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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훈의 빌드업] (24) 스승과 제자의 ‘함께하는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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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김현준 감독이 김병수 감독을 뒤이어 영남대를 이끌고 있다. [사진=영남대 축구부 홍보단 홍진녕]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지난해 두산베어스의 김태형 감독이 통합 우승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NC 김경문 감독을 언급하며 갑작스레 눈물을 보였는데, 선배를 향한 진심 어린 김태형 감독의 눈물은 야구팬뿐 아니라 많은 스포츠팬의 심금을 울렸다. 축구계에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가까운 시일 내에는 힘들지만, 먼 훗날에는 기대할 만 하다. 올 시즌 김병수 감독과 그의 뒤를 이은 영남대 김현준 감독이 그 대상이다.

김현준 감독은 올 시즌 갑작스레 서울 이랜드FC로 떠난 김병수 감독을 뒤이어 영남대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2010년부터 김병수 감독의 옆을 오랫동안 보좌한 인물로, 그 누구보다 영남대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둘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수 시절 김현준 감독은 십자인대부상으로 일찍 축구화를 벗었다. 그는 누나의 권유로 체육교사 공부를 하며 모교인 부산정보고 트레이너도 겸하고 있었다. 당시에 영남대가 부산으로 자주 훈련을 하러 내려왔는데, 그때부터 김병수 감독의 레이더에 김현준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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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감독은 2010년부터 김병수 감독을 보좌했다. [사진=김현준 감독 제공]


김현준 감독은 그 당시를 회상했다. “은사님(당시 부산정보고 박병찬 감독)과 식사 자리를 함께할 때마다 김병수 감독님과 식사 자리를 많이 했다. 이야기 듣기론 성실한 모습이 마음에 드셨다고 했다(웃음). 처음 제의가 왔을 때는 너무 놀라고 저만의 목표가 있었고, 자신감도 없었다. 한 번 더 제의가 왔을 때 다시 고민하면서 합류하게 됐다.” 둘의 동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영남대를 거친 선수들은 김병수 감독을 ‘아버지’, 김현준 감독을 ‘어머니’라 칭한다. 김병수 감독이 다소 무뚝뚝하다면, 김현준 감독은 뒤에서 조용히 선수들을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김현준 감독은 “김병수 감독님께서는 오로지 축구로 소통하신다. 직접 몸으로 표현하시고, 강하게 말할 때도 있다”며 “선수가 상처를 입은 것 같으면 경기 후 제가 불러 놓고 이야기를 했다. 감독님의 메시지를 선수들이 알아듣지 못할 때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했다”고 말했다.

두 코칭스태프의 노력은 영남대의 전성기까지 이어졌다. 이명주(27 FC서울), 김승대(26 포항스틸러스), 손준호(25 포항스틸러스), 신진호(29 상주상무) 등은 김 감독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프로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영남대는 4관왕을 달성하며 주전선수 8명이 프로로 진출했다.

이러한 명성 덕에 김병수 감독은 매 시즌 K리그 클럽들의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렸다. 결국, 올해 1월 동계 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김병수 감독이 서울 이랜드FC로 떠났고, 김현준 코치가 감독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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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는 지난해 4관왕을 들어올리며 전국을 제패했다. [사진=영남대 축구부 홍보단 홍진녕]


김현준 감독은 83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35세이다. 대부분 40, 50대의 감독들이 즐비한 대학 무대에서는 김 감독은 젊은 감독에 속한다. 이제는 더 이상 보조 역할이 아닌 팀의 선장으로 나서게 됐다. 혼자서 팀을 짊어져야 하니 부담감은 당연지사.

“감독님의 빈자리가 크더라. 사실 (김병수) 감독님께서 한 번씩 전화하셔서 ‘강하게 갈 땐 강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다른 학교에서는 코치가 악역을 맡았는데 오히려 영남대에서는 김병수 감독님이 악역을 하셨다. 갑자기 일이 이렇게 벌어지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이가 어려 주위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선수들한테 영향이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현준 감독이 이끄는 첫해, 영남대가 U리그 10권역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 춘·추계연맹전 32강에서 아주대를 만나 무릎을 꿇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모두 패했다. 하지만 선수단과 감독 간의 신뢰는 여전했다.

“아이들이 걱정이 많을 텐데, 김병수 감독님과 비교하지 않고 믿어준다. ‘우리 쌤은 이런 부분에서 장점이 있으니까’라며 믿고 따라 가준다.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표현을 해줘서 고맙다. 미안한 것도 많다. 아주대와의 경기에서 혼자서 하려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있다. 경기 후 아이들이 억울하니까 울더라. 제가 아직 많이 어리고 부족하다. 그래도 선수단이 표현해주고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주대전 마지막 3번째 골을 넣었을 때 뭉클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플레이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를 많이 배려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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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감독은 김병수 감독 옆에서 약 6년을 함께 해왔다. [사진=김현준 감독 제공]


영남대의 축구 스타일은 김병수 감독 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영남대는 늘 짧은 패싱 축구로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며 기회를 엿봤다. 김현준 감독은 “김병수 감독님의 축구 스타일을 되도록 따라가려고 한다. ‘영남대 축구’ 브랜드를 만들어 주시지 않았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기본 틀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지금도 김현준 감독에게 축구는 어렵다. 김병수 감독의 축구를 약 6년간 지켜봐 오며 당연히 영향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축구를 알아가는 단계라고 밝혔다.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김병수) 감독님의 축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실행하기가 쉽지 않더라. 감독님의 축구 브랜드 틀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웃음).”

김현준 감독은 아직은 감독 첫해이기 때문에 본인의 색깔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과장하고 꾸미는 말 대신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김병수 감독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최근 속도에 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감독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셨지만, 압박이나 볼을 탈취했을 때 좀 더 빠른 속도로 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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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감독은 김병수 감독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메신저 글.


김병수 감독의 가르침을 한 번이라도 받은 자들은 매번 그의 신봉자가 됐다. 마치 개그맨 유재석을 ‘유느님’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김현준 감독은 김병수 감독의 향수를 지우기보단 오히려 그의 뒤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

“김병수 감독님께서 ‘내가 생각한 것 말고, 내 틀에서 벗어나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런데 쉽지 않다(웃음). 틀에 벗어나서 무언가를 해야 하긴 하지만, 향수를 지울 수 없다. 감독님하고 반드시 만나고 싶고, 만날 것이다. 조금 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웃음).”

김현준 감독의 어투에는 김병수 감독을 향한 존경심이 묻어났다. 자신보다는 스승을 위한 말들을 쏟아냈다. 김병수란 스승을 만난 김현준 감독, 김현준이라는 제자를 만난 김병수 감독, 둘은 다소 투박하지만, 행복한 동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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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감독(좌)과 김병수 감독(우)이 지난 클럽월드컵이 열렸던 요코하마를 방문했다. [사진=김현준 감독 제공]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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