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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26] 2020 도쿄올림픽 개최지 가스미가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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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건너는 챌린징한 파3 가스미가세키 동코스 10번 홀.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2020년 여름이면 일본의 가스미가세키(霞ヶ關)컨트리클럽 동코스에서 올림픽 골프 게임이 열린다. 나는 최근 이곳 회원인 마쓰모토 에이치 씨의 초청으로 라운드를 했다.

올림픽을 1년 반 넘게 앞둔 도쿄에는 올림픽 로고가 넘실거렸다. 맥주잔까지 오륜마크가 찍혀 있을 정도였다. 골프 게임이 열리는 전장은 도쿄가 아니라 북쪽 사이타마(埼玉)현 가와고에(川越)시에 위치한다. 그곳 도로에도 올림픽 로고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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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열린 캐나다컵(오늘날 월드컵) 포스터. [사진=가스미가세키 홈페이지]


월드컵의 영광을 올림픽으로
도쿄올림픽에서 도쿄가 아닌 가와고에에 있는 이 골프장에서 골프경기가 열리는 건 왜일까? 도쿄 도내에도 골프장이 있고, 도쿄만을 따라 친환경 퍼블릭 골프장도 몇 년 전에 개장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를 짐작하려면 1957년 10월24~27일간 가스미가세키골프클럽에서 열린 캐나다컵, 즉 지난 일요일 끝난 오늘날의 월드컵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일본은 급격하게 산업화를 이루면서 전후 재건에 성공했지만 세계 2차 대전 패전국이라는 인식으로 국민들은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런데 전 세계 최고 골퍼들이 모인 스포츠 이벤트에서 일본의 나카무라 토라키치, 오노 코이치가 미국의 샘 스니드, 지미 드마렛을 무려 9타 차이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일본에서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 특히 미국을 격파하고 이겼다고 큰 화제가 됐다. 우승 카퍼레이드까지 열렸을 정도였다.

당시 유명 스타인 피터 톰슨이 이끈 호주가 3위, 게리 플레이어가 출전한 남아공이 4위였다. 한국에서는 연덕춘-박명출이 출전해 꼴등(28위)을 했다. 당시의 캐나다컵 우승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서 골프장이 증설되고 골프 인구가 급증했다. 최대 2400여 곳에 이르렀던 일본 골프장의 증가는 당시 캐나다컵(오늘날 월드컵) 우승이 큰 역할을 했다.

이후에 일본은 1964년 하계 올림픽을 열면서 세계 스포츠 무대의 중심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따라서 56년 만에 도쿄에서 올림픽을 다시 개최하면서 일본 골프계는 골프 중흥기가 예전 영광의 자리에서 재현되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이곳을 개최지로 선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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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깔린 클럽하우스를 나와 언덕을 오르면 연습그린이 펼쳐지고 1번 홀로 향하게 된다.


알리슨의 전략에 파지오의 터치
가스미가세키는 일본의 명문 골프장을 대표하는 전통과 시설을 갖췄다. 후지타 킨야와 일본 제일의 골퍼였던 아카보시 시로가 설계해 1929년 10월6일 개장했고, 여기에 영국의 코스 설계자 찰스 알리슨이 다듬어 놓았다. 일본에서는 최초의 36홀 회원제 골프장이기도 하다. 1957년 캐나다컵(월드컵)을 개최한 것은 물론 내셔널타이틀인 일본오픈을 1933년부터 1956년, 1995년, 2006년까지 네 번 개최했으며, 1999년에는 일본여자오픈, 2010년에는 아시아아마추어챔피언십(AAC)도 개최했다.

1930년대에 일본에 머문 알리슨은 일본 최고로 꼽히는 히로노와 카와나 등 여러 코스를 만들었고 이들은 오늘날 대부분 명문 클래식 코스로 여겨진다. 턱이 높게 조성된 그의 벙커 제작 스타일은 ‘아리손 벙커’라는 일반 명사화 했다.

알리슨은 다소 밋밋하던 코스에 여러 벙커를 추가했는데 그중에 파3 10번 홀이 대표적이다. 189야드(챔피언티 기준)의 호수를 건너 치는 좁은 그린을 가진 홀에 벙커를 신설해 그린을 가로막게 했다. 단순히 힘만으로 그린을 공략하는 게 아니라 파3 홀이라도 전략을 써야 하도록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아예 물만 넘길지, 혹은 과감하게 온 그린을 시도할지를 판단하게 했다. 알리슨의 작업 후에 동코스는 전략성 높은 코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설립 이후로 투그린 시스템을 고수하던 이 코스는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2016년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코스 설계가로 꼽히는 톰과 로건 파지오 부자를 불러들여 개조하기에 이른다. 파지오 부자가 한 것은 투 그린을 원 그린으로 자연스럽게 바꾼 것이 핵심이다. 게다가 파지오는 9번 홀과 14, 18번 홀은 거리를 달리 이용하도록 티잉 그라운드를 추가했다. 상황에 따라 파5 14번 홀은 596야드가 되기도 하고 632야드가 되기도 한다. 요즘 선수들의 늘어나는 비거리를 대비해 선택형 티잉 그라운드를 조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표적인 전 세계 골프장 정보사이트인 영국의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m)에 따르면 가스미가세키 동코스(파71 7466야드)를 일본에서 6위, 아시아에서는 13위로 높게 평가했다. 이웃한 서코스(파71 6580야드)는 일본의 최고 설계가로 꼽히는 이노우에 세이치가 설계했고 2000년에 카와타 타지오가 코스를 리노베이션했는데 일본에서는 17위, 아시아에서는 42위로 역시나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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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홀 페어웨이 오른쪽에 있는 아베 벙커.


