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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23] 가토 회장과 산토리레이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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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가토 히로토시 회장(왼쪽 세번째)이 함께 라운드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 첫번째가 골프장 사장, 두번째가 경영수업을 받는 가토 사토시 상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일본 고베는 상공업 지역에 오사카와 인접한 국제항구 도시로 19세기에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은 10년 뒤인 1868년 고베항이 해외에 문을 열자 영국을 포함한 서구 열강이 영사관을 대거 설립하면서 밀려들어왔다.

원산에서 영국인들에 의해 한반도에 처음 골프장이 만들어지듯 일본은 고베에서 1903년 영국인 아서 H. 그룸에 의해 4홀 로코산(六甲山)골프장(오늘날의 고베골프클럽)이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그 뒤로 1920년에 나루오골프장이 창설되었고, 1931년에 아시아 최고 명문이라는 히로노 골프장이 개장하는 등 고베는 일본 골프의 발상지이자 명문 코스들이 모인 중심지다.

선수 육성이 운영 이념인 골프장
고베 내륙의 높고 평평한 산간 분지를 따라 골프장이 엄청나게 많지만 독특한 회원제 전통과 운영방식을 가진 골프장이 있다. 1975년 개장부터 거의 매년 프로골프 대회를 개최하는 로코고쿠사이(六甲國際)골프클럽이다. 7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산토리레이디스오픈의 전장이기도 하다.

히로노, 나루오 등은 오랜 전통과 폐쇄적인 회원제 코스의 역사를 쌓아 아마추어 골퍼들이 가볼 수조차 없는 로망이 되었다면, 로코고쿠사이는 정통 회원제지만 매년 큰 골프 대회를 열어 지역사회에 공헌한다. 골프장 자체가 ‘세계적인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국제 표준의 코스를 만드는 것’이라는 운영 이념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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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대회에서의 챔피언 이름과 트로피를 전시한 클럽하우스 2층 응접실.


36홀 중에 동코스는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고, 서코스는 그 옆에 부설된 9홀 퍼블릭을 합쳐서 돌아볼 수 있다. 애초 설계가는 가토 후쿠이치(加藤福一)인데, 한국에서는 1984년 개장한 한성, 도고, 천룡, 수원CC 등을 설계한 일본의 대표 설계가다. 페어웨이를 널찍하게 조성하는 게 그의 설계 스타일이다.

개장 20여년 뒤인 1996년 잭 니클라우스가 골프장을 리노베이션했다. 엄밀하게는 아들인 니클라우스 2세와 리 슈미트(중국 미션힐스 골프장 설계가)가 주로 참여했고 그린 잔디 초종을 벤트그라스로 바꾸고, 오늘날의 원그린 시스템으로 변경시키는 등 그린 주변 영역을 고쳤다. 조경 차원에서는 쭉쭉 곧게 뻗은 아메리칸(조지아) 파인을 대거 들여다 심어서 이국적인 느낌을 살렸다.

동코스(파72 7315야드)는 토너먼트 코스로 전장이 길고 페어웨이가 넓다. 반면 서코스(파71 6824야드)는 업다운이 크다. 해외 골퍼나 비회원의 경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 오전에 서코스에서만 부킹이 가능하다. 그린피는 한화로 20~30만원에 육박해 주변 골프장에 비해 비싸지만 그만큼의 코스 퀄리티가 유지된다.

골프장 오너는 가토 히로토시 씨다. 의사였지만 20여년 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골프장은 토요일이나 행사일이면 회원들이 클럽 재킷을 입고 다닌다. 클럽하우스 안에는 이곳에서 열린 대회 우승자들의 트로피를 든 사진이 빼곡하게 벽면을 차지한다. 우리가 찾은 날은 토요일이어서 클럽하우스에서 누가 회원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 회원들은 잘 관리된 빠른 그린을 선호해서 대회 기간이나 아닐 때 차이를 못 느끼도록 하는 게 골프장 코스 관리의 목표지요.” ‘마치 대회장에 온 것 같다’고 하자 대단치도 않은 듯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내용을 되새겨보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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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레이디스 몇달 전부터 코스 세팅에 들어갔으며 대회를 알리고 있었다.


골프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
큰 대회를 자주 개최하는 골프장이라서 그런지 로코고쿠사이는 항상 대회장의 분위기가 넘쳐난다. 한 해에 남녀 대회를 두 번 개최하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1999년에는 일본남자프로골프(JGTO)투어 재팬시니어오픈을 개최(우승 그레이엄 마시)했다. 2001년과 2003년에 먼싱웨어KSB오픈을 두 번, 2010년엔 아시아퍼시픽파나소닉오픈을 개최했다. 전통 어린 간사이오픈은 1979년부터 1982, 1986년까지 3회를 열었고, 메이저이자 내셔널타이틀인 일본오픈도 1983년과 2015년 두 번 열었다.

1983년 일본오픈에서는 이사오 아오키(현재 JGTO 회장)가 우승했고, 2015년 일본오픈에서는 사토시 고다이라가 우승했다. 당시 초청 선수였던 호주의 훈남 애덤 스캇은 17번 홀에서 드라이버 샷으로 원온시키기도 했다. “프로암에서 함께 라운드한 애덤이 드라이버로 원온하는 장면을 목격했지요. 장타자라서 그런가 감탄했는데 고다이라까지 원온하더니 결국 우승까지 하더군요. 그런 식으로 선수들이 코스를 새롭게 해석하는 걸 보면 즐거워요.”

