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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상식백과사전 100] 한국의 골프장 설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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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한국 코스 설계가 송호 송호골프디자인 대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한국에서의 코스 설계 역사는 반세기가 넘는다. 초창기엔 일본 설계가가, 80년대부터는 미국계 설계가가 밀려들며 수많은 코스가 만들어졌다. 외국의 설계가들과 실시설계와 공사 단계에서 부대끼며 역량을 축적한 한국 설계가들은 2000년대 이후 서서히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국내 코스수가 5백 곳을 넘으면서 요즘은 국내 골프장 신설 열기가 사라졌고, 코스 설계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

코스 설계 1세대
국내 코스 설계는 처음에는 선수 출신이던 연덕춘에게서 시작됐다. 6.25전쟁으로 망가진 군자리(현재 서울대공원)의 서울CC를 1954년에 복원한 건 코스 설계라기보다는 기억에 의한 복원에 가깝지만 1966년에 한라산 자락에 조성한 9홀 제주CC는 분명 연덕춘의 설계작이었다.

토종 전문 설계가의 등장은 80년대 장정원(장골프장연구소), 김명길(필드콘설탄트기술사사무소), 임상하에서부터다. 이들 3인방이 국내 설계가 1세대이며, 1.5세대를 지나 오늘날 코스 설계가 2세대에 이르렀다.

장정원 소장은 66년 태릉 육사골프장 9홀 공사부터 코스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육사와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로 육사 토목 조교수를 지내면서, 육군 골프장을 주로 설계했고, 뉴서울, 중문, 남부, 서서울, 베어크리크 등 국내 32곳의 코스 설계를 맡았다. 60여 건은 레이아웃만을 맡는 기본 설계에 참여했다. 그의 설계 철학은 ‘보기 플레이어가 즐기는 데 지장 없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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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길 필드콘설탄트 대표.


장 소장이 경주보문CC와 육군 골프장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다면, 84년 통도CC를 시작으로 공군 골프장에서 영역을 넓힌 설계가는 김명길 소장이다. 공군사관학교와 서울대 토목과를 나온 그는 기흥, 자유, 강남300, 춘천, 마우나오션 등 국내외 80여 개 코스 설계 작업에 참여했으며, 88년 필드콘설탄트사무소를 개업한 이래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작고한 임상하 소장은 1세대 중에서도 비교적 늦은 80년대에 코스 설계에 뛰어들었지만, 조형미에 치중하는 일본풍 코스를 탈피하고, 코스 설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데뷔작인 뉴서울 북 코스를 비롯, 파인크리크, 코리아, 지산, 천안상록 등 73개 코스를 설계했다. 토목 전문가이면서도 코스의 예술적인 가치와 조형미를 중시한 설계가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권동영, 임상신 등 그의 설계 철학을 잇는 후배 설계가가 있다.

연배로는 1세대에 속하는 골프 선수 출신 설계가는 김학영(그린패밀리디자인)이다. 일본에서 코스 설계를 배운 김 소장은 86년 경기 안산의 제일CC를 시작으로 경기 포천의 일동레이크GC, 제주도의 크라운CC, 테디밸리GC 등을 설계했다.

외국인 설계가들
국내에서는 연덕춘이 유일하게 설계를 하던 이면에 일본인 설계가가 주로 초청됐다. 1963년 경기도 고양시에 개장한 서울한양은 연덕춘과 함께 야기 다케오가 참여했다. 68년 개장한 경기 부곡의 안양베네스트와 84년의 경남 통도의 통도CC는 미야자와 조헤이가 설계했다. 71년 개장한 경기 성남의 남서울은 이노우에 세이치, 75년 개장한 충남 아산의 도고CC와 84년 개장한 경기 성남 한성CC는 가토 후꾸이치였다. 이들 일본인들은 투 그린 코스에 골프장을 일본식 정원처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뒀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의 정원형 코스보다는, 미국식 원 그린의 챌린징한 코스가 선호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로널드 프림이 미국계로는 처음 국내에 진출했다. 주로 아시아에서 많은 코스를 설계한 프림은 83년 용평리조트 9홀을 시작으로 93년 아시아나, 96년 진주CC, 2001년 클럽나인브리지 등의 작품을 남겼다. 프림은 미국 본토보다는 아시아권에서 이름 높은 다작(多作) 설계가다. 65개국에 180여 개의 코스에 참여했다.

프림이 만든 골프플랜사의 파트너 설계가이던 데이비드 데일(David Dale)은 나인브릿지가 ‘세계 100대 코스’에 드는 등 국제적으로 부상하면서 프리미엄이 붙었다. 명문 코스로의 진입을 노리는 재벌 오너로부터 엄청난 설계비를 받고,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 아일랜드 등을 잇따라 수주받아 만들어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는 부친 RTJ 시니어의 후광을 업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으면서 국내에도 많은 코스를 설계했다. 89년 개장한 용평을 시작으로 오크밸리, 안양CC 리노베이션, 제주 롯데스카이힐, 오스타리조트, 마지막 작품인 레인보우힐스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레인보우힐스는 동부 김준기 회장의 삼고초려 끝에 엄청난 대접을 받으면서 설계를 마쳤다. 원래 문학도를 꿈꿨던 그는 시를 지어 레인보우힐스에 헌정했으니, 그만하면 설계 인생의 화룡점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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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클라우스는 송도 잭니클라우스코리아 뿐 아니라 한국에 7개 골프장을 설계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국내 다수의 코스 설계에 참여했다. 휘닉스평창(구 휘닉스파크)를 시작으로 가평베네스트, 송도의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 블루마운틴은 시그니처 코스이며, 스카이72 오션 코스, 동여주, 제주도의 우리들 등은 니클라우스디자인 팀에서 설계했다. 그의 설계 철학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깃대가 보여 홀 전략을 티에서부터 짤 수 있도록’하는 것이다.