아베 벙커와 트럼프 햄버거
코스에 들어가려면 클럽하우스를 나와 높은 단에 오르듯 무사시노 언덕에 올라야 연습 그린을 밟게 된다. 코스는 대체적으로 높은 소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점이 특징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중간에 큰 벙커들이 요소요소에 위치해 잘못된 샷을 막아서고 있으며 그린 주변에는 다이내믹한 벙커들이 빗겨나가는 샷을 잡아챈다. 그리고 그린은 대체적으로 거북등처럼 볼록한 형태여서 어프로치 샷의 정확성이 부족하면 정규 파온을 놓치기 십상이다.

함께 라운드한 마쓰모토씨는 하와이와 일본을 오가는 사업가로 젊은 시절엔 스키를 잘 탔다고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식을 좋아해서 별명이 ‘김치찌개상’이었다고 말하는 호인(好人)이었다.

1번 홀을 지나는데 그가 오른쪽 깊은 벙커를 가리키면서 ‘아베 벙커’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5일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때 아베 신조 일본총리, 유명 일본 골퍼 마쓰야마 히데키와 동반 라운드 한 곳이 바로 이 골프장이다.

손님을 접대하는 입장인 아베 총리는 긴장한 탓인지 세 번째 샷이 이 벙커에 빠져버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쓰야마는 두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린 상황이라 아베 총리의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벙커샷을 하고 서둘러 나오다가 높은 턱에서 벌러덩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해외 토픽에 났던 바로 그 해프닝의 장소였다. 파지오의 리노베이션 때문인지 벙커 깊이는 충분히 1.5미터 이상은 되어보였다.

“그날 이후 이 골프장에 ‘트럼프 햄버거’ 메뉴도 새로 생겼습니다. 주말에만 팔 걸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9홀 마치고 식사를 하러 클럽하우스에 들러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하지만 원래 햄버거 메뉴가 없었던 이 골프장은 급히 주방장이 햄버거를 만들어서 내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주말에만 주문 가능한 트럼프 햄버거는 1500엔에 판매된다고 했다. 총리와 트럼프의 라운드 에피소드에서 ‘아베 벙커’, ‘트럼프 햄버거’가 등장한 것이 재미나다. 세월이 지나면 이또한 골프장 역사의 한 부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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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가세키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쓴 회원 마쓰모토 씨는 친절하게 코스를 설명해주었다.


장중한 멤버십 골프장
2번 홀은 파4인데 챔피언티 전장이 381야드로 짧다. “이 홀은 지난 대회에서 원온 챌린지가 열리는 홀이지요.” 요즘 투어의 트렌드가 90년 된 오랜 골프장에도 이렇게 응용되고 있었다. 3번 홀은 파4인데 459야드로 길었다. “원래는 파5 홀이었는데 이제는 파4 홀로 짧게 조정됐지요.” 그의 설명은 마치 코스 개조 현장에라도 있었던 것처럼 상세하고 위트가 넘친다. “제가 18년째 회원인데 파지오 리노베이션 이후로는 새로운 코스에서 라운드하는 것 같아요.”

마쓰모토씨의 모자를 보니 빨갛고 검은색의 방패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36홀 코스라서 회원들은 골프장에 오면 이름표를 모자 뒤에 붙이고 다닌다. 골프장 어디서건 모자의 이름표만 보면 누가 어떤 회원인지 금방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310명의 회원으로 시작된 이 골프장의 회원은 이젠 그보다 훨씬 많아졌다. 원래 남자들만 주말 정회원권을 보유했으나 지난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올림픽을 앞두고 성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관을 바꿨다고 한다. 올 5월에는 이 골프장에서 여성 주말 정회원으로 3명을 받아들였다는 뉴스가 나기도 했다.

이 골프장에서는 ‘회원(멤버십) 선서’를 3개 항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첫째, 가족 일원처럼 멤버는 서로를 의지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기술을 보이기 이전에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야 한다. 셋째, 회원은 집에서처럼 코스에서 최고의 행동을 해야 한다. 이름표를 모자에 단 회원들은 이 선서를 한 골퍼들로 솔선수범할 자세를 갖춘 신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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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1층에 전화를 하는 부스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1992년 재건축된 골프장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는 코스가 한 눈에 조망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입구, 전화부스 등에서만 전화를 쓸 수 있도록 원칙을 정하고 부스를 만들어 두었다. 9홀 라운드에 걸리는 시간도 1시간50분으로 정해두고 있다. 내가 라운드한 평일도 꽤 많은 골퍼들이 골프장을 오가고 북적였으나 레스토랑에서나 로비에서 다들 조용하게 말하고, 연습그린에서도 조용히 열중하는 모습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전통 깊은 토너먼트 코스가 주는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가 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심정으로 한 샷 한 샷에 신중을 기했다. 올림픽을 여는 코스라서 그런지 그래서 올림픽 개최 코스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좋은 경험임에는 분명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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