프로 대회만 열리는 게 아니다. 1988년에 일본아마추어골프선수권, 2004년에 일본아마추어여자선수권을 개최해 14살 미야자토 미카가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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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산토리레이디스에서 우승한 김하늘.


2006년부터 매년 일본프로골프(JLPGA)투어 산토리레이디스오픈을 13년째 개최해오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주류회사이자 맥주 브랜드인 산토리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4일간 개최되고 총상금도 1억엔에 이르는 메이저급이다. 1990년에 처음 시작한 이래 고베대지진이 발생한 1995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됐다.

매년 큰 대회를 끊임없이 개최하는 이유가 뭔지를 물었다. 가토 회장은 3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좋은 코스를 회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둘째는 주니어 선수들을 육성해서 일본 골프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고, 세 번째는 우리와 사이가 좋은 산토리 그룹의 요청으로.”

산토리레이디스에서 한국 선수의 우승이 유독 많았다. 1996년에 원재숙이 우승컵을 처음 들었고, 2003년(13회)에 이지희가 우승했다. 2006년부터 록코국제로 옮겨진 뒤로는 2011년(21회)에 안선주, 2012년은 16살 아마추어 김효주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4년에 다시 안선주가 우승했고, 2016년에는 강수연, 그리고 지난해는 김하늘이 우승했다.

이 대회는 국내외 유력 아마추어를 초청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도 한국 국가대표 임희정을 비롯해, 태국, 필리핀, 뉴질랜드, 중국, 태국, 호주에서 7명과 자국 선수 5명 총 12명의 아마추어를 초청했다. 김효주가 우승한 것도 2012년 국가대표 자격으로 초청 출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한국 아마추어가 외국 프로 대회에 나가 우승해서 화제가 됐다. 2009년 초청 출전한 장하나는 당시 베스트 아마추어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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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토 아이를 전면에 내세운 산토리레이디스오픈 홈페이지.


갤러리 주차장 없앤 산토리레이디스
일본 골프의 아이콘인 미야자토 아이는 산토리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2001년부터 3년연속 이 대회에 초청되어 베스트 아마추어로 꼽혔고, 프로가 된 2004년엔 우승했다. 그리고 2003년 프로 데뷔부터 지난해 은퇴까지 무려 15년간 산토리의 후원을 받았다. 산토리는 지난해 은퇴한 미야자토를 위해 올해 대회명에 그의 이름을 붙였고, 미야자토는 이 대회의 앰배서더다.

올해도 디펜딩챔피언 김하늘을 비롯해 히가 마미코, 안선주, 신지애 등 120명이 출전하고 국내외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한다. 그래서 예전에 아마추어로 출전했던 선수들이 프로가 되어 이 대회에 나온다. ‘좋은 선수를 육성한다’는 산토리의 철학과 ‘좋은 선수를 위해 국제표준의 코스를 만든다’는 로코고쿠사이의 이념은 일맥상통한다.

산토리레이디스는 올해 색다른 시도를 한다. 지난해까지 갤러리들이 골프장을 찾던 (오토바이 포함)주차장을 없앴다. 대신 근처 2개의 전철역에 아침 7시부터 10분과 30분 간격으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로 했다.

산토리와 로코국제가 이처럼 결정한 이유는 자가용 방문자가 늘어날수록 환경에 이롭지 않고, 지역 주민과 인근 시설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안전사고와 긴급차량 통행 시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결과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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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홈페이지에 입점한 각종 먹거리에 대한 내용을 빼곡히 홍보하고 있다.


일본 골프 전문 칼럼니스트인 오상민 기자는 ‘일본 프로골프 대회장에서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갤러리 버스 승차장’이라고 지적한다. “주최사인 산토리는 일본 체육계에서도 주목받는 기업이다. 주류 회사지만 절주 운동을 오래 전부터 펼쳐왔고, 음악, 미술, 체육 분야 지원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갤러리 주차장 없는 대회장은 산토리이기에 가능하다.”

일본에서 갤러리 주차장 없는 프로 대회는 이 뿐만이 아니다. 7월에 이바라키현 이글포인트골프장에서 열리는 사만사타바사걸스레이디스와 10월 효고현 마스터즈골프클럽에서 열리는 노부타그룹마스터즈GC레이디스도 대회장에 갤러리 주차장이 없지만 구름 관중이 몰린다. 오 기자는 “일본 역시 숱한 시행착오 끝에 ‘내가 불편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산토리레이디스가 열리면 로코고쿠사이는 동서 코스를 섞어 동 9홀(아웃)-서 9홀(인 코스 합계 파72 6525야드)로 개최한다. 36홀이라면 절반을 나누어 영업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골프장은 대회 개최에만 집중한다. 올해는 이밖에도 런치, 쇼핑, 이벤트 플라자를 만들어 운영한다. 고베의 맛집을 불러 입점시키는 한편 그들의 연락처까지 대회 홈페이지에 걸어 홍보한다.

훌륭한 스폰서와 진지한 골프장이 만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매년 추가된다. 골프의 미래를 생각하기에 나올 수 있는 실천이다. 가토 회장은 진심을 가지고 골프장을 운영하는 선구자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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