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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19] 필리핀 베스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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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바야 코브는 수빅만 해안가에 조성된 코스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인구 1억이 넘고 7천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필리핀은 골프에서는 개방되어 있지 않다.

필리핀은 비행 시간 4시간 안쪽에다 물가가 저렴하고 골프 비용이 저렴하다. 캐디에 더해 우산을 받쳐주는 엄브렐러걸까지 있고, 다양한 즐길거리가 넘쳐나 한국 골퍼들이라면 한두 번쯤 다녀온 경험이 갔다. 하지만 미모사, 이글릿지, 말라라얏, 썬밸리 등등 한국인들이 가본 코스는 빤하다. 클락, 세부, 마닐라 등에서 한국인이 가는 골프장은 제한적이다.

필리핀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골프 여행객에게 문을 여는 회원제 코스 자체가 적다. 필리핀에서 1913년에 아시아 최초의 정규 골프 대회인 필리핀오픈이 열렸고,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 미국식 문화와 생활 양식이 일찍 자리잡은 필리핀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의외다.

필리핀의 골프장 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2015년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94곳이다. 하지만 이중에 절반 정도만이 필리핀국립골프협회에 공식 골프 시설로 등록되어 있다. 나머지 절반은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리조트에 속해 있기 때문에 협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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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골퍼들이 즐겨 찾는 코스에 외국인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코스에는 필리피노가 거의 찾지 않는다. 그래서 자국 골프협회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필리핀의 최상위권 코스는 외국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폐쇄적인 회원제가 대부분이다. 필리핀의 부호, 권력자들이 회원이면서 골프장을 그들의 사랑방으로 활용한다.

필리핀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건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미국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스페인과 일본 등 외세의 지배를 오래 받으면서 자기의 사적 공간과 재물을 지키려는 마음이 공고해진 결과 오늘날의 필리핀의 폐쇄적인 골프 문화를 낳았다.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모험가 마젤란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항해하면서 1521년에 필리핀을 발견했다. 이후 스페인은 필리핀을 377년간 식민지로 지배했다. 1898년에 필리핀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미국-스페인(미서) 전쟁 결과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영어는 공용어로 정착됐다. 1941년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으로 인해 이듬해 1월부터 1945년까지 4년간은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 1946년 7월4일에 가서야 필리핀은 4세기에 걸친 외세의 시달림에서 해방된다. 이처럼 강대국 지배기에 골프는 일찍부터 도입되어 보급되었으나 그건 상류층에만 국한되는 레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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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라뮤로스 15번 홀, 오른쪽으로는 옛날 성곽 건물이다. 핸디캡 12라는 캐디 솔로몬이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역사 오랜 코스 마닐라-인트라뮤로스
필리핀에서 역사가 오래된 골프클럽은 마닐라 도심 한 가운데 하버드로드 포브스파크에 위치한 마닐라골프&컨트리클럽이다. 1901년 개장했으며 1913년에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필리핀오픈을 개최했다.

회원권 가격이 4천만페소(10억원)에 이를 정도로 필리핀에서는 가장 비싼 필리핀 상류층의 사랑방이다. 하지만 마닐라G&CC는 애초 코스가 있던 자리가 아니라 1949년에 현재의 도심인 메카티의 윌리엄 매킨리 주변으로 옮겨지면서 파72에 6355야드의 18홀 코스로 새로 지어졌다. 또한 10년 뒤인 1959년에는 컨트리클럽개발사에 의해 파71 6325야드로 줄어들고 옆으로는 폴로 스포츠 센터도 들어섰다. 클럽의 역사성에서는 가장 오래지만 코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다.

현존하는 필리핀의 가장 오래된 골프코스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스페인 점령기의 성채 옆에 지어진 인트라뮤로스 골프장이다. 1907년 설립된 원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110년은 된 코스다. 파식 강을 따라 스페인의 초대 레가스피 총독이 거주하던 산티아고 요새가 있었다. 요새를 따라 스페인식 도심인 인트라뮤로스가 있고 그 안에 400년된 유네스코 문화유산 세인트오거스틴 성당과 마닐라 대성당도 자리한다.

