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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세 골프소설-2] 안젤라와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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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옆 골프 박물관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밤이 깊어도 대낮처럼 보이는 위도 66.30도 북극의 백야. 그 밤의 한가운데에서 오로라는 시작된다. 태양의 폭발이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지구까지 날아온 입자와 북극의 대기가 충돌해 만들어진 푸르른 환상의 빛이다. 그 오로라를 만들어낸 대기는 북극해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서 노르웨이 해협에 파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파도는 왼쪽으로 동토의 땅인 그린랜드를 서서히 지난다. 이번에는 오른쪽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잠시 스쳐 지나면서 이내 남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북해의 한가운데에 모여든 파도는 3천5백여 킬로미터의 여정을 마무리 지을 곳을 찾는다. 수억 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됐던 그 파도는 위도 58도의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이 여정의 쉼터였다.

자연은 그 땅에 축복을 내려주었다. 하일랜드의 산이며 바닷가 주변의 구릉이며 초원들은 모두 녹색의 향연이다. 그림으로 그려도 못 그릴 만큼 아름다운 자연의 특혜는 해안선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날씨로는 자랑스러울 게 없는, 일주일에 한 번의 맑은 날이 있을까 말까 한 곳. 하늘에는 늘 잿빛 구름이 드리우고, 시도 때도 없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충분한 한기를 느끼게 만드는 쓸쓸한 땅이다.

해안선의 한 가운데에서 북해의 파도를 가장 먼저 외롭게 맞이하는 운명의 세인트 앤드루스는 하늘과 파도 말고도 마을의 모든 건물들조차 회색빛으로 바래지고 있다. 어둡고 음침했던 중세기의 한가운데에서 그 마을은 가난과 배고픔의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13세기 스튜어트 왕조가 탄생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가 스코틀랜드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색 파도와 음산한 바람은 세인트 앤드루스 해안을 사정없이 휘갈긴다. 그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고깃배를 몰고 돌아오는 어부들은 그 해안가를 걸어 뭍으로 들어오곤 했다. 넓은 백사장을 지나면 이끼처럼 짧은 억센 풀밭이 나타난다.

염도가 높아 풀이 자랄 것 같지 않은 땅에서도 굴하지 않고 뿌리를 뻗은 생명력이 끈질긴 잡초들이 널린 곳. 사람들은 그 곳을 링크스라 불렀다. 백야가 시작되는 4월초의 날씨였지만 북해의 바람은 냉랭하기만 했다.

엔젤라와 제임스는 이른 아침 그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새 친숙해졌다. 어제 저녁 처음 만났지만 이미 마음은 통해 있었다. 골프에 대한 정열이 두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주었고 어제 오후에 잠시 인사를 나눈 구면이었다. 게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골프 역사에 대한 교류를 한 탓에 두 사람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전형적인 아이리쉬인으로 세인트 앤드루스 박물관의 책임자 중 한 명인 엔젤라는 보수적인 콧날과 이마를 가졌지만 명쾌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로 상대방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여성이었다. 영국 중에서도 스코틀랜드 특유의 거친 발음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보였다.

지구를 돌아서 멀리 동쪽 끝에 있는 한국에서 골프의 발상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발자취를 더듬어 보겠다며 찾아온 작가 겸 기자에게 엔젤라 관장은 진심으로 예의를 다해 맞이하고 있었다. 이 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기다려야 했던가.

*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고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이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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