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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혼란 잠재운 R&A와 USGA의 발빠른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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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가 선수 뒤에서 라인을 봐주는 행위가 올해는 중단된다.


규칙 조문만 봐선 애매할 때가 있다. 해석이 달려도 여전히 그렇다. 이럴 땐 판례가 말을 한다. 그런데 새 규칙이라면? 판례가 부족하다. 아예 없을 수도 있고. 이 때가 제일 고약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규칙을 지키는 것이고 어디서부터 규칙위반이란 말인가?

새 골프 규칙이 발효한지 한 달 하고 조금 지났다. 그 사이 새 규칙에 울고 웃는 선수가 여럿 있었다. 그 중 가장 아픈 속앓이를 한 선수는 누굴까? 그렇다. 중국의 리아호통이다. 2019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새 규칙을 어겨 2벌타를 받은 그 리하오통 말이다. 벌타를 받지 않았다면 단독 3위일텐데. 공동 12위로 밀렸으니 속이 얼마나 상할까?

리하오통이 벌타를 받은 그 조항은 새 골프 규칙에 들어가 올해부터 적용한 것이다. 캐디가 직후방에 서서 플레이어가 정렬하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는 조항이다. 조문만 정확히 따지면 캐디가 직후방에 있는데 플레이어가 스탠스를 취하면 2벌타를 받는다고 돼 있다. 퍼팅 그린에서는 예외라고 명시하고 있다. 퍼팅 그린이라면 캐디가 직후방에서 봐주는 채로 플레이어가 스탠스를 취했더라도 스탠스를 다시 풀면 벌타가 없다고. 물론 플레이어가 새로 스탠스를 취할 때는 캐디가 후방에서 비켜서야 한다. 리하오통은 바로 이 조항에 걸려 큰 손해를 봤다.

유럽 PGA 경기에서 이 일이 있고 난 뒤 바로 지난주에는 미국 PGA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일인지는 뉴스를 참조하기 바란다. 결국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나섰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해당 조항은 애매해서 명색이 경기위원인 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도 세계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두 단체가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더라니. R&A와 USAG가 조금 전에야 내놓은 조치란 ‘해당 규칙 적용에 대한 명쾌한 해석(Clarification)’이다. 규칙 자체를 손댄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해당 규칙을 바꾼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두 단체의 명쾌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한다’는 말 뜻을 분명하게 정했다. ‘스트로크를 하기 위해 볼에 다가서서 한 발이라도 디디면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한 것’임은 여전히 맞다. 그런데 ‘다시 발을 빼면 스탠스를 취한 것이 아니다’라고 본 것이다.

스탠스는 볼을 스트로크 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것이라는 근거를 댔다. 스트로크 하지 않았다면 스탠스를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든 근거다. 결국 스트로크 하지 않고 다시 발을 빼면 스탠스를 취소한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바로 ‘웨글링을 하다가 다시 뒤로 빠져 나오면 스탠스를 취한 것이 아니겠네?’라는 질문이다. 속으로 누군가 같은 질문을 했다면 골프 규칙에 상당히 조예가 있는 골퍼다.

두 단체가 내놓은 해석대로라면 스탠스를 취한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떠올려 보자. 캐디가 후방에서 봐주고 있는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스탠스를 취했다. 그리곤 샷을 하려고 웨글링을 한다. 이 때 캐디가 실수를 깨닫고 비켜 선다. 그리곤 소리 친다. ‘잠깐만’이라고. 플레이어는 놀라서 멈춘다. 그리곤 어떤 상황인지 깨닫고 스탠스를 푼다. 그리곤 다시 스탠스를 취한 뒤 샷을 한다.

벌타가 있을까? 웨글링까지 실컷 했는데? 그렇다. 벌타가 없다. 7일 새벽 두 단체(R&A와 USGA)가 이 규칙 적용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놓기 전에 내게 물었다면 다르게 답을 했을 것이다. 나는 벌타를 받는 줄로만 알았다. 왜냐고? 그렇게 교육 받았으니까. R&A가 대한골프협회(KGA)를 그렇게 교육했다. KGA는 내가 경기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그대로 전달했고. 그런데 실전에 적용하면서 문제가 생기자 R&A가 새 해석을 내놓은 상황이다. 조항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두 단체는 다른 한 가지도 분명하게 했다. 플레이어가 스탠스를 취할 때 캐디가 ‘의도적(deliberately)’으로 후방에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해석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플레이어가 정렬을 잘 했는지 봐주려고 서 있어야만 의도적이라고 본다는 얘기다. 우연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자세히 짚은 것은 시비를 없애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봐주다가 플레이어가 스탠스를 취하려고 하자 캐디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면? 이 때도 벌타가 없다고 해석했다. 두 단체는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서 설명했다. 플레이어가 스트로크를 하는 데 하필 캐디가 그 후방에서 벙커 정리나 디봇 잔디를 붙이는 일(코스를 보호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문제 없다. 홀에 바싹 붙은 볼을 탭인 할 때 캐디가 미처 자리를 뜨지 못했다면? 마찬가지로 괜찮다. 우산을 받혀줄 때는? 상관없다. 캐디가 홀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하느라 후방에 서 있다면? 괜찮다. 다만 예로 든 경우라도 플레이어가 스트로크 하기 위해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캐디가 알았다면 최선을 다해서 비켜 서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토를 달긴 했다.

경기위원이기 전에 프로 골퍼로서 나는 이 ‘명쾌한 해석’을 환영한다. 어쨌든 법은 분명해야 하니까. 그나저나 리하오통만 억울한 것 아니냐고? 지금이라도 벌타 취소하고 상금을 더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게 참 답하기 쉽지 않다. 이번에 발표한 예외 조항을 기준으로 따져봐도 벌타를 줄 수 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필 리하오통이 스탠스를 취한 다음에야 캐디가 빠지기 시작했다. 이 경우엔 리하오통이 스탠스를 풀었다가 다시 해야 했는데. 바로 스트로크를 해버렸으니 아쉽다.

이번에 두 단체가 내놓은 명쾌한 해석은 해당 규칙 원문 가운데 일부분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코스 어디서든 스탠스를 취했다가 풀면 괜찮다는 새 해석이 퍼팅 그린에서만 예외라고 명시한 조항과 어긋난다. 두 협회가 머지 않아 해당 조항을 손 볼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김용준 프로(KPGA 경기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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