골프장은 성벽을 따라 원형으로 흐르는 구조다. 18홀이지만 파66에 전장 4326야드로 아주 작다. 그래도 블루, 화이트, 레드티까지 3개의 티잉 그라운드를 갖추고 있다. 마닐라에서 유일하게 야간 골프가 가능한 곳이어서 7시까지 티오프 할 수 있다. 그린피는 1500페소(4만원)에 불과하다. 캐디피와 풀카트 대여는 400페소에 퍼블릭이니 여행객이 이용하기에 좋다. 코스 관리는 허술하고 그린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2시간 반 정도의 라운드가 즐겁다. 샤워장과 라커룸, 레스토랑까지도 갖추고 있다.

언제 찾아가도 바로 기다렸다가 라운드 나가는 편의성이 뛰어나다. 지난해말 마닐라에 머물던서 인트라뮤로스를 찾아 나 홀로 라운드를 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의 캐디는 핸디캡이 10이라고 했다. 여기서 20여년을 먹고 산 덕에 내 볼이 어디로 갔는지 훤히 꿸 정도였다. 코스가 짧아서인지 뛰어난 캐디의 도움 덕인지 나는 오랜만에 훌륭한 스코어를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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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엘레나는 친환경을 우선으로 하는 필리핀 최고의 코스다.


산타 엘레나 1위, 안바야 코브 급부상
필리핀에서 최고의 코스는 뭐니뭐니해도 산타 엘레나(Sta. Elena)골프클럽이다. 마닐라에서 하이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반을 내려가면 산타로사 공업지대 옆에 사탕수수 농장이던 곳에 골프장이 위치한다. 1993년에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가 설계를 맡아 개장한 이래 27홀 중에 마킬링-바나하우 18홀이 대표 코스다. 지난 2005과 2009년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미국 제외 세계 100대 코스’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코스 및 수질 관리 등에서 이 코스는 친환경적이다. 27홀의 코스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평화롭다. 페어웨이를 지난 옆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유일하게 자연 환경을 중시하는 세계 기구인 오두본(Audubon) 소사이어티에 가입되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또한 이곳 클럽하우스 음식은 필리핀에서 손꼽힌다. 싱가포르 출신의 셰프가 정성들인 하이난 치킨 라이스는 일품이다.

코스 측면에서 보면 드라이버 샷에서의 보상과 처벌의 구분이 명확하다. 또한 명실상부 필리핀을 대표하는 이 골프장은 이나라에서 가장 앞선 골프장 운영원칙을 지키고 있다. 주니어 골프를 육성하는 데 열심이다. 필리핀 여자국가대표를 지낸 마리 그레이스 골프 디렉터는 “주말이면 프로들이 회원에게 다가가 편하게 레슨을 해주고 회원 가족들이 오면 반갑게 골프를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커리어를 가진 그녀는 함께 라운드하면서도 친절하게 코스를 안내해주었다. 총지배인인 주니 A.레데스마 3세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짧고 강렬한 한 마디로 산타 엘레나의 위상을 설명했다. “주변에 있는 좋다는 골프장 지배인들이 다 내 밑에서 배운 친구들이지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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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엘레나는 <골프다이제스트>로부터 '미국 제외 세계 100대 코스'에 두 번 들었음을 입구에 걸어두고 있었다.


전 세계 각국 베스트 코스를 평가하는 톱100코스(Top100golfcourses.com)에 따르면 필리핀의 2위는 산타엘레나에 이웃한 더 컨트리클럽이다. 선수 출신인 톰 와이스코프가 설계를 맡았고 2005년에 개장한 코스다. 전장이 7650야드여서 필리핀에서 가장 길고 어려운 코스로 악명높으며 지난해 필리핀오픈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곳은 필리핀의 국가대표 골프팀 훈련 코스이기도 하다.

