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T2대회 취재기] (중) ‘탁구는 덤불 속의 다이아몬드’ - T2 만든 프랭크 지 회장
이미지중앙

19일 T2 4라운드 첫 날, FIXTURE 19에서 팀 JJ의 하리모토 토모카즈(왼쪽)와 2017 유럽챔피언 디미트리 옵차로프가 경기하는 장면을 방청석에서 찍어봤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조호르바루)=유병철 기자] 지난 20일 탁구 대회장에서 무려 10시간이나 있었다. 아무리 재미난 일도 10시간을 하기는 쉽지 않은 법. 생활체육인으로 탁구를 무척 좋아하지만 다소의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코앞에서 본 것은 큰 즐거움이었지만 말이다.

화제의 ‘T2 APAC’ 리그의 4라운드 첫 날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모두 지켜봤다. 그런데 세상사에 의외가 많듯, 유럽챔피언 디미트리 옵차로프(독일)과 ITTF(국제탁구연맹) 월드투어 사상 최연소 우승을 달성한 하리모토 토모카즈(일본, 2003년 6월 27일 생)의 맞대결(옵차로프 4-1 승리) 등 즐비한 스타 플레이어들보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 이색적인 대회를 만든 시마스터(SEAMASTER)의 프랭크 지 회장(50)이었다.
이미지중앙

19일 게오르지나 포타와의 경기 후 캡틴 장지아량(오른쪽)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전지희(왼쪽, 대한항공). T2리그에서 줄곧 부진했던 전지희는 이날 4-1로 승리했다.


# intro - 격식은 없고, 재미와 감동만 있다

전날(19일) 저녁 T2 4라운드의 시작을 위한 만찬이 열렸다. 공식행사이고 모처럼 프랭크 지 회장이 온다고 해서, 나름 긴바지에 재킷까지 입고 나갔더니, 해변가의 선술집(펍)이었다. 다들 반바지, 트레이닝복 등 편안한 차림이었고, 호스트인 프랭크 지 회장도 청바지에 재킷을 하나 걸친 모습이었다. 탁구 사상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리그지만, 다들 격식 따위는 동네 강아지에게 주고 온 느낌이 들었다. 재킷 하나 정도는 잘 준비해왔다고 뿌듯해했는데 완전히 속은 셈이었다.

이미지중앙

19일 밤 열린 T2리그 4라운드의 공식 개막만찬 장면. 그냥 맥주집에 모여 아무 격식없이 떠드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만찬에 공식적인 인사말도 없었다. 그냥 한 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고, 가볍게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며 떠드는 분위기였다. 최소한 참가자 전원이 모두 건배를 외치는 회사의 작은 회식만도 못했다. 그저 호스트인 프랭크 지 회장이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세계적인 탁구선수들과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다.

양하은과 그의 어머니이자 코치인 김인순 씨, 전지희, 주세혁 등 외국에서는 과묵한 한국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았고, 태국의 여자선수 수타시니 사에타부트(세계 54위)와 그의 어머니가 낄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한국테이블에 합석했다. 탁구선수들은 국제대회 참가로 세계화가 빨리 진행된 탓인지, 다른 나라 선수들이 섞여 앉은 테이블이 많았지만 한국은 한국이었다.

프랭크 지 회장이 한국 테이블로 오면 인사를 겸해 간단한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티모 볼, 옵차로프, 페르손, 로시, 메이스 등 유럽 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시간30분 정도가 지나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먹을 것 다 먹었고 내일 경기를 위해 일찍 쉬어야 하니 회장에게 간단히 인사나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나도 명함을 한 장을 건네고, 내일 잠깐 시간을 내달라는 것으로 눈만 맞췄다.

이미지중앙

자신이 창설한 신개념 탁구리그 T2의 경기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프랭크 리 T2의장. 50세인 그는 상해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로 탁구에 푹 빠져 있다.


# 리그 방식

T2대회의 한 라운드는 모두 6개의 ‘FIXTURE(경기)’가 열린다. 4개팀(페르손 메이스 JJ 로시)이니 라운드마다 풀리그를 하는 것이다. 총 6라운드인 까닭에 다른 팀의 특정선수와는 총 2번씩 맞붙는다. 한 라운드는 4일간 열리는데,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2시와 7시에 두 경기씩,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오후 2시에 한 경기가 열린다.

부상 등 피치못할 사정으로 선수가 결장하게 되면 대체선수가 선발된다. 또 현장에서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다른 선수가 대신 뛰기도 한다. 이 경우 단체전 성적에는 포함되지만 개인성적에서는 제외된다.

공식호텔과 경기장(스튜디오)이 차로 5분 거리. 일정표에 따라 12시45분에 셔틀을 타고 경기장(파인우드스튜디오)으로 향했다. 영 시원치 않게 보이는 리셉션 데스크에서 등록을 하는데, 물어보니 미디어는 기자 혼자였다. 대회 자체가 ‘영상’에 초점을 맞춰져 있고, 심지어 관중 대신 방청객만 존재하니 기존 스포츠의 문법 중 하나인 미디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심지어 미디어 패찰도 없어, 손님(GUEST) 용을 착용했다. 패찰과 함께 뭔가를 주기에 뜯어보니, 응원봉과 호루라기였다. 방청객도 중계화면을 잘 만들기 위해 응원봉을 두드리고, 멋진 플레이에 호루라기를 불라는 뜻이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선수들은 연습장과 메인코트를 오가며 연습에 한창이었고, 경기장 아나운서 및 진행요원들은 생중계 준비에 바빴다. 손님 신분에 맞게, 방청석에 앉아 ‘이런 탁구대회도 있구나’라며 구경하고 있는데, 반대편 VIP존에서 프랭크 지 회장이 눈에 들어왔다. 경기장은 전날 미라 와서 답사를 한 까닭에 그에게 다가갔다.

