼다. 결국 볼 스트라이킹의 천재로 인정받았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그의 인생은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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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노먼의 이야기를 다룬 책 . 이 책은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 표지의 노먼은 나이가 들었을 때의 모습이다.


잊혀진 천재를 살려낸 전성기의 우즈


1995년 <월 스트리트 저널>이 가난에 찌들었던 모 노먼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같은 해 12월 <골프 다이제스트>에 10페이지가 넘는 특집기사가 실리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노먼은 이후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런데 2005년 최고의 전성기에 타이거 우즈가 뜬금없이 던진 한 마디는 노먼의 존재를 살려내기에 충분했다.

“골프 역사상 자기만의 스윙을 남긴 선수는 두 명뿐이다. 그들은 모 노먼과 벤 호건이다. 나도 역사 속에 나만의 스윙을 남기고 싶다.”

미디어와 일반 골퍼들은 모 노먼이라는 골퍼를 재조명했고, 새삼 그가 볼 스트라이킹의 천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 2명은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다. 그들은 화려한 메이저우승의 업적을 남겼지만 그들만의 스윙을 남기지는 못했다. 노먼을 언급한 우즈의 인터뷰 내용에서 그가 왜 전성기의 스윙들을 포기하고 스윙코치를 옮겨 다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폐증 환자의 스윙

모 노먼은 볼 스트라이킹의 천재일 뿐, 위대한 선수가 되지 못했다. 오직 롱게임에만 강했고 쇼트게임이나 퍼팅은 롱게임 만큼 강하지 못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자폐증 환자였다.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먼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멘탈게임이라는 골프에서 위대한 선수가 되기 어려운,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칼럼 읽기를 잠시 중단하고 노먼의 스윙을 보자. 더 많은 영상을 보려면 유튜브에서 ‘Moe Norman’을 검색하면 된다.

■ 모 노먼의 스윙 동영상



노먼의 스윙은 우리가 좋은 스윙이라고 믿어왔던 것과는 거리가 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명한 골퍼들이 “현재 최고이며 100년 후에도 최고다”라고 극찬한 스윙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윙이기도 하다.

그의 스윙을 처음 보면서 “왜 저렇게 스윙을 할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몇 개의 공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왜 나는 저런 스윙을 못할까?”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기술적으로 보면 벤 호건의 스윙은 투 플레인이고, 모 노먼은 원 플레인 스윙이므로 두 스윙에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도 가장 위대한 볼 스트라이커라는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골프스윙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벤 호건과 모 노먼은 몇 가지 공통점도 있었는데 ▲ 서양인으로서는 작은 키(벤 호건 170cm, 모 노먼 168cm), ▲ 선생 없이 혼자서 만든 스윙, ▲ 왼손잡이인데 오른쪽으로 스윙을 했다는 것이다. 모두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다.

모 노먼이 남긴 공식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볼을 쳤는지 상상할 수 있다. ‘홀인원 17회, 알버트로스 9회, 18홀 59타 3회 61타 4회, 코스레코드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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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골퍼들인 닉 팔도, 닉 프라이스, 벤 크렌쇼, 프레드 커플스(오른쪽부터, 가운데 인물 제외)가 모 노먼의 스윙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노먼의 책 'The Feeling of Greatness: The Moe Norman Story' 중에서]


노먼을 구경했던 골프황제들

1967년 모 노먼이 미국 월드컵대회에 캐나다 대표로 출전했을 때, 라운드가 끝난 후 연습공을 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 리 트레비노가 모였다. 당시 세 선수는 모두 전성기였다. 세 명의 메이저 우승 횟수가 17승이나 됐다. 그런데 ‘듣보잡’ 모 노먼의 스윙 테크닉과 똑바로 치는 기술에 대한 그들의 질문은 4시간이나 계속 되었고, 그 뒤에는 구름 같은 관중이 몰렸다.

언제든지 모 노먼이 레인지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은 그의 스윙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타이거 우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먼의 공이 날아가는 장면을 지켜보던 우즈는 “하늘에서 공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놀라워했다.

다른 선수들의 골프샷은 사이드 스핀 때문에 날아가면서 휘어지지만 모 노먼의 공은 백 스핀만 있을 뿐 사이드 스핀을 완벽하게 제거했으므로 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파이프라인 모’였다. 벤 호건은 샷을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휘어지게 치는 것이 정상이며 만일 똑바로 날아간다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말했다. 똑바로 날아가는 공을 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표현이었는데 모 노먼은 하루 종일 똑바로 가는 공을 칠 수 있었다. 그의 구질을 비디오로 분석한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 전문가는 기계로 치는 것보다 사이드 스핀이 더 적다며 믿을 수 없어 했다.

1929년에 태어나서 2004년 세상을 떠난 모 노먼은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동안 값싼 모텔방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전설 같은 일화와 자세한 인생 스토리는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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