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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L 12R] '노신사' 뱅거가 스리백을 소화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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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골을 포함해 맹활약하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아스날의 알렉시스 산체스. [사진=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혁희 기자] 4-4-2 포메이션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노신사가 말년에 새로운 옷을 찾았다. 아르센 뱅거 감독이 지난 시즌 말부터 실험하기 시작한 스리백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 아스날이 토트넘과의 북런던 더비이자 '스리백 맞대결'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3-4-2-1 간의 맞대결이었다. 아스날보다 앞서 스리백을 도입한 토트넘은 레알 마드리드마저 꺾었던 '그'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해리 케인이 최전방에 서고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델레 알리가 그 뒤를 받치는 전형이었다. 아스날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산더 라카제트가 원톱으로 출전했고, 메수트 외질과 알렉시스 산체스가 처진 위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스리백으로 가장 효과를 본 팀은 단연 토트넘이다. 지난 시즌 이미 큰 효과를 거둔 전술이었지만,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아약스에서 영입한 다빈손 산체스가 수비 라인에 합류하며 안정감이 배가되었다. 수비력 뿐만 아니라 빌드업에서도 서로 궁합이 맞아들어가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승승장구했다.

반면 아스날의 스리백은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 중이었다. 뱅거가 스리백 카드를 꺼내든 건 불과 지난 시즌 말이다. 경기력이 좋을 때의 '변신'이 아니라, 성적 부진과 사퇴 압박이 거세지자 꺼내든 궁여지책이었다. 03-04 시즌 4-4-2로 영광의 무패 우승을 거둔 이후, 뱅거는 그 연장선인 4-2-3-1을 오랫동안 고집했다. 때문에 '뱅거의 아이들'이라 불리던 주전 선수들은 물론, 감독 본인도 낯선 전술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무색무취의 경기력을 보여준 끝에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얼굴들과, '교수님' 뱅거 감독의 지략이 서로 맞아떨어지며 아스날은 다시 진화하고 있다. 개막 직후, 서로간의 호흡과 투쟁심의 결여로 리버풀에게 0-4 대패를 당했지만 이후 아스날은 조금씩 새 옷에 적응해갔다. 자유계약으로 합류한 세아드 콜라시나츠가 왼쪽 윙백과 중앙 수비수 자리를 오가며 수비 안정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자연스럽게 중앙 수비수 슈코드란 무스타피와 로랑 코시엘니의 수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각자 담당할 영역이 줄어들자 그만큼 집중력이 올라갔다.

연계와 공중볼 다툼에만 능했던 올리비에 지루 대신 만능형 공격수에 가까운 라카제트가 원톱 자리를 차지했다. 지루보다 발이 빠른 라카제트가 최전방에 서자 공격의 템포가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지루가 보여주지 못한 동물적인 움직임을 라카제트가 가지고 있었다. 지루와 함께라면 한정된 패턴 밖에 보여주지 못했던 외질과 산체스가 덩달아 살아났다. 두 선수 모두 공격 작업에서 많은 동료보다는 치명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한 명을 선호한다. 스리백 가동을 위해 공격진에서 한 명이 줄었지만 오히려 플레이가 빨라지고 군더더기가 없어졌다.

이번 경기가 아스날의 그런 변화를 가장 긍정적으로 보여줬다. 라카제트는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토트넘 수비라인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결국 전반 41분 산체스의 득점을 어시스트했고, 후반 18분 홈 팬들의 합당한 박수 세례를 받으며 교체 아웃 되었다. 그 밑의 외질과 산체스 또한 팀의 전방압박 이후 이어지는 속공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외질은 무스타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고, 산체스는 직접 득점을 기록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MOM)로 선정되었다.

MOM은 산체스의 차지였지만, 승리의 진정한 공신들은 수비수들이었다. 드디어 스리백의 수비 방식을 이해한 모양새였다. 세 중앙 수비수 중 특히 무스타피와 코시엘니가 경쟁하듯 토트넘의 공세를 막아냈다. 각각 걷어내기를 14, 11차례씩 기록하며 경기 내내 케인과 알리를 완벽하게 견제했다. 그간 최고의 골 결정력을 보여온 케인이지만 공 자체를 잡질 못하니 소용이 없었다. 아스날이 시즌 중 가장 완벽한 수비를 보인만큼, 토트넘은 올 시즌 중 최악의 공격력을 보였다.

후반 30분 페르난도 요렌테와 손흥민이 답답했던 토트넘의 환기를 위해 투입되었으나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마우시리오 포체티노 감독은 여전히 경기 중 순발력 있는 대처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아스날이 경기 내내 맹렬한 중원 압박을 시도하는 마당에, 좀 더 일찍 손흥민과 세르지 오리에 투입으로 측면에서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포체티노 감독 입장에서는, 아스날이 설마 전반 15분간 보여준 압박을 경기 내내 시도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간 아스날이 그럴 만한 체력과 열정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날이 달라졌다.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그에 걸맞는 승점 3점을 쟁취했다. 드디어 토트넘과의 승점 차이는 1점차로 좁혀졌다. 빅6 중 가장 의욕이 없어보이던 아스날이 제일 먼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젠,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차지할 주인공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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