이미지중앙

방청석에서 바라본 VIP좌석 모습. 대형 출입문 왼쪽에 앉은 이가 프랭크 지 의장이다.


# 보석 같은 탁구의 가치

“탁구를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탁구의 발전가능성은 엄청납니다. 덤블 속의 다이아몬드(a diamond in the rough)라고 할 수 있죠. T2리그는 탁구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매력스포츠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과정에 놓인 의미있는 시도일 뿐입니다.”

적대감이라면 모를까, 말도 잘 안 통하는 중년의 외국남성에게 쉽게 호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선해 보이는 인상과, 탁구사랑에 대한 진정성에 넘어가고 말았다. 한국의 돈 많은 부자들도 이 사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격식 따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의미 있는 일(탁구)에 돈을 쓰니 말이다.

한국에는 홍콩사업가로 알려졌는데, 프랭크 지 회장(Ji Wen Yuan)은 상해 출신의, 뼛속까지 본토 중국인이다. 홍콩에서는 사업을 많이 할 뿐이다. 그는 1967년생이고, 성공한 해운사업가다. 상하이 해양대학에서 해운을 전공했고, 경영학석사를 받았다. 1993년 졸업과 동시에 굴지의 해운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고, 2006년 ‘시마스터’를 설립해 드라이벌크(곡물 석탄 등 용적단위로 계산하는 뱃짐) 전문으로 해운업에서 성공했다. 지금은 건설 부동산개발업도 병행한다고 한다.

40대 중반인 2002년께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즐기면서 프랭크 지는 ‘환자(탁구마니아)’가 됐다. 탁구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2015년부터 시마스터 이름으로 탁구를 후원하기 시작해 2016년 여자월드컵 타이틀스폰서, 같은 해 ITTF 스타어워즈와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도하) 후원사를 맡았고, 2017년부터는 월드투어와 4년 후원 및 전략파트너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별도로 T2리그까지 출범시킨 것이다.

"탁구를 좋아하게 된 후 2~3년간 전 세계의 메이저대회를 찾아가 구경하고, 선수와 관계자들을 만났죠. 탁구를 공부한 겁니다. 제법 탁구라는 스포츠를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많이 변했는데, 탁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탁구가 발전하려면 상업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탁구의 상업적 가치는 아직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탁구를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

그렇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에 탁구를 즐기는 동호인이 3억 명이 넘고, ITTF 회원국은 222개 국으로 축구나 농구보다 많다. 그런데도 옛날 방식에 젖어, 보석 같은 탁구의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프랭크 지 회장의 판단이다.

“세계선수권을 예로 들죠. 세계적인 선수들이 갈고닦은 최고의 기량을 펼치는데, 탁구대가 워낙 많으니 어디서 누가 경기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축구나 농구 등 프로스포츠처럼 많은 카메라가 동원돼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줘야 합니다. 현장은 물론, TV 중계로요. 그래야 탁구의 상업적 가치가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탁구의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 ITTF가 만든 프랭크 지 동영상



# 선수(player), 수집가(collector), 열정맨(enthusiast), 비전을 가진 사람(visionary)

프랭크 지 회장의 상해 집은 ‘작은 탁구박물관’이나 다름없다. 탁구대가 연습용과 경기용으로 2대가 있고, 경기용에는 바닥에 붉은 카페트까지 깔려 있다. 여기에 세계적인 선수들의 유니폼과 사인라켓, 진귀한 탁구용품과 관련 잡지까지 있다. 이 공간에서는 탁구만 생각하고, 탁구얘기만 한단다.

ITTF의 자체기사를 통해 이런 프랭크 지 회장의 스토리를 자세히 보도하면서, 그를 선수(player)이자, 수집가(collector)이자, 열정맨(enthusiast)이자, 비전을 가진 사람(visionary)이라고 표현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는 이번 T2리그에만 40억 원이 넘는 큰돈을 쓰면서도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탁구에)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노력한다면 성공은 멀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의 노력(T2)이 핵심에 도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4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 조호르바루 현장에서는 이미 내년 시즌 T2대회 얘기가 나오고 있다.

프랭크 지 회장은 이날 기자보다 더 일찍 경기장에 나와 모든 경기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10시간 넘게 말이다. 편하게 살 수 있는 돈 많은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진짜 탁구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이곳에서 사용하는 명함을 보니, 자신의 사업은 모두 제외한 채 ‘T2 창설자 겸 의장(Founder & Chairman)’으로만 돼 있었다. 이쯤이면 대회도, 창설자도 제법 멋지다. 그리고 한국탁구를 생각하면 많이 부럽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