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스포츠
  • [김용준 칼럼] 오욕을 딛고 일어선 거장 비제이 싱

  • 기사입력 2019-08-15 07:18
    • 프린트
    • 메일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이미지중앙
PGA 투어 역대 누적 상금 랭킹 1위가 누군지 아는가? 물어보나 마나 독자도 알 것이다. 타이거 우즈다. 랭킹 2위도 맞힐 수 있을 것이다. 타이거의 라이벌이라고 힌트를 주면. 그렇다. 바로 필 미켈슨이다.

그렇다면 랭킹 3위는 누굴까?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뱁새 김용준 프로도 몰랐다. 기록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바로 비제이 싱(Vijay Singh )이다. 인구가 채 100만 명도 되지 않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 출신. 늘 썬 캡을 쓰고 경기하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꺽다리 선수 말이다.

비제이 싱은 지금까지 PGA 투어에서 상금으로 7,100만 달러(약 862억 6500만원) 넘게 벌었다. 타이거 우즈 누적 상금 1억 1,800만 달러(약 1433억 7000만원)와 비교하면 어떤가? 대단한 선수 아닌가?

1963년 생인 싱은 지금은 주로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 뛴다. 뱁새 김 프로는 더골프채널코리아(IB스포츠)에서 PGA 투어 챔피언스 해설을 하면서 이따금 화면에 잡히는 그의 한 없이 부드러운 스윙을 본다. 그 때마다 ‘일품’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담곤 했다. 드디어 그의 얘기를 쓰기로 하고 기록을 뒤졌다. 그가 PGA 투어에서만 34승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뱁새는 자신의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다고 흡족해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자료를 찾아보다가 그에게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바로 오욕(汚辱)을 딛고 일어서서 인간 승리를 이뤘다는 사실을 말이다.

깔리만딴(흔히 보르네오라고 알고 있는 큰 섬) 북쪽 바닷가에는 ‘미리’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미리’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인 한자 ‘미리(美里)’를 그대로 읽은 것이다. 진짜다. 미리는 화교들이 유전을 개발하면서 모여든 곳으로 중국 문화가 많이 섞였다. 지명도 중국어가 그대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 속한 미리에는 ‘미리 골프 클럽’이 있다.

바닷가에 닿은 이 골프장은 경관이 수려하다. 이곳에 바로 비제이 싱의 눈물 어린 사연이 깃들어 있다. 1985년 인도네시아 오픈 2라운드가 끝났을 때다. 비제이 싱은 컷을 통과해 주말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그가 제출한 스코어 카드가 실제보다 한 타 적다는 것이었다. 점수를 부풀렸다는 얘기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그 대회에서 실격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시안투어는 그를 영구 제명했다. 비제이 싱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한사코 부정했다. 말레이시아 VIP의 아들인 마커(같은 조 선수로서 해당 선수를 감시하는 역할)가 스코어를 잘못 기록해 넘겨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그럴 수 밖에. 골프 규칙상 스코어에 대한 최종 책임은 플레이어가 진다. 당시 스물 두 살이던 비제이 싱이 마커가 실제보다 더 좋은 점수를 기록해 건넨 것을 알고도 ‘덥석’ 사인을 하고 제출했을 것이라고 뱁새는 짐작해 본다. 바로 한 해 전인 1984년 프로 데뷔 2년만에 말레이시아 PGA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올린 그였다. 첫 승을 거두고 막 청운을 꿈꿨을 청년은 투어 참가를 영구 금지한다는 결정을 받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한 순간 욕심으로 미래를 망친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눈앞이 깜깜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 없이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처지였다.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야 했다. 부양해야 할 가족까지 생긴 터였으니. 그런데 스코어를 속이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꼬리표가 붙은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겨우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미리 골프 클럽’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수 년간 헤드 프로로 일했다. 골프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다 보니 수입이 넉넉할 리 만무했다. 비제이 싱은 그 상황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칼을 갈았다. 빼어난 실력이 눈에 들었던지 후원자가 나타난 것은 기적이었다. 그는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시합에 나갔다. 흔히 ‘사파리 투어’라고 부르는 투어의 원조격이었다.

싱은 1988년 나이지리아 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이듬해 유러피언 투어 퀄러파잉 스쿨을 통과해 유럽으로 건너갔다. 건너가자 마자 볼보 오픈 챔피언십에서 투어 첫 승을 거뒀다. 몇 년간 경험을 쌓은 그가 PGA 투어로 건너간 것은 1993년이었다. 뷰익 클래식에서 연장전 접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면서 화려하게 루키로 데뷔했다.

2000년 메이저인 마스터즈 우승을 비롯해서 꾸준히 승수를 쌓던 그의 전성기가 마침내 시작된다. 마흔 살이 넘어서 말이다. 2004년 그는 마침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그 해 싱은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을 포함해 9승을 거뒀다. 무려 9승을.

2004년에는 타이거 우즈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 해 싱은 PGA 투어 최초로 한 해 상금 1,000만 달러를 넘긴 선수가 됐다. 그 밖에도 그에 대한 얘기는 더 많다. 나머지는 후일을 기약할 수 밖에. 명예를 잃고 좌절하고 있는 독자라면 비제이 싱을 보면서 용기를 얻기 바란다. 그의 플레이는 ‘골프채널코리아’가 중계하는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 볼 수 있다. 물 흐르듯 하는 비제이 싱 스윙을 꼭 느껴보기 바란다. 김용준 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KPGA 프로 & KPGA 경기위원)

● ‘골프채널코리아’가 나오는 채널=KT올레TV(55) BTV(133) LG유플러스TV(102) CJ헬로(183) ABN아름방송(68) CMB(8VSB: 67-3) 딜라이브(157) 서경방송(69) 울산방송(147) 충북방송(67) 제주방송(96) 현대HCN(519) KCN금강방송(116)
sports@heraldcorp.com
핫이슈 아이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