필리핀에서 3위는 역시 마닐라 남쪽에 위치한 셔우드힐스로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70km정도 떨어져 있다.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코스로 전장 7277야드로 꽤 길다. 아름다운 조경으로 유명하며 페어웨이가 마치 양탄자를 걷는 느낌이 든다.

최근 급 부상하는 코스는 마닐라 북쪽 클락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의 수빅만 해안가에 조성된 안바야 코브다. 회원제인 안바야코브골프&스포츠클럽은 아얄라그룹에서 운영한다. 파72 전장 7200야드의 챔피언십코스는 마운틴-시사이드 코스로 나뉜다. 후반 10번 홀부터 13번 홀까지 바다를 향해 나가고 돌아오는 홀 흐름을 갖는다. 해양 레포츠와 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어 한국인들의 골프 관광지로도 최근 급성장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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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이따이 하일랜드 13번 홀은 엄청난 내리막을 가진 장쾌한 홀이다.


전통 명문 왁왁, 시원한 코스 하일랜드
마닐라골프클럽이나 인트로뮤로골프장처럼 역사가 오랜 코스 중에 최고는 마닐라 도심에 위치한 36홀의 왁왁골프클럽이다. 톱100골프코스 순위에서 이스트 코스는 8위에 선정됐다. 1930년에 윌리엄 쇼우의 설계로 지어진 왁왁은 애초 코스를 지을 때 주변에 많이 서식하던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를 본따서 코스 이름을 지었다. 1977년에 월드컵이 열렸고, 2012년에 아시안투어가 열리기도 했다. 이 코스는 지난 1975년에 한국의 안양컨트리클럽이 해외 회원 교류 확대를 위해 가장 먼저 제휴를 맺은 골프장이기도 하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를 가야 하는 피파시티의 말라라얏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27홀 골프장 마운트말라라얏은 해발 365m 고원에 자리해 선선한 기후가 장점이다. 코스 곳곳에 워터 해저드가 코스를 따라 조성되어 청량감을 준다. 주변 산에서 이름을 따온 마쿨룻, 말리푸뇨, 루보 코스가 제각각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마쿨룻 7번 홀은 그린 옆으로 폭포가 조성된 세미 아일랜드 홀로 <세계 500대 홀>책자에도 소개됐다. 한국인들에게는 리조트를 갖춘 코스 관리 좋은 골프장으로 여겨진다.

더운 필리핀에서 더위 걱정없이 라운드를 즐기고 싶을 때면 필리핀의 관광지인 따가이따이의 하일랜드코스가 제격이다. 해발 700~1000m 마클린 산 꼭대기에 코스가 만들어졌다. 리차드 비글러가 코스를 설계했으며 18홀에서 대부분의 홀이 아래를 보고 내려치는 홀이다. 원온이 가능한 파4 내리막 홀도 있다. 9홀을 마치면 차량을 타고 클럽하우스로 올라와야 할 정도다. 하일랜드 밑으로 미들랜드는 자매 코스다.

넓은 페어웨이를 자랑하지만, 구력 좀 있다 하는 실력자들은 좁은 페어웨이일지라도 쫄깃하게 승부를 가리는 하일랜드를 선호한다. 지난해말 함께 라운드한 큰별 형님은 이곳 VIP회원이다. 성격은 급하지만 인심이 후해 직원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달리 달리(빨리 빨리)’하기만 하면 캐디나 직원이 척하니 알아듣고 코코넛 주스건 물수건이건 재깍 재깍 대령한다. ‘공기 좋고 시원해서 여기가 필리핀 최고’라고 말한다. 홈그라운드라서 내기를 해도 거의 잃지 않고(나는 그의 밥이었다), 달리 달리만 하면 뭐든 일사천리로 해결되니 그에게는 필리핀 최고일 듯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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