근대 코스 설계에서 촉망받는 피트 다이가 세운 다이디자인은 아들딸 2대에 이르러 아시아에서의 신규 코스 수요 증가로 꽃을 폈다. 아들인 페리 다이는 충남 천안에 우정힐스, 캐슬렉스제주 코스를 남겼고 딸인 신시아 다이는 이븐데일, 여주에 페럼클럽을 설계했다. 페리 다이는 아버지 다이의 설계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아 우정힐스 13번 홀, 캐슬렉스제주 17번 홀을 아일랜드 그린으로 조성했다. 코스에 관심 있는 열성 골퍼들은 이 홀과 미국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TPC쏘그래스 17번 홀을 연관짓는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JMP디자인의 브라이언 코스텔로가 참여한 블랙스톤이 제주도와 이천에서 개장했고 퍼블릭 코스 360도컨트리클럽도 조성됐다. 코스텔로의 특징은 그린 조형을 계단처럼 2, 3단의 윤곽을 뚜렷하게 살리는 개성이 유명하다.

그밖에 세인트앤드루스 인근 킹스반스를 통해 모던 링크스의 전형을 제시한 카일 필립스는 남해의 리아스식 절경에 사우스케이프오너스를 설계했고, 미국서 현대 코스 설계의 대세였던 톰 파지오의 형인 짐 파지오가 이천에 사우스스프링스, 아들인 톰 파지오 2세가 여주에 트리니티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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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영 설계가는 미학적인 코스 설계로 정평이 나 있다.


젊은 국내 설계가들
전문 설계가 1세대가 장정원, 임상하, 김명길이었다면 연배는 그보다 아래지만 코스 설계 경력이 뒤지지 않은 1.5세대가 송호(송호골프디자인그룹), 권동영(권동영골프디자인연구소), 이재충(서원레저콘설탄트), 서우현(장원골프엔지니어링), 성치환(인성골프코스설계연구소) 등이다.

송호 대표는 양평의 더스타휴, 거제도의 드비치, 제주도의 세인트포, 충주 킹스데일 등 80여 곳을 설계했다. 군대 장교 선배였던 김명길 씨가 세운 필드콘설탄트에 입사해 13년간 설계와 경영을 맡았고, 2002년 송호골프디자인그룹으로 독립했다. 그의 설계 스타일은 페어웨이는 넓게 만들어 티 샷이 쉽게 하되, 다양한 공략 루트를 만들어 놓는 한국식 전략적 코스를 다수 개척했다. 지난 2012년 4월 한국코스설계가협회를 만드는 등 국내 코스 설계자들의 자립과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표 설계가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권동영 소장은 마이다스밸리, 블루원상주, 힐드로사이 등에서 보듯 미적인 요소를 살리는 코스 설계에 뛰어나다. 고사목(枯死木)을 코스 레이아웃 안으로 끌어들여 핸디캡이나 코스의 일부로 활용하거나 장식미를 더하는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양 공대 출신인 이재충 대표는 서원밸리, 파인리즈 등을 설계했다. 아일랜드 티잉 그라운드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서우현 대표는 에머슨남해, 금강산에머슨 등 에머슨퍼시픽이 운영하는 코스들을 주로 설계했다.

연배와 경력에서 그보다 젊은 2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은 스카이72 하늘 코스와 이천마이다스를 설계한 노준택(에이엠엔지니어링), 힐데스하임과 서라벌CC를 설계한 임상신(임골프디엔씨), 오렌지듄스의 이현강(오렌지엔지니어링), 현대더링스의 백주영(HLE코리아), 노벨, 청통CC를 설계한 유창현(R&H)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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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택 설계가는 젊은 세대로 이천마이다스, 스카이72하늘코스를 설계했다.


노준택 이사는 베어크리크의 크리크 리노베이션을 맡아 원형을 깨지 않으면서도 개울을 홀 전면에 등장시켜 색다른 코스로 변모시킨 점에서 효율적인 코스 리노베이션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설계업에서 보기 드문 여성인 임상신 소장은 남성과 여성의 다양한 골퍼의 눈높이를 모두 고려하는 섬세한 설계로 주목된다.

국내에 골프 코스는 현재 5백 곳이 넘는다. 80년대 초반까지 일본 설계가가 주도했고, 그로부터 20여 년은 미국계 설계가가 서구적인 스타일의 코스 트렌드와 양식을 보급했다. 동시에 80년대부터는 토종 설계가가 경험을 축적하면서 작품을 냈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해외에서도 이름 높은 명 코스 설계가가 한국을 찾았고, 동시에 국내 설계가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해외로 사업 영역을 넓히거나 외국 설계가와 경쟁하는 단계에까지 올랐다.

2008년을 분기점으로 회원권 가격이 대세 하락세에 접어들고 국내 코스 개장 속도가 급격하게 줄면서 국내 설계가들이 활동할 무대가 급격히 줄었다. 최근 몇 년 새 개장한 골프장은 이전부터 추진되던 곳이거나 혹은 해외 설계가들이 맡아서 하는 곳들이다.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 이머징 마켓에서의 코스 설계 수요가 있지만 이마저도 해외 유명 설계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설계가들이 제대로 경력을 쌓기도 전에 코스 건설 붐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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